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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클래식 | 천개의 고원 | ‘세월호’와 ‘미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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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홈피지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0-01-29 16:48 조회9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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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주(감이당)

2014년 4월 16일, 인천에서 제주로 향하던 세월호가 전라남도 진도 해역에서 침몰했다. 탑승자 476명, 생존자 172명, 사망자 299명, 실종자 5명이 발생한 대형 참사다. 그저 재난사고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끔찍한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 뒤집힌 선체 안으로 바닷물이 차오르고 있음에도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 안내뿐, 제대로 된 구조작업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특히 사망자 가운데는 수학여행을 떠나던 수백 명의 학생들이 있었다. 그렇게 속수무책으로 많은 사람들이 차가운 바다 속에서 죽어갔다.

무엇이 이들을 죽게 했을까. 무리한 화물 적재, 승객을 버리고 탈출한 선장의 무책임, 해경의 뒤늦은 구조작업. 무엇보다 이 사건을 둘러싼 의혹을 은폐하려는 ‘세력’들이 있었다. 그런데 ‘정부’는 얼마의 보상금만을 지불하려고 했을 뿐 사고의 진상을 제대로 규명하지 않으려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건의 방향은 ‘정치’로 흘러갔다. 세월호의 본질은 ‘생명’인데 왜 정치의 문제로 가는 것일까. 정치인의 말 몇 마디로 사건이 해결될 수 있을까. 세월호의 슬픔과 정부에 대한 분노로 국민들은 ‘광장’으로 나왔고, 전국은 ‘촛불’로 뒤덮였다.

‘빨강’과 ‘파랑’뿐인 세상

누구나 잊지 못할 시대의 아픔이 있을 것이다. 나에겐 ‘세월호 사건’이 그랬다. 그러나 나는 단 한 번도 광장에 나가지 않았다. 촛불이 내 마음에 아무런 위로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기다 광장에 모여 정부를 향해 소리친다고 해서 사고의 진실이 제대로 규명될 것 같지가 않았다. 나 한 사람이 저 많은 ‘군중’ 속에 뛰어든다고 한들 무엇이 달라질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촛불은 꺼질 줄 모르고 계속해서 번져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박근혜-최순실게이트가 터졌고, 대통령의 탄핵으로 이어졌다. 촛불의 힘으로 새롭게 출범된 정부를 보며 광장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내가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이때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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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모든 곳에서, 모든 방향으로 절편화된다. (…) 집은 방의 용도에 따라 절편화된다. 거리는 마을의 질서에 따라 절편화 된다. 공장은 노동과 작업의 본성에 따라 절편화된다. 우리는 사회 계급, 남자와 여자, 어른과 아이 등 거대한 이원적 대립에 따라 이항적으로 절편화된다.

(질 들뢰즈/펠릭스 가타리, 『천개의 고원』, 2003, 새물결, p397)

들뢰즈와 가타리는 점과 점을 잇는 선을 ‘절단’하고 ‘채취’하는 방식으로 삶을 바라본다. 이것이 ‘절편성’이다. 절편SegMent이란 ‘직선’보다는 굴곡이 있는 ‘선분(線分)’을 의미한다. 하나의 직선을 구부렸을 때, 나타나는 ‘곡선’은 서로 마주보는 형태를 갖기 때문에 절편성은 언제나 ‘이항적’이다.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된 후 내 눈에 비친 세상은 오로지 ‘빨강’ 아니면 ‘파랑’으로 절편화되고 있었다. 여당과 야당,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 이것을 넘어 지금은 촛불과 태극기라는 새로운 이항대립을 목격하고 있다.

세월호의 죽음도 마찬가지였다. 이제는 어떤 진영에 서야 할 것인가로 다가왔다. 진영이라…. 어떤 경우라도 ‘생명’이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보편적이고 소중한 것 아닌가? 그렇다면 정치라는 영토 안에서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진영논리에 먹혀버리고 말았다. 두 갈래로 대치된 진영을 보면서 화가 나고 회의가 들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돌이켜보니 정치의 이항대립은 이 전부터 내 삶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산업화 vs 민주화, 두 ‘거시정치’의 대립

내 나이 스물다섯 살, 18대 대선(2012년)이 있던 날 아침 할아버지는 전화로 나에게 박근혜 대표(1번)를 꼭! 찍어야 한다고 했다. 다음은 삼촌 차례였다. 삼촌은 자신이 아버지보다 한발 늦은 것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며, 나에게 문재인 대표(2번)를 찍어야 한다고 했다. 두 사람은 한 명의 어떻게든 ‘유권자’라도 더 확보하겠다는 의지가 가득했다.

