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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니체 | 청년, 정직함으로 시대와 불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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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삼봉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9-06-30 11:05 조회9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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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정직함으로 시대와 불화하다

<청년하라! 정직하라!> - 4

신근영 (남산 강학원 연구원)

정직성, 청년의 힘

   약한 인격은 한 마디로 말해, 자신이 자신의 삶에 주인이 아닌 자다. 시대적 존재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다시 우리 자신을 되찾을 수 있을까? 누가 우리에게 이런 삶을 선사할 수 있을까? 여기서 니체는 ‘청년’을 호명한다.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신도 아니고 인간도 아니다. 오로지 그들 자신의 청춘만이 할 수 있다.”(같은 책, 383쪽)

   청년, 생명력으로 충만한 푸르른 삶. 돌아보면 그렇다. 청년이란 언제나 한 시대의 흐름을 바꾸는 선두에 서 있었다. 4·19에서도, 80년대를 연 노동운동에서도, 그리고 5·18과 86년 서울의 봄, 2016년 촛불에서도 청년들은 시대와의 싸움을 열었고, 이끌었다. 무엇이 청년들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시대적 소명? 아니다. 그것은 뒤늦게 붙여진 의미일 것이다. 청년들은 시대적 부름에 화답한 것이 아니다. 시대는 오히려 그렇게 살지않는 것이 더 “영리한 삶”이라고 끊임없이 말한다.

   청년들이 화답한 것은 그들이 배운 앎이다. 청년들은 비록 지식으로나마 좋은 삶, 좋은 사회를 배워왔다. 그리고 그 지식을 살고자 했다. 삶에서 앎을 실행시키기. 니체는 청년의 그 힘을 “정직성”이라 부른다. 청년은 정직하다. 진실하다. 청년은 결코 앎과 삶의 분리를 알지 못한다. 그에게는 아는 것이 사는 것이고, 사는 것이 아는 것이다. 자신들이 알고 있는 것이 삶에서 작동하지 않는 그 현실을 참을 수 없다는 것. 옳지 않은 일을 알았고, 안 이상 행할 수밖에 없다는 것. 이것이 청년이라는 생명력이다.

 

그[청년]의 정직, 그의 근면하고 진실한 성격은 언젠가 한번은 단지 따라 말하고 따라 배우며 모방하는 것에 반기를 들 것이다. 그는 문화가 삶의 장식, 즉 근본적으로 항상 가장하고 은폐하는 것과는 다른 것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시작할 것이다. 모든 장식은 장식된 것을 감추기 때문이다.……내면도 없고 가식도 관습도 없는 개선된 새로운 자연으로서의 문화라는 개념, 삶과 사유와 외관과 의욕의 일치로서 문화 개념이 그에게 드러난다. (같은 책, 388쪽)

니체는 청년의 그 힘을 “정직성”이라 부른다. 청년은 정직하다. 진실하다. 청년은 결코 앎과 삶의 분리를 알지 못한다

청년의 건강함, 반시대성

   청년의 생명력, 그 정직성은 단순히 나이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안에 있는 어떤 힘이다. 앎과 삶을 하나로 가져갈 수 있는 힘, 그럼으로써 스스로 자기 존재를 만들어가는 예술가적 힘, 조형력! 청년은 자기 삶의 예술가를 총칭하는 모든 이름이다. 자신 앞에 있는 재료을 가지고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가는 예술가처럼, 청년은 배움을 통해 자기 존재를 만들어간다. 그렇게 자신의 인격을 만들며 위대한 자로 나아간다.

   여기에 청년의 무시무시함이 있다. 지식의 실행, 그냥 가지고만 있으려니 했던 그 지식을 청년은 있는 그대로 실행한다. 그가 역사를 통해 위대한 자를 배운다면, 그는 자신 또한 위대한 인격을 만들겠다고 나서는 것이다. 시대에게는 슬픈 소식이다. 더 이상 자신들이 지배할 수 있는 미숙한 인격이 아니라는 것에 시대는 당황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시대는 은근슬쩍 이런 질문들을 던진다. 그 생명력이라는 것이 너무 무식하고 거칠다고. 맞다. 하지만 정직하다, 하여 건강하다! 혹은 말한다. 청년들은 너무 잦은 실수를 하고, 자칫하다가는 큰 오류에 빠질 수 있다고. 맞다. 하지만 그들은 적어도 ‘산다’!

