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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쑥쑥조] 시즌9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10>-3 후기 (89/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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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영영영 작성일20-10-24 16:55 조회5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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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다영입니다.

이번 주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10권 마지막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평소와 달리 저희는 프루스트의 소설이 아니라 다른 이가 쓴 프루스트에 대한 이야기를 더 읽게 되었는데요. 왜냐하면, 책 뒷부분이 본문은 정말 조금이고,  드레퓌스 사건에 대한 설명이 대부분이고, 역자 설명이 덧붙여져 있기 때문이었죠. 덕분에 평소보다 책읽는 속도가 더 빠르긴 했습니다...ㅎ 하지만 다들 드레퓌스 사건을 왜 이제야 덧붙이는 건지 의문을 품기는 했습니다.

이번 분량에서 제일 많이 비중을 차지한 인물은 생 루였는데요. 그런데 생 루 또한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밝혀졌습니다. 질베르트와 결혼을 했는데도 말이죠. 그런데 생루의 동성애 대한 '나'의 해석이 시간대에 따라 달라져요. 현재에는 생 루의 동성애로 생루의 모든 생활, 몸짓을 이해하는데 과거에 생루에 대한 기억에서는 생 루가 동성애를 할 리가 없다고 말을 합니다. 이를 위한 증거 사건이 있는데도 말이죠. 이 지점이 의외로 느껴졌는데요. 왜냐하면, 저는 몰랐던 과거의 사건을 지금 새로 알게 되면 과거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눈이 생길 거라고 생각했기 떄문이예요. 그런데 '나'에게 기억을 구성하는 것에서 중요한 것은 그 때 받았던 심상이지 정확한 사건전말이 이니었어요. 오히려 '나'는 그때의 자아에게 지금 남이 말해준 사건을 알려주기엔 너무 늦었다고 말하지요. 이 모습을 보면서 저는 찬영쌤의 북토크가 떠올랐었는데요. 찬영쌤은 어떤 일을 겪을 때 그때 글을 써야한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래야 사건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고 말이죠. 지나가버리면 어떤 상태였는지 모른다구요. 그런데 저는 과거의 순간들이 어떤 상태인지 말을 못할 때도 많아서, 그 상황이 어떤 상태인지 프루스트처럼  스스로 보기 위해서는 글을 써야한다는 생각이 다시 한 번 들었어요.

그리고 두번째로 습관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로웠는데요. 프루스트는 종종 습관에 대해 비유를 섞어 이야기해요. 이번에는 습관이 '전에는 열렬한 감정의 화산이 내뿜는 불길 속에 녹아 있었'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니까 누군가를 만나면서 생긴 감정의 표현이 습관이 되어 나에게 남아있다는 뜻으로 보였는데요. 저번 시간 누군가를 좋아할 때마다 매번 자아가 죽는 것과 비교해, 이 습관이라는 것은 어떤 원형으로 내 안에 박혀 있는 것 같았어요. 계속 죽고 새롭게 자라나는 자아들과 어딘가에 남아 있는 습관, 이 둘의 관계가 묘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럼 다음주에는 <낭송 논어/맹자>를 읽고 뵙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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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이야기, 다른 사실

 

는 샤를뤼스 씨 댁을 방문했다가 쥐피앙에게서 생 루에 대한 소식을 우연히 듣게 된다. 그가 최근에 모렐과 애정을 나누고 있다는 것이다. 그 말은 들은 는 현재 생 루의 생활들이 모두 모렐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아챈다. 그런데 얼마 뒤, ‘는 발베크에 머물게 되는 데, 에메에게서도 생 루에 대한 뜻밖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생 루는 발베크에서 와 처음 만났을 무렵, 이미 엘리베이터 보이를 방에 들이려 했었고 동성애적인 성향을 가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에메의 말을 들은 의 반응은 쥐피앙을 만났을 때와 다르다. ‘는 되레 에메나 엘리베이터 보이가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발베크에서 본 생 루에 대한 기억을 동성애에 맞춰 다시 구성할 법도 한데, 그럴 리가 없다고 말하는 의 반응은 의외였다. ‘는 왜 생 루에 대한 비슷한 이야기를 듣고 다른 반응을 하게 되었을까.

 

결혼한 생 루의 이면

세상 사람들은 질베르트와 결혼한 생 루가 여자를 무척 좋아한다고 생각한다. 생 루는 끊임없이 정부가 바뀌고, 여자와 있을 때면 그 여자 옆에서 떨어질 줄은 모르기 때문이다. 바람둥이이긴 하지만 아내 질베르트에 대한 매너도 훌륭하다. 아내와 레스토랑에 가게 되면, 아내의 외투부터 능숙하게 벗겨주고, 침착하게 식사 분부를 내리고, 공손한 태도로 아내를 보살핀다. 심지어 생 루는 질베르트의 재산관리도 하게 된다. 하지만 이는 과거에 질투심에 눈이 멀어 라셸의 자질구레한 일까지 감독하고 싶어서 살림까지 보살폈던 경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자들에게 호감을 사는 생 루의 행동은 단지 생 루가 예전에 라셸을 사랑하면서 생긴 습관에 불과했다. 그렇다고 라셸 때 생긴 습관들은 무의식 중에 나오는 행동일 뿐, 지금의 생 루는 라셸에 대한 어떠한 애정도 남아 있지 않다. 오히려 그의 중심에는 모렐이 있다.

