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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학기 2주차 글쓰기_픽션들_호정

게시물 정보

작성자 이호정 작성일22-07-29 21:55 조회4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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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션들(2)_발제.hwp


픽션들(2)_발제.pdf





변화를 감각하는 푸네스의 기억


푸네스의 비옥한 세계

인간은 진화과정에서 사고하는 능력이 발달함에 따라 기억력의 퇴화를 겪었다. 이 말이 무슨 말이냐면, 우리는 1시 35분에 읽었던 『픽션들』과 2시 35분에 읽은 『픽션들』이 같은 책이라고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는 거다. 1시간 전에 본 책과 현재 보고 있는 책을 추상화하고 일반화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그것이 다른 것이라는 걸 잊고 ‘같다’고 인식한다. 즉, 인간의 사고과정은 감각한 것들을 종합해내는 일임과 동시에, 그것들 간의 차이를 잊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보르헤스는 「기억의 천재 푸네스」를 통해 사고력보다는 지각력과 기억력이 매우 발달한, 그리하여 감각한 것들 간의 모든 차이를 지각하고 기억할 줄 아는 한 소년의 세계를 보여준다. 이 소년의 이야기는 차이를 감각하는 일에 무뎌진 우리를 우리가 잊고 있던 풍요로운 세계로 이끈다. 

푸네스에게서 놀라운 점은 그가 “촛불을 켜지 않고도 시간을 보낼 줄 안다”는 것이다. 그는 말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겪은 후 전신이 마비되어 하루 종일 방 안에서 눕거나 앉아서 지낸다. 얼핏 보기엔 굉장히 곤욕일 것 같은 푸네스의 방콕 생활은 들여다볼수록 많은 곳을 이동하고 다양한 것들을 겪으며 지내는 푸네스의 방 바깥 사람들의 삶보다 훨씬 비옥해 보인다. 그에게는 “상세한 것들, 즉, 곧바로 느낄 수 있는 세세한 것만이 존재”하여, 그것들의 “순간적이고 다양한 형태의 세계”를 촛불을 켜지 않은 방 안에서도 계속해서 감각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묻고 싶다. 상세한 것들, 곧바로 느낄 수 있는 세세한 것들을 지각하고 기억한다는 건 어떤 것일까? 우리는 그 내용을 쉽게 잊어버릴 뿐, 감각하지 못하는 게 아니다. 감각한 것들 하나하나의 차이가 느껴지기 시작한다면, 우리는 과연 어떤 세계에 살게 될까.


상세한 것들이 지각되고 기억되는


그는 ‘개’라는 속(屬)적 상징이 형태와 크기가 상이한 서로 다른 개체들을 포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좀처럼 이해할 수 없었으며, 또한 3시 14분에 측면에서 보았던 개가 3시 15분에 정면에서 보았던 개와 동일한 이름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곤 했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송병선 옮김, 『픽션들』, 민음사, 「기억의 천재 푸네스」, 146쪽)


작품의 제목처럼 푸네스는 기억력이 아주 좋다. 그는 딱 한 번 보았을 뿐인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있으며, “그것들을 지각하거나 상상했던 때 느낀 각 순간의 인상마저도 기억”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딱 한 번만 생각한 것이라도 그의 기억에서 절대로 지워지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3시 14분에 측면에서 바라본 개의 모습과 그 개를 볼 때 느낀 인상, 그리고 그 개에 대해 무언가 생각한 것이 있다면 그것까지도 완벽히 기억한다. 그렇다면 3시 15분에 정면에서 바라본 그 개에 대해서는 어떻게 느낄까? 당연히 완전히 다른 개라고 느낀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개를 다른 방향에서 감각하게 되었으며, 그에 따라 정면에서의 개에 대한 인상 혹은 생각도 바뀌게 되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측면에서 봤을 땐 주둥이가 지나치게 튀어나와 있어 사나워보였다가도, 정면에서 바라보니 큰 눈이 부각되어 너무 귀여울 수 있다. 그러한 3시 15분에 정면에서 바라본 개를 완벽히 기억하는 푸네스는 당연히 3시 16분에 본 개에 대해서도 새로운 감각과 인상을 느끼고, 전혀 다른 기억을 갖는다. 그는 도무지 왜 그 개들을 다 하나의 이름으로 부르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전부 다른데!

