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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쑥쑥조] 시즌9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10>-3 후기 (88/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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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영영영 작성일20-10-17 23:17 조회6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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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다영입니다.

이번주에는 호정언니의 발제문을 읽기 전에, 선민쌤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서문을 먼저 읽었는데요.

선민쌤도 처음 읽으실 땐 까만것은 글자요, 하얀것은 글자요 하시며, 줄거리가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다고 이야기 하셔셔,

우리만 그런게 아니었구나 싶어 안도감을 느꼈어요..ㅎ 그리고 선민쌤께서 14년동안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으셨다는 이야기도 놀라웠고, 프루스트는 그 많은 양의 글을 일일히 퇴고했다는 사실에 더 놀라웠답니다.(잃시찾에서 새로이 후광이 비쳐지는 느낌이었어요ㅎㅎ)

이번 편에서는 '나'가 알베르틴을 떠나보내고, 정리하는 과정을 보여줘요.

저는 사실 '나'가 질베르트와 헤어질 때와는 다르게 알베르틴은 죽어서도 오랜 기간을 슬퍼하고 '마지막 사랑'인 것처럼 이야기 해서,

알베르틴을 끝까지 잊지 못하겠구나 싶었는데, 그건 저의 착각이었습니다.

'나'는 이 과정을 알베리틴을 사랑하던 자아가 죽고, 새로운 자아가 자라는 것이라고 이야기하는데요.

그래서 새로운 자아는 낡은 자아에게서 알베르틴에 대한 사랑을 들으며 자랐기 때문에 알베르틴을 사랑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간접적인 사랑이라고 이야기해요. 우리는 보통 내가 과거에는 누구를 좋아했고, 지금은 누구를 좋아하고로 생각하는 데,

프루스트는 누군가를 사랑할 때마다 새로운 자아를 말해서 흥미롭게 느껴졌어요.

저희는 이렇게 낡은 자아, 새로운 자아로 이야기를 하면 과거의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고, 글로 쓰기에도 편할 것 같다고 이야기를 나누었는데요. 이렇게 자신을 바라보면, 또 어떻게 다르게 보일지 생각해보고 싶어집니다. 확실히 과거에 강렬한 감정을 느꼈던 나를 낡은 자아라고 했을 때 느껴지는 가벼움이 있는데요. 이 가벼움은 왜 생기는지도 궁금해지구요.

아무튼, 이렇게 새로운 자아가 자라나고 있는 '나'는 언제 그랬냐는듯, 다른 여자들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합니다.

'나'는 어쩜 이렇게 사랑에 잘 빠질 수 있는지도 신기하네요..ㅎㅎ 이 마음이 되고 싶기도 하구요ㅎ

그럼 다음시간에는 10권의 마지막 부분을 읽고 만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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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속 존재 되기

이호정

시간속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프루스트의 자전적 소설이다. 10사라진 알베르틴에서는 알베르틴이 죽은 후 마르셀이 겪어내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지금 우리는 중반까지 읽었는데, 나는 이 장면 장면들이 꽤나 서프라이즈하게 느껴진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은 후에도 그녀가 맺었던 관계들에 대해 여전히 질투를 하고, 그 사이에서 있었던 일들을 어떻게든 적나라하게 알고 싶어 하다니. 아직도 이런 욕망이? 뿐만 아니다. 시간이 조금 흐르자, 이 엄청나게 강렬했던 질투 또한 싸하게 식어버린다. ‘망각이란 것에 의해서.

망각을 점진적으로 가져오는 것이 시간이라면, 그 망각은 또한 시간의 관념을 크게 바꾸어 버린다.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0, 국일미디어, 227)

이런 문장들, 그리고 프루스트가 시간과 시간의 흐름 속에서 펼쳐내고 있는 것들을 보고 있으면, 그가 마치 시간과 어떤 놀이를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어떤 부분은 물리적 시간으로는 짧은 순간임에도 굉장히 긴~ 호흡으로 서술을 하고, 어떤 부분에서는 시간의 변화에 따라 천차만별의 서술이 이어진다. 이것은 아마 자전적 소설의 특성상 그가 글을 쓰는 당시에 느끼는 것들에 따라서 생기는 독특한 흐름일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나는 문득 이런 게 궁금해졌다. 그는 시간 속에서무얼 하고 있는 걸까? 이 방대한 글은 단지 단순한 묘사가 아니다. 어떤 스토리를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었다면 훨씬 더 간결하고 명료한 방식을 썼을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 글은 무어란 말인가?