솔직히 말한다. 당시 정치에 관심이 없었던 나는 할아버지와의 친분이 더 중요했다. 그래서 1번을 찍었다.(ㅠㅠ) 결과는 박근혜 대표의 승리. 대선 승리의 기쁨과 패배의 절망이 할아버지와 삼촌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났고, 한동안 두 사람 사이에 차가운 바람이 불었다. 나는 내가 찍은 사람이 당선된 기쁨보다 대선 결과가 안긴 싸늘한 집안 분위기가 더 걱정되었다. 부자간에도 인정사정없는 이 지독한 정치적 대립은 도대체 어디에서 비롯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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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립의 근원은 두 사람이 걸어온 시대 배경에 있다. 할아버지가 걸어온 ‘산업화’시대는 ‘국가’의 이념이 곧 자신의 이념이 되어야 하는 시대였다. 특히 국가도 개인도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시기였기 때문에 그만큼 ‘돈’이 절실할 수밖에 없었다. 할아버지는 독일에서 3년간 파독 광부로 일하셨는데, 그로 인해 집안이 잘살게 되었다고 한다. 국가는 계속해서 대중에게 경제 성장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대중은 먹고 살기 위해 아낌없이 노동력을 바친다. 그와 동시에 국가 경제도 성장되었다. 이렇듯 경제영역 안에서는 개인과 국가가 동일한 절편성을 가지고 있었던 시대다. 당시 이러한 기회를 열어준 사람이 바로 ‘박정희 대통령’이다. 할아버지는 경제 성장을 위해 ‘독재’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나에게 늘 말했다.

반면, 삼촌이 걸어온 ‘민주화’시대는 더 이상 국가이념에 자신을 포개지 않는다. 당시 국가 경제가 성장할수록 빈부의 격차는 점점 심해졌다. 민주화 시대는 이 격차를 야기한 노동력 착취와 부당한 차별에 저항했던 시대다. 이 저항으로부터 탄생한 개념이 바로 ‘계급’이다. 저항의 주체는 ‘학생’과 ‘노동자’였다. 이들은 이념 대립으로 인한 인권탄압과 공권력이 행사하는 폭력에도 저항했다. 그동안 지도자 한 명이 국가의 주체로서 수직적 위계구조를 취했다면, 민주화 시대는 계급을 주체로 수평적 연대를 지향했다. 산업화와 민주화 시대를 걸어온 두 사람의 정치 이념은 분명히 달랐지만, 대중의 욕망을 국가와 계급이라는 집단에 ‘주체화’한다는 점에서 모두 ‘거시-정치’의 범주에 속한다.

  중심을 도처에 갖고 있고 원주를 아무 곳에도 갖고 있지 않은 거대-얼굴이 유연한 미세-머리들을, 동물적 얼굴화들을 대체한다. 더 이상 하늘 또는 동물이나 식물 되기에 있는 n개의 눈이 아니라 오히려 모든 광선을 주사(走査)하는, 정돈하는 중앙 집중적 눈을 갖는다. 중앙 국가는 원형적인 절편성을 제거함으로써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상이한 원들을 중앙 집중화하거나 중심들을 공명하게 함으로써 구성된다.

(「미시정치와 절편성」, p402)

‘거시-정치’란 다양한 ‘부분’을 ‘전체’로 환원시키는 정치다. 국가와 계급의 거대-얼굴은 다양한 절편들의 얼굴을 하나의 얼굴로 포섭하려 한다. 자신들과 다른 이념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 스스로 ‘공명’하게끔 말이다. 이것이 거시정치의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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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정치’와 ‘파시즘’

그렇다면 지금의 정치는 내 삶을 어떻게 관통하고 있을까. 더 이상 국가이념을 따를 필요도, 국가에 저항하지 않아도 된다. 산업화 때처럼 배고프지도, 민주화 때만큼 억압받지도 않기 때문이다. 4차 산업 시대인 지금은 ‘사적 소유’보다 ‘공유경제’가 활발하다. 데이터 통신은 누군가 독점할 수 없기 때문에, 휴대폰 하나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정보를 공유할 수 있다.

정치 또한 마찬가지다. 정해진 법과 제도 안에서라면 개인의 다양한 정치 역량을 공유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현 시대의 정치는 국가에 ‘복종하느냐’, 계급의식을 갖고 ‘저항하느냐’가 아니라 정치가 어떻게 다양한 ‘표현성’을 갖는가에 중점을 두고 있다.

