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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세미나 5강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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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산자 작성일18-04-26 16:16 조회110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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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를 마치고...


강희-건륭기, 청나라 최고 전성기에 대한 평가를 비교적 박하게 한 발제에 대해 반론이 있었습니다. 소제목으로 단 '통합과 성취, 그러나 극복하지 못한 한계'라고 한, '한계'에 다소 방점을 둔 발제자의 평에 대하여, 여러분들이 '한계'가 아니라 '통합과 성취'에 더 방점을 두어야 하지 않나 하는 반론을 하셨습니다.

맞습니다. 청나라는 이미 망한 나라이고, 망하는 집에 왜 그 이유가 없겠습니까. 수백가지도 더 있겠지요. 다 지나고 나서 결과를 아는 사람들이 편안한 위치에서 평을 하는 것이죠. 아마 만주족의 청이 아니라 한족의 명이 계속 버티고 있었더라도, 19세기 정도가 되면 중국은 여러가지 다른 이유로 '걸레'가 되서 망가졌을 것이고, 거기에 대해 또 그럴싸한 설명으로 망할 수 밖에 없었던 '한계'를 평하게 되겠죠. 그런 편안함과 안전함이 후학의 유리한 점이기도 하고요. 적어도 틀린 소리 했다는 말은 안들을 수 있잖습니까.


청나라는 사실, 중국 전통시대 최고의 성취를 이룩한 국가입니다. 대원 울루스를 제외하고는 가장 큰 강역을 확보하였고, 정주-유목 민족의 통합 정도도 미흡하지만 상당한 수준까지 이르렀으며, 문화적으로 커다란 성취를 이룩하였습니다. 3백년이 안되는 치세동안 1억5천의 인구가 세배 가까이 성장한 것도 단지 인류 문명의 발전에 따른 혜택이었다고 만으로는 설명이 안되는 성취입니다. 그만큼 경제가 활성화 되고, 사회가 오랜 기간동안 안정을 지속한 결과입니다. 그야말로 한 줌 밖에 안되는 만주족 지배자들이 이 대단한 업적을 이루어 내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누르하치와 최소한 그의 5대손 건륭제이 이르는 6대에 걸쳐 전통시대 최고의 황제들이 잇달아 나온 덕분에, 만주 변방에서 사냥과 교역으로 근근이 먹고 살던 만주 촌놈들이 동아시아 역사상 최고, 최대, 최강의 문명국가를 이루었으니...그야말로 시골에서 편의점이나 하던 집안이 삼성 그룹 같은 수백조 자산대의 그룹사를 만들어 낸 놀라운 성취였다고 말 할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들이 일구어 낸 성취에 대해 경의를 표하는 우선인 것이 맞습니다.

이들에게 너무 박한 평가를 하는 것은, 19세기 이래의 망해가는 중국을 보고 평가한 기존의 전통적인 입장에 기운 것이라는 비평을 받는 것도 당연합니다. 하지만, 또 기존의 평가가 그러한 것에도 그럴 만한 타당한 이유가 있었다고 봐야 하겠지요.


만주족이 압도적인 한족 문화에 동화되지 않고, 자기 정체성을 유지한 것도 대단한 일이라는 평도 옳습니다. 하지만, '滿'과 '漢'을 구분지으려 하였던 그 지난한 노력이 결국은 절대 다수인 '한'을 이끌어가는 데 근원적인 한계를 만들었다는 점도 사실이라고 봅니다. '만한일가'는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었다는 것이죠. 차라리 현재 중국 정부에서 진행하는 '한어'를 중심으로 한 '중화일가'를 만들어 가는 노력이 훨씬 현실적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거기에는 각 민족 나름의 독창성과 독립성이 희생될 수 밖에 없다는 씁쓸함과 이 지독하고 끈질긴 중화주의에 대한 두려움이 없을 수 없을 것입니다.


18세기 서몽골이 완전히 평정된 뒤, 19세기에 등장한 유럽 제국의 침탈이 또 다른 의미에서, 정주 '중국' 문명에 대한 새로운 형태의 '유목' 서구해양 문명의 공격이 아니었나 라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매우 흥미로운 관점 입니다. 더 생각을 정리해야 겠습니다.


청나라를 읽으면 읽을 수록 초원유목 세계에서의 칭기스칸과 그 후손의 권위가 얼마나 대단하였는가를 새삼 느끼게 됩니다. 명나라도 그랬지만, 청나라도 몽골에 대한 두려움, 어떤 면에서는 경외감까지 가지고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래서 릭단 칸으로부터 얻은 쿠빌라이의 옥쇄가 그렇게 중요한 의미를 가진 것이었고... 서몽골에 대한 집요한 경쟁의식도 칭기스칸의 후예가 갖는 초원세계의 권위를 확보하지 않고서는 안정된 천하지배가 이루어질 수 없다는 위기의식이 있었기 때문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생각해보면, 근세 유라시아를 이끈 내륙의 대제국들...러시아, 오스만 투르크, 무굴, 청...이 모두가 몽골제국의 방계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수백년을 지속한 이들 대제국의 시대가 끝난지 겨우 100여년이 지난 지금, 보면 볼수록 칭기스칸의 위대함을 느끼게 됩니다.


이번 시간에는 한 개인의 인생에서도 빛나는 시기가 있듯이, 수천년에 걸친 여진-만주족의 역사 속에서 그들이 가장 빛났던 시기였던 청나라의 전성시대를 공부했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청 제국의 최후와 현대의 만주족에 대해서 공부할 것입니다.

봄방학 잘 보내시고, 건강한 모습으로 다다음주에 다시 뵙기를 고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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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최미숙님의 댓글

최미숙 작성일

어찌나 후기를 일찍들 올리시는지~^^

청의 급격한 인구증가는 아마도 명나라때의 인두세를 강희제가 폐지하면서 무호적자가 드러나며 비롯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지난 시간에 나왔던 '유목의 새로운 변용?변형?으로써의 서구의 관점'을 자꾸 되새기게 되는데요,,참 흥미롭고 새로운 관점인 듯합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세계사를 정주와 유목의 프레입으로만 보는게 아닌가 우려도 됩니다.
아무튼 패샘의 책을 읽으면서 정말로 몽골, 칭기스칸의 존재감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간접체험하는 것 같습니다.
아직 중국을 가보지 못한 저는 선생님이 말씀하신 중국과 몽골이 신기하고 새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