시간, 존재를 변이시키는 되기

프루스트는 시간이 망각을 점진적으로 가져오며, 그 망각에 의해 시간에 대한 관념이 크게 바뀐다고 말한다. 알베르틴에 대한 망각으로 인해 소설 속 화자가 시간을 느끼는 방식이나 감각이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미 완전히 새로운 인물이 되어 가고 있었다. 우리의 애정이 식는 것은, 상대방이 죽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죽기 때문이다.사람은 자기가 기억하는 일에만 충실할 수 있고, 자기가 아는 일밖에는 기억하지 못한다. 나의 새로운 자아, 낡은 자아의 그늘에서 점점 자라면서, 그동안에 알베르틴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들었던 것이다. 낡은 자아를 통하여, 그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통하여, 새로운 자아는 그녀와 아는 사인 줄 여겨 정을 주고, 사랑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간접적인 애정인 것이다.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0, 국일미디어, 230)

망각은 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만든다.(여기서 는 주체를 뜻하는 말이라기보다는, 소설 속 화자인 마르셀을 가리킨다.) 어떻게? 우리 자신을 죽임으로써. ‘낡은 자아는 망각 속에서 서서히 죽어간다. 기억을 잊는 행위는 낡은 자아를 죽이고 새로운 자아를 탄생시키는 일이다. 그 속에서 새로운 자아는 낡은 자아에게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알베르틴에 대한 애정이 갖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간접적인애정에 불과하다. 결국 시간을 다르게 감각하게 되었다는 것은 존재를 다르게 겪게 되었다는 것과 마찬가지가 된다. 프루스트에게 시간은 존재를 변이시키는 사건이었다. 그럼으로써 존재란 것은 시간 속에서, 시간으로만 가능한 되기였던 것이다.

1907년 허랑방탕한 부르주아 청년은 자신의 삶을 글쓰기에 바칠 것을 결심한 그 순간부터 1922년 죽기 몇 시간 전까지 오직 글을 고치는 일에만 전력을 쏟았다. 그리하여 그가 창조한 것, 그것은 하나의 소설이 아니라 바로 작가 프루스트였다. 길고 긴 그의 문장들은 허영에 찬 시대의 한가운데에서 그 세계의 온갖 약속들과 명령들에 붙들리지 않는 자기 자신을 만들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리고 그토록 철저한 퇴고라니! 자신이 쓴 모든 문장들을 검토한다는 것은 통념과 위선으로 채워진 자신의 삶을 남김없이 되묻는 일인 것이다.

(오선민,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한 작가의 배움과 수련, 작은 길, 10)

프루스트가 골방 안에 자신을 가두고 시간 속에서하고 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마지막 권을 덮을 때까지, 그리고 또 다른 프루스트와의 만남을 기약하면서도 쭉 가져가고 싶은 질문이다. 그 질문을 품지 않으면 그의 이 긴긴 글들을 그냥 대충 스쳐지나가게 될 텐데, 그러기에는 이 글들이 뭐라 듣기 힘든 소리들을 엄청나게 외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니 말이다.

선민샘은 그가 시간 속에서 하고 있었던 것이 자신을 조각하는 일이었다고 표현한다. 나는 아직 그렇게까지는 느끼지 못하지만, 그가 계속해서 되기를 시도하고 있다는 것은 조금씩 느껴진다. 쓰는 것이 굉장히 힘든 감정, 자신을 불편하게 하는 것들, 존재의 밑바닥에 있는 심연을 끌어올리는 일들이 그가 고도의 집중된 상태로 벼려낸 글 속에 녹아있다. 존재를 존재 자체의 문제로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 속의 존재’, 배치의 문제로 고민하는 그의 글에서 아주 조금씩 자유로움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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