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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백전

[청백전 뭄조]시즌3 3주차 발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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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형 작성일19-04-30 09:47 조회10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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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유전자

사람은 왜 존재하는가?

이 책이 주장하는 바는 사람을 비롯한 모든 동물이 유전자가 만들어 낸 기계라는 것이다.(리처드 도킨스, 이기적 유전자, 을유문화사, 2012, 40)

나는 선택의 기본 단위, 즉 이기성의 기본 단위가 종도 집단도 개체도 아닌, 유전의 단위인 유전자라는 것을 주장할 것이다.(앞의 책, 52)

이렇게 하여 최초의 살아 있는 세포가 나타난 것 아닐까? 자기 복제자는 단순히 존재하는 것만이 아니라 계속 존재하기 위해 자신을 담을 그릇, 즉 운반자vehicle까지 만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살아남은 자기 복제자는 자기가 들어앉을 수 있는 생존 기계survival machine를 스스로 축조한 것이다.(앞의 책, 64)

유전자는 자신을 보존시키기 위해 이기적일 수밖에 없다. 이타적으로 행동하는 듯 보일 때조차 장기적으로 혹은 다른 이유들과 통합해 보았을 때 결과적으로 본인에게 유리하게 행동했을 뿐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유전자는 이타적으로 보일 때조차 이기적이다. 우리는 그들이 계속 존재되어지도록 만들어진 기계이다. 그 기계로써 다 사용되어져 노쇠하면 폐기되고 유전자는 다른 기계로 옮겨가는 것이다.

자기 복제자

그들(자기 복제자)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창조했다. 그리고 그들이 살아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우리가 존재하는 궁극적인 이론적 근거이기도 하다. 자기 복제자는 기나긴 길을 지나 여기까지 왔다. 이제 그들은 유전자라는 이름으로 계속 나아갈 것이며, 우리는 그들의 생존 기계다.(앞의 책, 65)

유전자 결정론자는 누구나 유전자가 우리 행동의 여러 측면을 조종한다고 믿어야만 하는 것이 악마적으로 필요한 것 같다. 나는 유전적 자기 복제자에 대해서 그들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창조했다라고 썼다. 이 구절은 ‘[그들은]우리의 몸과 마음을 조종한다라고 잘못 인용되었다. 이 장의 문맥에서 창조했다created’라는 단어로서 내가 의미하고 있는 바는 명백하며, 이는 조종한다control’와는 매우 다르다고 생각한다. 사실 유전자가 결정론이라고 비난받을 만큼 강한 의미로 그 창조물을 조종하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피임할 때마다 어떤 노력도 하지 않고 (매우 간단하게) 유전자의 조종에 반기를 드는 것이다.(앞의 책, 433, 보주)

이전에 슈뢰딩거의 생명이란 무엇인가를 얘기할 때, 유전자 결정론에 대해서 온전히 이해되지 않은 의문이 있었다. 우리는 유전자에 의해서 행동하도록 결정되어지는데 그 책임은 우리가 전적으로 느끼고 가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슈뢰딩거는 자유의지보다는 결정론에 힘을 실어줬는데, 아마 여기서 말하는 우리의 몸과 마음을 창조했다는 의미였지 않았나 싶다. 그렇다면 결국 자유의지를 무시할 수 없는 것 아닐까?

불멸의 코일

유전자는 신체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간접적으로 제어하는데, 그 제어 과정은 엄격하게 일방통행이다. , 획득 형질acquired characteristics은 유전되지 않는다. 일생 동안 아무리 많은 지식과 지혜를 얻었을지라도, 유전적 수단으로는 그중 단 한 가지도 자식에게 전해지지 않는다. 새로운 세대는 무에서 시작한다. 왜냐하면 몸은 유전자를 불변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유전자가 이용하는 수단이기 때문이다.(앞의 책, 72)

유전자는 불변하는 복제의 욕구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타고난 성질을 잘 바꾸지 못한다. 사람이 잘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 어쩌면 유전자의 불멸의 자기 복제 욕구 때문일까? 그러면 변화하려는 우리의 노력은 무의미한 것이고, 오히려 우리는 우리의 유전적 특성을 받아들이려는 노력을 하는 게 맞는 것일까?

유전자 기계

DNA의 진정한 목적은 생존하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앞의 책, 101)

생존 기계의 행동에서 가장 뚜렷한 특성의 하나는 목적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앞의 책, 109)

우리는 결국 유전자가 생존할 수 있도록 몸의 상태를 잘 유지해 다음 기계를 태어나게 하는 게 생존의 전부인 것일까? 그렇다면 아이를 낳지 않는 삶은 유전자 입장에서 목적 달성에 실패한 것일까? 왜 유전자는 자신의 생존을 위한 기계들이 위협을 느낄 만큼 환경이 파괴될 지경까지 생존 기계들을 내버려 둔 것일까? 우리는 이기적인 생존 기계이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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