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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백전 마늘쑥쑥조] 시즌3 <몰로이> 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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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쓰담쓰담 작성일19-05-08 20:20 조회8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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앎이 아니었음을 말하다

 

 

몰로이은 어머니의 방에서 글을 쓰고 있는 한 사람의 모습에서 시작한다. 그의 이름은 몰로이로, 그는 의식의 흐름마냥 글을 써 내려간다. 1부의 이야기들은 그가 어머니를 뵈러 여행을 떠나면서 생기는 일인 것 같다. ‘것 같다고 말하는 건 그가 설명하는 사건들이 애매모호하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배경을 하나하나 설명해 주는 것도 아니어서 상황 파악도 어렵고, 결정적으로 몰로이는 아는 게 별로 없다.’ 아니, 화자가 모르면 독자들은 어떡하란 말인가? 몰로이는 몰라서 몰로인가? 왜 몰로이는 자신의 일에 대해서도 모르는 게 그렇게 많은가? 그가 무엇을 모르는지를 구체적으로 짚으며 이를 살펴보기로 하자.

 

사건을 모른다

몰로이는 어머니를 찾아가는 길에서 몇 가지 사건에 맞닥뜨린다. 그런데 그 사건을 설명하는 데 있어, 그는 화자임에도 불구하고, 아는 게 별로 없다. 관문을 지나가며 경찰을 만났던 사건을 보자. 몰로이는 자전거에서 내려 관문을 지나쳐가다가 경찰의 심문을 받는다. 그는 경찰과 몇 마디 주고받는다. ‘여기서 뭘 하십니까?’ ‘쉬고 있소.’ ‘쉬고 있다고요?’ ‘쉬고 있소.’ ‘제 질문에 대답해주시겠습니까?’

이런 얼빵한 대화가 오가는 건 처음부터 몰로이가 경찰이 자신에게 말을 건 맥락을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몰로이는 제 나름대로 받은 질문에 대답했다고 믿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경찰이 몰로이에게 질문을 던졌던 건, ‘쉬는 동안, 자전거에 말을 타듯 걸터앉아, 두 팔로 핸들을 잡고, 머리를 두 팔에 올려놓은그의 자세가 풍기를 문란하게 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경찰의 질문은 풍기를 어지럽힌 데 대해 문책을 하고 있었던 것이지, 그가 실제로 무슨 행동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궁금하지 않았던 것이다. 반면 몰로이는 불구자다. 다리가 뻣뻣하여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는 그는, 그저 순수하게 쉬기 위해 그런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그런 입장에서는 경찰의 계속 되는 질문이야말로 이상할 따름이다.

이런 대화의 어긋남 자체는 사실 흔히 있는 일이다. 하지만 몰로이를 특이하게, 혹은 읽기 어렵게 만드는 지점은 이런 사건 자체가 아니다. 문제는 사건에 대한 서술이다. 우리는 흔히 이런 사건을 설명할 때 관문에서 풍기문란으로 경찰에게 체포되었다고 말하지, 체포되고 나니 풍기문란이더라, 라고는 잘 말하지 않는다. 물론 극적인 효과를 위해 그렇게 말할 수는 있겠지만, 그로 인해 자신이 멍청해지는 것을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한다. 우리는 지나간 사건을 서술할 때, 어느 정도 사건의 전말을 아는 위치에서 말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소설을 읽을 때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따진다. 사건에 대한 사실, 참은 무엇인가?

하지만 몰로이는 그런 사건의 전모를 밝히는 방식으로 말하지 않는다. 그는 항상 모르는 위치에 있다. 그는 과거의 자신이 그 당시 사건에 대해 몰랐음을 끊임없이 밝힌다. 그리고는 묻는다. 과거에 대해 알고 있다는 건, 정말 알고 있는 것인가?

 

그러나 조금 더 갔을 때 나를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고개를 들었더니 경찰이 보였다. 이것은 생략체로 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일의 정황을 알게 된 것은 나중에 귀납적으로, 혹은 연역적으로, 더 이상 모르겠다, 추리를 해본 후였기 때문이다. (사뮈엘 베케트, 몰로이, 문학과지성사, p.29)

 

사실 우리가 과거의 사건에 대해 안다는 것은 정말로 알고 있는 게 아니다. 그것은 언제나 현재의 위치에서 거꾸로 추측되는 사실에 불과하다. 과거의 사건을 겪는 우리들은 그 사건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사건은 언제나 느닷없이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깨닫지도 못한 채사건을 맞이한다.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사건이 다 지나간 후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거꾸로 되짚어 보는 것뿐이다. 사건은 되짚어 보는 현재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러니 몰로이는 어느 것도 확신할 수 없는 것이다.

반대로 그 추측을 쉽게 안다고 말할 때, 사건의 전말은 현재의 특정 위치에서 고정된다. 우리의 앎은 사건에 대한 사실이고 참이다. 그렇기에 언제 회상되더라도 같은 사건에 머무른다. 이런 사건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 역사에 대해 물을 때도, 신문 기사에 대해 물을 때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모두에게 일괄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사실을 묻는다. 하지만 우리가 한편으로 흔히 알 듯 과거는 국가에 따라, 입장에 따라, 사람에 따라 다르게 그려질 수 있다. 심지어는 시간에 따라서도 바뀔 수 있는 추측일 수 있다. 그런데 어떻게 그 입장들을 모두 지우고 하나로 통일되는 과거를 알 수 있단 말인가?

 

앎이 아니었음을 말하다

그러니 이제 사건의 전말을 묻는 게 아니라, 몰로이가 어떤 방식으로 과거를 회상하고 있는지를 보아야 한다. 그는 자신이 겪었던 과거의 사건을 설명하면서 사건에 대해, 사건을 겪는 자신에 대해 무지했음을 말한다. 경찰이 자신을 체포했음에도 처벌하지 않고 풀어줬던 것에 대해, 풀려난 자신이 다시는 같은 행동을 취하지 않았음에 대해, 그럼에도 자신이 예법의 기본 원칙을 알지 못하고 있음에 대해.

 

나는 이 문제에 대하여 부정적이고 경험 위주의 지식만을 갖고 있었으며, 그것은 다시 말하면, 대부분, 나는 무지 속에 있었다는 뜻인데, 지난 세기에 걸쳐 내가 수집한 관찰들이 나로 하여금, 제한된 공간에서마저도, 처세술의 토대가 있는지조차 의심을 갖게 했기 때문에, 나는 더욱 더 깊은 무지 속에 있었다. (앞과 같은 책, p.37)

 

몰로이는 단순히 자신의 행위가 경찰에게 심문받았다는 경험에서 행위가 금지되어야 함을 이해했다. 그 행위가 어떤 합리적인 이론의 기본 원칙들 위에서 금지되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경찰에 의해 제지당했기에 금지되어야만 한다는 것만은 안다. 그는 이런 어쭙잖은 은 모름이라 말한다. 어쩌면 우리의 일상도 몰로이의 모름들로 가득 차 있는 것은 아닐까? 몰로이가 안다고 생각하면서 생존하는 일 외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듯, 우리도 우리의 삶 속에서 무지를 찾아내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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