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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백전

<청백전 인절미> 시즌3 - 축의시대 7,8장 후기 (24/100)

게시물 정보

작성자 엘림 작성일19-05-02 23:21 조회130회 댓글2건

본문

19.5.1


책 : <축의 시대> (7,8장)

참여자 : 성아, 지혜, 윤하, 보경, 세실리아, 정희, 엘림, 수정(청강 오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축의시대 네번째 후기를 맡은 엘림입니다!

오늘은 특별한 손님이 오셨는데요, 청공 3,4기에서 공부하시는 수정샘이 놀러오셨습니다~

근로자의 날을 맞이하여 회사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집으로 가는 발걸음이 아쉬워 깨봉으로 놀러오셨다고 합니다~

곧 시작 될 청공4기 2학기에서도 축의시대를 할 예정이기때문에 함께 이야기 나누고 싶으셨다고 합니다~


시작은 세실리아샘이 준비해오신 발제문을 읽고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세실샘은 붓다 챕터에 나온 한 단락에 대한 생각을 발제문에 정리해오셨는데요,

붓다가 우주의 문제로 고민하느라 수행을 게을리하는 수도승에게 이는 부상을 입고 치료할 생각은 하지 않고 자신에게 활을 쏜 사람을 찾는 어리석은 행동과 같다고 이야기합니다. 세실샘은 과거에 다양한 호기심과 자신의 일에 의미를 찾으려했지만 시간만 속절없이 흐르고 나중에는 시간낭비처럼 느껴졌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할일을 하는 지금도 현재에 집중하지 못하는 이도저도 아닌 상황에 대한 생각에 대해 솔직하게 적어주셨습니다. 과거에는 무언가를 해야할 때 의미나 가치들이 중요시 여겼던거 같은데(반항의 의미도 있었던 것 같아요.) 어느순간 눈앞에 닥친 일을 처리하며 바쁘게 살다보니 그런 일들이 여유있는 사람만 할 수 있는것처럼 느끼곤 했는데요, 그렇다고 현재의 제 모습에도 만족을 못하면서요. 그런 저의 경험과 비슷한 기분이었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이번장에서는 특히나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들이 많이 등장했는데요!

소크라테스, 묵가, 싯다르타, 장자, 맹자,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우와!!! 네 정말 이름만 들어봤던 (^^::) 인물들을 조금씩 접해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 중 소크라테스가 대화와 토론으로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고 진정한 앎을 실천하기 위해 살아온 이야기가 인상 깊었습니다.

또한 붓다가 열반에 이르기 위해 고행을 한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진정한 자비를 베풀고 평화를 실천하기위해 이렇게나 극적인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걸까?라는 의문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마지막 부분에 플라톤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플라톤의 이성과 수학적 이념들이 영적으로 변하는 과정에 의아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인들은 이성의 바탕을 통해 감성이 나오는게 아닐까 생각해보았습니다.


2시간 넘는 시간동안 나온 이야기들이 너무나 많아 어디서부터 어떻게 정리해야할지 모르겠네요ㅎ


다음주엔 축의시대 마지막 시간인데 어떤 이야기들이 나올지 기대가됩니다!

그동안 배우고 이야기 나누었던 부분들을 잘 매듭짓는 이야기들이 나오지 않을까 싶은데요~

그럼 이상 후기를 마치겠습니다~


(아래 세실샘 발제문 첨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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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백전 시즌 3 / 『축의 시대』 7, 8장 / 2019.05.01. / 최세실리아

어떻게 살 것인가

『축의 시대』 7, 8장을 읽고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재미있다는 것이었다. 세미나에 참여하는 것은 원래도 재미있지만 『축의 시대』는 책을 펼치는 것도 너무 힘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책이 재미있어진 것이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읽어나가는데, 조금 더 밀고 나가보라는 조언들이 떠올랐다. 그 조언이 마음에 걸려서 생각을 해보았다. 왜 갑자기 재미있어진 걸까. 왜 전에는 재미가 없었을까.

일단은 꽤 많이 들어봤음직한 이름들이 나오기 때문인 것 같다. 알겠다! 싶은 것보다 모르겠는 것이 훨씬 많았는데도, 이름이라도 안다는 사실은 마음을 편하게 했다. 누군지 헷갈려서 앞을 다시 본다든가, 누군지도 모르겠고 뭐라고 하는지도 모르겠네! 라는 마음이 들지 않으니까 급한 마음도 들지 않았다.

그리고 막연하지만 7, 8장이 앞선 장들과는 어딘가 다르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전쟁이 사라지고 적들을 쓸어버리기 위한 효율적인 전투, 무조건적으로 따르기보다 자신의 경험과 일치하지 않으면 받아드리지 말라는 것은 오히려 현대와 비슷하게 느껴졌다.

나는 그동안 『축의 시대』를 읽으면서 불편하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사람들의 행동이나 상황들을 보고 ‘그럴 수는 있겠지’만 이해가 되지 않아서 그렇게 느꼈다. 뭐가 이상하냐고 물으면 설명할 수 없는 것까지 불편했다. 그런데 똑같은 책이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비슷하거나, 나에게 익숙한 방식이라고 느껴지니까 나도 모르게 이건 좀 재밌다! 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어떡하지

읽는 것이 재미있다고 발제까지 재미있는 것은 아니었다. 발제를 하려고하니 줄을 쳐놓은 문장들이 실 하나로 다 꿰어야 하는 구슬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어쩌지?’ 라는 마음만 들었다. 비단 발제뿐 아니라 대부분의 일에 ‘그래서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왜 해야 하는지,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는 의식적으로 생략한다.