먼저, 생 루가 여자를 좋아하는 척하는 것도 자신의 동성애를 숨기기 위함이다. 더 과장되게 행동함로써 자신을 방어하려고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정부와 곁에 있을 때, 마치 그녀의 포로가 된 듯이 행동했지만, ‘는 오히려 그 모습에서 샤를뤼스 씨의 여자를 대할 때 나왔던 신경질적인 불안감을 본다.

또한 생 루가 장모인 오데트에게 호감을 얻게 되는 이유에도 모렐이 있었다. 오데트는 자신의 사위를 마땅치 않게 여겼데, 일순간 태도를 바꾼다. 재산이 조금밖에 남아있지 않았던 오데트에게 생 루는 그녀가 갖고 싶어 하던 보석을 제공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 대가로 오데트는 생 루가 모렐과 함께 할 수 있도록 질베르트의 승낙을 받아주는 소임을 맡는다.

거기다 생 루가 질베르트의 재산관리를 알뜰하게 하는 것도, 모렐을 위한 것이었다. 그는 돈을 아끼고 아껴 모렐에게 목돈을 주고 싶었고, 질베르트가 모르도록 하기 위해 돈을 축내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는 이런 생 루의 여러 모습들을 보며, 쥐피앙의 말이 생 루의 진실을 알게 해주었다고 생각했다.

 

그땐 그랬지

하지만 생 루가 언제부터 동성애적인 성향을 지녔을까라는 질문 앞에서 확실히 결론을 내리지 못한다. ‘는 처음 발베크에서 생 루를 알게 되었을 때, 생 루는 라셸을 사랑하는 상태라고 기억하기 때문이다. 라셸과 헤어질 때에는 생 루가 자살까지할까 염려하던 였다. ‘는 그토록 여자를 좋아하는 상태에서는 남자를 좋아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생 루는 그 때 적어도 남자를 좋아하지 않았다. 발베크에서의 생 루가 동성애자가 아니었다는 의 또 다른 근거는 가 생 루에게 느꼈던 우정에 있었다. ‘는 생 루가 여자를 좋아하는 동안에만 참 우정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생 루가 엘리베이터 보이를 방으로 들이게 하려고 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도,  시절 생 루에게서 샤를뤼스씨가 특정 남자를 대할 때 나오는 제스쳐를 보았어도, 생 루가 모렐에게서 라셸의 모습을 보고 허공으로 무언가 찾는 눈길을 보냈다는 사실을 떠올려도 는 생 루가 그 때는 남자를 좋아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확실한 내용은 난 알 수 없었다. 사람은 오직 사물의 한쪽면만 보기 때문이다. 그 일이 나를 그다지 슬프게 하지는 않았을지라도, 나는 그 엘리베이터 보이를 이용하여 생 루에게 편지를 보내고 답장을 받아 오게 했건만, 그쪽에서는 그 때문에 자기 마음에 드는 사내하고 친해질 기회를 얻고 있었다니 얄궂은 노릇이라고 생각하였다. 사실 모든 사물은 최소한 이중으로 작용한다. 우리가 하는 극히 시시한 행위에다가, 다른 사람이 전혀 다른 일련의 행위를 접속시키는 법이다. 생 루하고 엘리베이터 보이의 사건이 사실로 있었다면, 나의 편지를 전달하는 평범한 일 속에 그런 일이 포함되어 있었다니 뜻밖이다.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10, 국일미디어, 339

 

에게 진실은 생 루가 남자를 좋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만 는 에메의 말이 사실이라면 자신의 행위가, 생 루의 표정과 행동이 어떻게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지는 생각한다. 에메의 말대로라면 가 사소하게 시키고 지나쳤던 심부름은 생 루에게 큰 파장을 일으킬만한 사건이었다. 하지만 는 에메의 말을 들어도 그때의 일에 대해 영혼에게 직접 알릴 수 있는 시간이 지나가버렸고, 다른 사람의 말이 영향을 주지는 못한다고 말한다. 그 때의 감정, 느낌을 다른 누군가가 다른 말을 해도 이미 너무 시간이 지나가버려서 다른 말로 부정할 수 없는 것이 된 것이다.

그 때 받았던 감정, 느낌이 기억하는 데 무엇보다 중요한 를 보며, 지나간 사건을 정확하게 본다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일까 싶다. 모든 사물은 최소한 이중으로 작용한다는 의 말처럼 각자 그 때의 느낌에 따라 다른 진실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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