내 유튜브 채널에는 정치와 관련된 방송이 많다. 정치가 디지털과 결합하여 손가락 몇 번의 터치로 언제 어디서나 국회 활동을 볼 수 있고, 라디오와 팟캐스트를 통해 다양한 견해를 들을 수 있다. 현 시대 정치는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유연하게 흘러 다니고 있다.

『천개의 고원』의 저자들은 유연하고 분자적인 흐름의 정치를 ‘미시-정치’라고 한다. 미시정치는 국가나 계급으로 환원되는 거시정치와는 달리 개인의 정치적 욕망을 능동적으로 표현하고 발휘할 수 있는 영역이다. 실시간으로 방송되는 정치 활동을 보며 채팅으로 자신의 의견을 거침없이 쓸 수 있고, 댓글을 달 수 있다. 거기다 우스꽝스럽게 패러디하여 풍자하기도 한다.

미시정치의 유동성을 미디어를 통해 볼 수 있다면, 역동성은 ‘광장’에서 느낄 수 있다. 나는 얼마 전 ‘노무현 대통령 서거 10주기’를 추모하기 위해 광화문 광장에 나간 적이 있다. 나로서는 처음 광장에 나간 것이었다. 중앙으로 들어서자 양쪽에서는 다양한 추모 콘텐츠가 열리고 있었고, 맨 앞에서는 신나는 공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슬픔과 분노를 의미했던 광장이 기쁘고 경쾌한 분위기로 바뀌어 있었다. 여기서 미시정치의 또 다른 특징이 나타나는데, 그것은 세력화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어느 순간 ‘강렬하게’ 광장을 메우지만 절대 거기에 머물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거시정치가 갖는 주체의식이 없기 때문이다. 그저 다양한 정치 커뮤니티와 접속하고, 참여하고, 즐길 뿐이다. “동일한 점 위에서 일치하는 것도 아니고 중앙에 있는 동일한 검은 구멍에 집중되지도 않는다.”(「미시정치와 절편성」, p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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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어느 순간 ‘강렬하게’ 광장을 메우지만 절대 거기에 머물지 않는다.

미시정치 반대진영에는 무엇이 있을까. 거시정치? 아니다. 바로 ‘파시즘’이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흐르지 않고 굳어 있는 정치, 오직 적대감만을 양산하는 정치, 곧 ‘파시즘’에 대해 이야기한다. 파시즘이란, 다양한 욕망을 하나의 욕망으로 빨아들이는 ‘블랙홀’같은 정치다. 내가 광장에서 온전히 즐겁지 않았던 것은 광장 외부를 둘러싼 파시즘적 진영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동의하지 않는 모든 정치는 사라져야 한다는 식으로 욕설을 하고 폭력을 퍼부었다. 이렇듯 파시즘 안에는 생성의 선이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죽음의 선만 존재할 뿐이다.

더 놀라운 것은 그런 파시즘적 욕망이 내 안에도 있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작년 가을, 검찰개혁을 외치는 서초동 집회에서 정치에 아무 관심도 없는 여자친구에게 나는 나의 이념을 강요하고 명령했다. 광장이 주는 생성과 기쁨이 아니라 반대 진영에 대한 분노와 적대감을 주입하는데 몰두했던 것이다. 그렇게 파시즘적 진영을 비판했건만, 나도 모르게 파시즘적 욕망을 뿜어낼 줄이야….

세월호 이후 어느덧 5년이 지났다. 여전히 광장은 둘로 쪼개져 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정치의 영역은 다양하게 변화되고 있다. 스마트폰 하나로 사회와 대중의 장벽이 허물어진 지금 광장에 가지 않고도 광장을 체험할 수 있고, 9시뉴스를 기다리지 않아도 빠르게 국회 소식을 접할 수 있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다양한 정치 미디어를 볼 때마다 삶의 희노애락을 느낀다는 것이다. 웃기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고, 때론 어이가 없을 때도 있다. 왜 그럴까. 정치는 ‘좋고’ ‘나쁨’이 아니라 삶을 관통하는 하나의 ‘기능’이기 때문이다. 고로 삶과 정치는 결코 분리될 수 없다. “요컨대 모든 것이 정치적이다.” (「미시 정치와 절편성」p406) 개인이든 집단이든 정치는 우리의 삶 모든 곳을 관통해 간다. 앞으로의 정치가 생명이라는 가치를 향해 나아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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