우리의 감각 역시 푸네스의 것과 마찬가지로 작동한다. 월요일에 읽은 『픽션들』은 목요일에 읽은 『픽션들』과 같은 책일까? 아니, 그것들을 『픽션들』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부르는 게 우리가 가진 감각의 차원에서 봤을 때 정말 마땅한 일일까?

이번 주 월요일에 나의 손에 쥐어져 있던 『픽션들』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책은 나에게 종이뭉치와 검은 잉크들, 그리고 어쩌다 간혹 눈에 들어오는 흥미로운 구절들의 조합으로 지각되었다. 그에 따라 나는 낯섦에 대한 불편함과 ‘이번에도 책이 어렵구나’ 하는 두려움을 느꼈다. 목요일에 나는 문득 보르헤스가 말한 푸네스가 떠오르면서 그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때 내 눈앞에 세워진 『픽션들』이라는 이름이 붙은 책은 나에게 우루과이의 프라이 벤토스였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낯선 나라에서 펼쳐지는 한 소년의 짧은 생이 지각되었다. 나는 좀 더 커진 궁금증을 느꼈고, 이 작품으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월요일과 목요일에 내가 느낀 것들은 아주 사소한 것들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들 하나하나를 기억에 담아두지 않고 그 과정을 그냥 하나로 뭉뚱그려 ‘『픽션들』을 읽었다’고 이름 붙인다. 그러면 내 눈앞에 있던 것이 시간에 따라 어떤 다른 모습으로 지각되는지, 얼마나 다른 인상으로 나에게 다가오는지 하는 것들은 다 잊히고 만다. 분명히 존재했던 세세한 것들의 차이가 사라진다. 우리의 머릿속엔 그저 내가 붙잡아야 한다고 강하게 생각하는 것, 예를 들어 줄거리라든가 뭔가 중요한 것 같은 주제들만이 살아남는다. 그리고 그런 생각 위에서 책을 읽으면 2번을 읽든 3번을 읽든 그 책은 ‘같은 『픽션들』’이 된다. 

이는 우리가 ‘상세한 것들’을 무시할 때 일어나게 되는 일이다. 그와 달리 푸네스의 세계는 상세한 것들만이 살아남는 세계다. 상세한 것들의 특징은 ‘곧바로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것은 어떤 복잡한 생각 속에서 나오게 되는 게 아니다. 순간적으로 감지가 되는 무엇이다. 그만큼 빨리 지나가고 다음 순간이 오기 때문에, 기억력이 그리 좋지 않은 우리는 그것을 포착하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 우리에게는 그것을 빨리 ‘책’으로 뭉뚱그려 부르고 싶어 하는 기제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기억, 변화를 감각하는 행위


스위프트는 소인국 릴리푸트의 황제가 시계의 분침 운동을 분간했다고 언급하고 있는데, 푸네스는 소리 없이 곪아 가는 잇몸과 충치와 피로를 계속해서 감지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죽음이 진행되거나 습기가 차오르는 과정도 관찰했다. 그는 거의 참을 수 없을 만큼 정밀하고 순간적이고 다양한 형태의 세계를 지켜보는 외롭고도 명민한 관객이었다. 

(같은 책, 146-147쪽)


푸네스는 순간적으로 감지되는 모든 것을 지켜보고 기억했다. 자신의 신체 안에서 일어나는 일뿐만 아니라 습기와 같은 외부적인 것들도 모두. 거기에는 자신의 죽음도 포함된다. 우리는 죽는다는 사실을 아주 쉽게 잊고 살지만, 푸네스는 죽음이 진행되고 있는 순간 하나하나를 기억한다. 그리하여 죽음이 시시때때로 자신에게 건네는 물음에 응답한다.

이로써 푸네스가 우리에게 말하는 비옥함이 외적으로 더 다양한 것을 겪는 데에서 오는 게 아니란 걸 알 수 있다. 푸네스의 비옥함은 기억을 통해 생겨나고, 그의 기억은 끊임없이 변화를 감각하는 행위이다. 매번의 차이를 만들고, 그것을 감각하는 것으로써의 기억 행위인 것이다. 푸네스는 열아홉 살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가 기억하는 지난 19년 간의 하루하루를 재구성하거나 분류하는 일은 그가 죽을 때까지 해도 다 끝나지 않는다. 그만큼 그의 내적인 경험은 참을 수 없을 만큼 정밀하고, 순간적이고, 다양하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얼마를 더 살았는가 하는 것이나 얼마나 더 다양한 외적 경험을 했는가 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더 지각하고 기억할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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