 

청년, 생명력으로 충만한 푸르른 삶. 돌아보면 그렇다. 청년이란 언제나 
한 시대의 흐름을 바꾸는 선두에 서 있었다

한 개인이 가진 역사적 지식과 감각은 아주 제한적이고 그의 지평은 알프스 골짜기의 주민처럼 매우 협소하며, 그는 얼마든지 부당한 판단을 내릴 수 있고, 자신이 모든 경험에서 최초의 경험자라는 오류를 저지를 수 있다. 모든 부당함과 오류에도 불구하고 그는 매우 건강하고 씩씩하게 살고 있으며 보는 이의 눈을 즐겁게 해준다.(같은 책, 294쪽)

 

이 청년이 이미 교양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도 있다-그러나 이것이 어떤 청년에게 비난이 되겠는가? 그들이 거칠고 무절제하다고 나무랄지도 모른다-그러나 청년은 겸손해야 할 만큼 나이 들지도 않았고 현명하지도 않다. 무엇보다 그는 완성된 교양을 가졌다고 위선을 떨 필요도 없고, 자신을 방어할 필요도 없으며, 청년의 모든 위안과 특권을 향유하고, 특히 용감하고 무분별한 정직이라는 특권과 희망이 주는 감격적인 위안을 향유한다.(같은 책, 386쪽)

앎과 삶이 하나되는 자유

   삶으로 실행되는 앎, 앎과 삶의 하나됨! 이것은 또한 자유다. 우리가 느껴오던 부자유는 외부적으로 오는 어떤 억압이기 이전에, 내면과 외면의 대립으로부터 출현한다. 실행되지 않는 내면으로 인해 느껴야 했던 자신에 대한 무력감을 떠올려보라. 그 무력감에 불안할 수밖에 없던 자신을 돌아보라. 부자유란 바로 이 무력감과 불안이다.

   자유는 아는 것이 곧 행위로 이어지고, 행위가 앎을 키워나가는 곳에 자리한다. 앎과 삶이 하나가 되어 자신이 자신의 주인이 되었다는 감각, 자신에 대한 그 신뢰가 자유다. 하여 청년의 정직성이란 자유다. 역사 속 위대한 자들은 모두 이 자유를 생산하고 향유함으로써 자신의 인격을 형성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청년만이 위대한 자로 나아갈 수 있다.

자유는 아는 것이 곧 행위로 이어지고, 행위가 앎을 키워나가는 곳에 자리한다

그러나 역사에 어떻게? 무엇을 가지고?를 가르쳐달라고 묻지 말아라. 그 대신 너희가 위대한 남성들의 역사 속으로 들어가서 직접 산다면, 너희는 역사로부터 최상의 명령을, 즉 성숙하라, 그리하여 저 마비시키는 현대 교육의 마력에서 벗어나라는 명령을 배울 것이다. 현대 교육은 너희를 성숙하지 못하게 만들어서 너희 미성숙한 자들을 지배하고 착취하는 것이 자기에게 이익이 된다고 생각한다. 너희가 자서전을 원한다면, “무슨무슨 씨와 그의 시대”라는 후렴이 붙은 자서전 말고, “자기 시대와 투쟁한 자”라는 제목이 붙은 자서전을 요구해야 한다. 플루타르코스를 읽고 너희의 영혼을 충족시켜라. 그리고 너희가 그 영웅들을 믿듯이 스스로를 믿어야 한다. 그렇게 비현대적으로 교육받은 수백 명의 사람들, 다시 말해 성숙해지고 영웅적인 것에 익숙한 사람들과 더불어 이제 이 시대의 시끄러운 사이비 교양은 영원히 잠잠해 질 것이다. (같은 책, 344쪽)

니체는 말한다. 청년하라! 정직하라! 시대와 불화하는 자가 됨으로써만 우리는 삶의 예술가가,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는 자유로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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