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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백전

[청백전 마늘쑥쑥조] 시즌3 원형과 무의식2 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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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쓰담쓰담 작성일19-04-23 13:53 조회5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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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적 무의식을 향해

 

 

원형과 무의식의 가장 핵심적인 개념을 꼽으라 하면 단연 원형무의식이 될 것이다. ‘원형은 생소하지만 무의식이란 개념은 이전에 프로이트를 읽으면서 본 적이 있다. 프로이트가 말하는 무의식은 일종의 생물학적 충동을 의미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것이 성적 충동인데, 이런 충동은 문명화된 사회에서 필수적으로 억압된다. 그렇기에 프로이트가 말하는 무의식을 내 속에서 발견한다면 기분이 상쾌하지만은 않다. 자신 안에 어떤 충동들이 들끓고 있었는지를 확인하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융이 바라보는 무의식은 이와는 좀 달랐다. 융은 프로이트가 제시한 무의식을 개인적 무의식이라 하며, 그보다 더 심층에 존재하는 것이 집단적 무의식이라 한다. 그리고 이 집단적 무의식이 내용이 바로 원형이라는 개념이다. 그렇다면 융이 제시하는 집단적 무의식개인적 무의식과 어떻게 다르며, 집단적 무의식이라는 개념을 도입한다면 무엇이 달라지는 걸까?

 

집단적 무의식을 향해

무의식은 이제 일반적으로 일종의 밀폐된 개인의 내밀한 삶으로 간주된다. 이것을 성경은 마음이라고 칭하며 특히 온갖 사악한 생각의 근원이 되는 장소로 해석하고 있다. () 의식에서 바라보면 무의식은 그렇게 보인다. 그러나 의식은 본질적으로 모든 것을 나누어 분리시키고 개별화해서 보는 대뇌의 일인 듯하다. 무의식도 마찬가지여서 전적으로 나의 무의식으로 간주된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무의식으로 내려가는 사람은 좁은 자기 중심적 주관성에 빠지고 막다른 골목인 심적인 지하세계의 동굴에 살게 됨으로써 모든 악한 동물의 공격에 내맡기게 된다고 생각한다. (칼 구스타프 융, 원형과 무의식, 솔출판사, p.126-127)

 

앞서 말했던 프로이트의 무의식, 개인적 무의식에서 의식은 무의식과 분명하게 나뉜다. 무의식은 충동을 의미하고, 의식은 충동을 억압하는 이성적인 사고를 뜻한다. 하지만 융은 이런 의식과 무의식에 대한 구도 역시, 의식의 틀을 벗어나지 않은 표층적인 것이라 말한다. 의식의 본질은 억압이 아닌 분리와 개별화이다. 충동과 구분되는 이성, 나와 구분되는 타인, 의식과 구분되는 무의식. 여기서 의식과 분리되는 것으로서의 무의식이 마음이라고 불린다는 건 의미심장하다. 우리 역시 내 마음대로 안 되는 마음을 얘기할 때, 이미 마음(개인적 무의식)’과 분리된 자신의 마음(의식)을 정의하고 있지 않았던가? 이런 개인적 무의식의 개념은 우리의 의식을 끊임없이 무의식에서 멀어지게 만든다. 무의식을 위험하고, 야만적이며 억압해야 할 대상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융은 이런 의식적인 개인적 무의식에서 더 깊숙이 들어가, ‘집단적 무의식에 대해 논한다. 이 집단적 무의식의 내용이 원형이다. 사실 이 집단적 무의식과 원형에 대해서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겠다. 다만 책에서 등장하는 집단적 무의식의 특징을 알아보려 한다.

 

원시인들에게는 명백한 일을 객관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 반면에 그는 모든 외부의 감각 경험을 정신적으로 일어난 것과 동화시키고자 하는 어쩔 수 없는 요청을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 그의 무의식적 심혼이 그렇게 하고자 하는 억제할 수 없는 충동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 이 외부적 관찰은 동시에 정신적 사건이 되어야 한다. (앞과 같은 책, p.108)

 

원시인에게 일어난 무의식적 충동은 외부의 감각 경험과 정신적 사건을 연결시키고자 한다. 그리고 그런 무의식적 충동이 있기에 비로소 정신적 사건(의식)이 생겨난다. 요컨대 모든 의식의 지층에는 무의식이 숨어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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