나는 왜 하나로 명료하게 설명하고 싶어 하는지는 고민하지 않고 그래서 어떻게 써야 하지? 뭐라고 써야 하지? 라며 발제를 어떻게든 이어나가려 한다. 그동안 이런 행동이 효율적이고 뭔가 행위를 하는 것이라고 느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과정 없이 결과만 바라는 꼴인가 싶다.

그 의문은 붓다의 이야기를 보며 생겼다. 내가 생각하는 어떡하지? 와 어떻게 행동할지를 고민하는 것이 다르게 보였기 때문이다. 사실 책을 읽을 때는 많이 다른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근데 발제를 준비하면서 생각해보니 어떻게 할지 고민하면서 초조해하는 내 모습에 이건 전혀 다르다! 싶었다.

붓다는 우주에 관한 문제로 계속 그를 귀찮게 하면서 요가와 윤리적 실천을 제대로 하지 않는 한 수도승에게 그가 부상을 입고도 자기에게 활을 쏜 사람의 이름과 출신지를 알기 전에는 치료를 받지 않으려는 사람과 같다고 말했다. 그런 쓸데없는 정보를 얻기도 전에 죽기 십상이었다. 세상을 창조한 하느님을 아는 것이 뭐가 중요한가? 그것을 안다 해도 비통과 고통과 비참함은 계속될 것이다. 붓다는 형이상학으로 기운 수도승에게 말했다. “나는 지금 이곳의 이 불행한 조건들에 대한 치유책을 설교하는 것이다. 따라서 내가 너에게 설명하지 않은 것과 그것을 설명하지 않은 이유를 늘 기억하기 바란다.” (카렌 암스트롱. 축의 시대. 교양인. 485쪽)

세계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나는 누구인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는 아주 흥미로운 주제다. 토론을 시작하면 상상력이 허락하는 한 끝도 없이 이어질 수 있고, 논리적 오류를 제외하면 검증할 수 있는 차원을 벗어난다.

붓다의 비유는 누구라도, 그렇지! 누가 화살을 쐈는지 궁금할 때가 아니라 치료를 해야지! 라고 느끼게 한다. 문득 항상 누가 화살을 쐈는지 궁금해 하고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고민할 때가 있었다는 것이 떠올랐다. 어느 날 갑자기 고민이 시작된 것처럼 어느 날 갑자기 고민을 안 하기 시작해서 굳이 따져본 적이 없다. 당시에는 무척 중요한 문제를 고민하는 것 같았는데, 몇 년이 지나자 내가 엄청나게 시간을 낭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무작정 그래서 어떻게 할지를 고민했고, 의문이 들면 일단 지금 하는 것을 끝내고 생각하자고 미루어왔다.

하지만 내가 바쁘다고 느끼는 일이 끝나고 그 문제를 고민했는지 떠올려 보면 그런 적이 없다. 그리고 그런 의문들은 내가 바쁘고 초조할 때마다 찾아왔다. 주로 숙제나 받아야 하는 수업이 많을 때 의미에 대한 고민이 불쑥 올라왔던 것을 기억한다. 진짜 궁금하고 간절하게 고민했던 적이 있기는 했지만 도피가 더 컸다.

도피는 해답이 아니다

왜 내가 붓다의 가르침과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는지 알 것 같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나는 의미를 고민하기보다 치료를 해야지 라고 생각하는 쪽인데도 씨앗문장이 확 와 닿지 않았다. 멋지고 명쾌하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내 이야기 같지도, 내가 받아들여야 하는 가르침이라는 느낌이 잘 오지 않았다. 근데 마음에는 계속 저 문단이 걸렸다.

이유는 한 가지 같다. 의미를 고민하던 때에도 할 일을 끝내려는 지금도 궁극적으로 현재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에게 주어진 일보다 이걸 고민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여기거나, 지금 해야 할 일을 중요하게 느끼는 것 같으면서도 의식하지 못하는 어디에서는, 이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니까 하는 것이고 여유만 있으면 난 다시 제대로 고민할 거야! 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언제든지 의미를 고민할 마음을 어딘가에 두고, 나에게 의미하는 바를 고민해보라고 하면 ‘그런 것 저도 하는데요.’, ‘지금 당장은 안 되는데’ 라고 생각하고 막상 시간이 생기면 아무 것도 안하고 싶다고 느낀다. 바쁠 때만 현실을 벗어나 고민하고 싶게 하고 이게 해결이 안 되니까 네가 자꾸 에너지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거야! 이것은 진짜 알고 싶음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서도 저기에서도 회피하고 싶음에 가깝다.

나는 의미를 고민하라는 얘기를 들으면 습관적으로 무력감이 든다. 그때처럼 하릴없이 멍하니, 지금 당장 중요한 것을 착각하며 무기력해지라는 것 같기 때문이다. 아무도 나한테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붓다가 말하는 치료를 하라는 것은 의미를 고려하지 않고 눈앞에 닥친 일을 하는 것과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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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류수정님의 댓글

류수정 작성일

청강하게 배려해 줘서 고마워요 인(류학) 절(대) 미(루지마세요)팀. 세미나가 끝나고 나서도, 나눴던 이야기를 복귀하면서 마음에 잔잔한 파동이 아직도 남아있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한 번 물으면 놓지 않는 치열한 토론, 내옆에 친구가 진정으로 나아가기를 바라믄 마음, 그리고 맛있는 간식까지 다시 한 번더 고마워요

김삼봉님의 댓글

김삼봉 작성일

유독 손님이 많은 인절미세미나~ ㅋㅋ 반가웟어요 수정샘^^
엘림샘의 첫 후기 ㅎㅎ 다들 이번주에 재미있게 읽어와서 뜨거웠던 세미나였습니다~~
다음주에 벌써 축의시대 마지막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