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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反)중국역사>2주차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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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오형일 작성일18-04-09 10:56 조회92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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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 세미나> 두 번째 시간 후기입니다. 두 번째 시간은 양하이잉 <반 중국역사> 3장에서 5장까지를 함께 읽었습니다. 기원전 7세기 스키타이에서 서기 13세기 몽골제국까지 장장 2,000년에 걸친 초원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영토를 확정하겠다는 자와 그것을 조소하던 자, “내가 땅을 밟아야 한다고 땅을 중요시하던 자와 그 땅을 바라보면서 말을 타고 움직이던 자, 중심을 만들려고 하던 자와 그것을 해체하려던 자, 이야기는 이들이 경쟁하고 성장하고 소멸하는 과정을 담아냅니다.

구체적으로 들어가보면

흉노족과 진/한나라. 만리장성. 영토를 확정짓겠다는 생각, 이 확정에서부터 시작되는 행정 관료 체제는 매우 독특한 사유라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당시의 로마와 같은 서쪽 나라의 문명에 영토를 확정짓겠다는 생각은 없었다고 합니다. 이 확정의 감각은 어릴 적 즐겨 했던 땅따먹기를 생각나게 하고, 짝꿍과 경쟁하며 자기영역을 쟁취하려 했던 이금까지 내땅이야이야라는 감각을 떠올리게 하기도 합니다. 어쩌면 만리장성은 어릴적 자기 영역 쟁취 놀이의 확장판이 아니었나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게 너무 거대해지다보니 그 안에서 관료 놀이도 필요했던 것이구요. 만리장성이 단지 확정의 감각만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그 이면에 너무도 무서운 흉노족 등 유목민에 대한 공포심과 두려움도 있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더불어 만리장성이란 정주민의 성격이라기 보다 법가의 특이성일 수도 있겠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이른바 진시황제를 만든 브레인들의 사유체계가 담긴 결과물이라는 것이지요.

흉노-투르크-거란/탕구트, --송으로 이어지는 시절에 누군가가 땅의 감각, 확정의 감각, 관료제의 감각으로 세상을 봤다면, 누군가는 이동의 감각, 포섭과 공유의 감각으로 세상을 봤다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땅의 감각으로 세상을 본 것이 중화사상이라면 이동, 포섭, 공유의 가치로 세상을 본 것이 유목의 사상이라는 것이지요. 그러나 유목의 언어를 찾기는 쉽지 않죠. 왜냐하면 그들의 감각은 기록을 남겨야 할 어떤 이유도, 욕망도 없었던 듯싶고, 그리하여 지금 유목의 언어는 정주민의 기록에 의존할 수밖에 없으니깐요. 그래서 유목문명에 대한 이야기는 역사가 아니라 인류학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는 게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었습니다.

이 책을 보면서 유목 문명에 대한 환상이 깨졌다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정주의 스케일이 있어야 유목의 스케일이 가능하다는 것이지요. 송나라를 넘어서야만 가능했던 유목 문명이 곧 원나라이고, 명나라를 넘어서야만 가능했던 유목 문명이 곧 청나라였던 것이지요. 기존의 정주 문명과 상대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역량이 필요했다는 것이지요.

유목민과 정주민의 차이를 신체성의 기질 차이로 볼 수도 있다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유제품, 고기를 주식으로 하는 유목민과 쌀을 주식으로 하는 정주민 사이에 다른 성격과 기질을 가질 수박에 없게 되고, 이게 문명의 차이로 이어진다는 것이지요. 몸이 문명을 만든다. 개인적으로 매우 흥미롭게 들은 부분입니다.

마지막으로 유목과 종교가 어떻게 만난 것인지, 특히 몽골과 티벳불교의 만남에 대해 좀 더 많은 스터디가 필요하다는 제언이 있었습니다. 유목민이 제국이 되었을 때 새로운 이데올로기는 필요하지만, 왜 그것이 몽골의 경우 티벳불교였을까에 대해서는 궁금증이 생길 수밖에 없는 부분인데요, 조만간 읽게 될 느낌입니다.

이 책은 과도하게 유목민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하기에 조금은 불편한 점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그러나 작가의 유목에 대한 애정, 그 시선 자체가 곧 유목이라 생각한다면 어쩌면 이번에 함께 읽는 책은 유목을 이해하는 데 좋은 레퍼런스가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다음 시간에는 <반 중국역사> 6~7장과 <만주족의 역사> 1장을 함께 읽습니다. 수요일에 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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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정지안님의 댓글

정지안 작성일

단순히 생각하면, 시공간이 다르면 당연히 그속 삼라만상의 삶과 사유가 다를 것 입니다.
끝임없이 주변과 내부의 환경과 변화에 부딪히며 변해가는 문명의 흥망성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유라시아의 유목문명과 지나의 정주문명을 좁게 보면 서로 부딪치는 관계지만, 좀더 큰틀로 보면 서로 융합하면서 나아가는 그런 관계가 아닐까요?
문명의 우월을 논하는 넌센스보다는 각자의 역활과 의미를 생각하는 것이 더 유익한 역사이야기가 될 것 같네요.

문릿님의 댓글

문릿 작성일

유목 관련 책들을 찾아 읽게 되면서, 저는 얼마전부터 "유목을 유목의 눈으로 읽는다는 게 뭘까?" 라는 고민을 합니다. 그리고 '정주 문명 대 유목 문명'이라는 구도는 괜찮은가, 하는 의문도 생기구요.
일단 양하이잉의 <반중국역사>는 굉장한 편견으로 무장된 것이 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형일샘 말씀대로 바로 그 점 덕분에(때문에) '유목'에 접근할 때 어떤 각오(!) 같은 게 필요한지 생각해보게 되는 지점도 있구요. 정주 문명 혹은 한인중국문명의 뺄셈으로 설명되는 유목 말고, 유목을 말하고 가로지르기 위해선 아마도 거친 상상력, 직관에 의한 도약과 비약 등이 필요할지도요. 그런 점에선 또 우선 지안샘이 말씀하신 좀 더 큰 틀(그게 뭔진 모르겠지만)에서의 시선을 마련해야 하기도 하겠고!!
아. 결국은 돌고 돌아 제자리로 오는 느낌적인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