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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백전 인절미] 시즌9 <철학적 탐구> 4/5 후기 (89/100)

게시물 정보

작성자 이달팽 작성일20-10-17 15:16 조회7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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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0. 14 (시즌9, 9주차)

책: 『철학적 탐구』 4/5

참여자(3): 이용제, 이윤하, 최세실리아





청백전 수요반 시즌 9, 9주차 후기입니다. 꽤나 고비였던 9시즌이 얼마 남지 않았네요!
가수 새실은 이날 녹음이 있어서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대신 씨앗문장을 쓰기로 했어요.

저희는 도란도란(?) 세 명이서 세미나를 했습니다.

(말 많은) 세실이 없어서 세미나가 일찍 끝났어요.ㅎㅎ;


저는 이번주 발제를 쓰면서 비트겐슈타인에 ‘언어’에 대한 관념적인 이미지를 떼어내려고 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생각’하지 말고, 실제로 일어나는 일을 ‘보라’고 하는 그의 메시지는 상당히 웃기기도 하고, 절절하기도 합니다. 그의 스승이었던 러셀은 『철학적 탐구』를 읽고, 비트겐슈타인이 심통이 나서 철학을 쓸모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렸다는 식으로 이야기 했다고도 합니다.


비트겐슈타인은 지난주에 이어서 ‘사적 언어’의 불가능성에 대해서 이야기 합니다. ‘언어’를 쓰는 순간 우리는 모두 공적 존재가 된다는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지요. 우리는 흔히 언어와 각자의 ‘상상’을 연결지어서 생각하는데요. 이를테면 똑같이 ‘빨강’ 이라고 이야기해도 각자가 생각하는 ‘빨강’이 있지 않느냐는 식의 생각. ‘빨강’을 보고 각자의 머릿속에 빨간색을 떠올린 뒤 이것은 ‘빨강’이라고 불리는 것, 이라고 생각하며 ‘빨강’이라고 말한다는 시의 생각. 비트겐슈타인은 이게 무슨 의미냐고 말합니다. ‘문법적’으로 생각했을 때, 각자의 빨강이 있는지 없는지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요. 우리는 똑같이 ‘빨강’이라고 말하고 ‘빨강’이라고 알아듣지 않습니까?!


또 후반부에는 ‘느낌’도 언어로부터 배제시킵니다. 우리는 말을 할 때의 어떤 ‘느낌’이 언어의 의미를 만들어낸다고 생각하는데, 비트겐슈타인은 이를테면 ‘희망’이 어떤 느낌을 주는 것이 의미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희망’이라는 낱말이 놓인 언어게임 자체가 중요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어떤 언어게임을 만들 수 있느냐가, 그 낱말이 어떻게 쓰이냐가,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이죠. ‘느낌’이 의미를 만든다고 하면, ‘사적’인 언어가 가능하다는 식의 논리로 전개 될 수 있거든요. 다음주에 이어서 나올 것 같은 내용이니, 잘 이해되진 않았지만 이 부분은 여기서 마무리를 해야겠습니다.


여튼, 이렇게 우리가 ‘공적’으로 언어를 만들고 소통할 수 있는 것은 같은 ‘삶의 형식’을 공유하고, ‘자연법칙’을 기반으로 언어가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우리는 다치면 고통스럽고, 이것을 ‘아픔’이라는 언어로 말할 수 있습니다. 모두가 고통을 느끼니 어떤 단어로 개념화할 수 있었겠지요. 또 말을 막 배우는 아이는 ‘아픔’이라는 것을 언어와 함께 배우겠지요.


세미나를 하다 보니 비트겐슈타인이 어떤 말을 하는지 조금 이해가 되어가고, 그러면서 슬슬 어떤 의문이 올라오더군요. 그래서 비트겐슈타인이 뭘 하고 싶었던 거지??.. 라는... 그래서 다음 주 과제는 이 책을 통해 비트겐슈타인이 무엇을 하고 싶었나, 혹은 무슨 말을 하고 싶은가, 하는 것을 생각해보기입니다. 모두 담주에 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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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14. / 청백전:시즌9 / <철학적 탐구> 4/5 / 발제 이윤하


상상과 효과 사이 : 언어게임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적 탐구』는 ‘언어’라는 것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덕지덕지 붙어있는 관념들을 썰어 내는 작업이다. 비트겐슈타인은 그렇게 정돈된 언어로 철학을 할 것이다. 혹은 그런 정돈 자체가 그의 철학이다. 


1. ‘상상’과 언어 떼어놓기


  이번 장에서 언어에 붙어 있는 관념은 ‘상상’이다. 우리는 언어 이전에 우리의 머릿속에 ‘상상’, ‘이미지’가 있고, 언어는 이 상상/이미지를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어떤 대상이 있고, 그것을 기술하고, 대상은 직접 보여줄 수 없다는 듯이 말한다(no.374). 혹은, 낱말들을 받아들일 때, ‘상상’하는 과정을 거쳐서 이해한다고 생각한다. ― 정말 그런가? 우리는 빨간색을 보고, 머릿속에서 ‘빨강’의 이미지를 추출한 뒤, 이것은 ‘빨갛다’고 말해지는 것임을 기억하여, ‘빨갛다’고 말하는가?


381. 나는 이 색깔이 빨갛다는 것을 어떻게 인식하는가? - 이에 대한 하나의 대답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 “나는 우리말을 배웠다.” 

_『철학적 탐구』(아카넷), p351

   384. 당신은 ‘아픔’이라는 개념을 언어와 함께 배웠다.

_p352


  ‘빨간색’을 ‘빨갛다’고 볼 수 있는 것은 우리에게 ‘빨갛다’는 언어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비트겐슈타인의 입장이다. 빨간색(이라는 현상)과 ‘빨강’(이라는 말) 사이에 굳이 ‘이미지’라는 것이 끼어야 할까? 그것은 동어반복이기 때문에 별 의미가 없다. ‘표현’의 차이를 만들 뿐. ‘상상’에 대해서 이야기할 것이라면 그 낱말이 어떻게 사용되는 낱말인지나 연구해보자.

 ‘개념’, 즉 우리의 인식과 언어는 떨어져 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본질’을 이야기하고자 한다면 그것의 ‘문법’을 탐구하면 된다(no.371). 어떻게 말해지는지가 전부다. 그 외 다른 ‘본질’은 없다. 언어와 실재 사이의 ‘해석’체계인 ‘이미지’를 걷어내면 언어와 세계가 딱 붙는다! (기호와 의미를 떼어놓을 필요가 없다! no.504)


2. 언어 게임은 공적인 장치


  비트겐슈타인이 ‘언어’를 말할 때 사용하는 개념이 바로 ‘언어게임’이라는 것이다. 그는 쓰임에 의해 의미가 규정되고, 관습과 맥락에 의해 의미가 생성되는 장을 설명하기 위해서 이 말을 쓴다. 이를테면 공사장에서 “석판!”이라는 말은 ‘명령과 수행의 언어게임’ 안에서 ‘석판을 가져오는 행위’를 촉발하는 명령이 된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렇게 생각했을 때, 빠질 수 있는 하나의 오류는 언어가 생성하는 의미를 발화의 ‘효과’로 생각할 수 있다는 점이다.

  498번 예시를 보자. “내게 설탕을 가져와라!”라는 명령은 의미가 있다. 하지만 “책 내게 설탕!”이라는 말은 의미를 만들지 못한다. 그렇다고 아무 효과도 없는 것은 아니다. 듣는 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발화자를 몇 초간 쳐다보게 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 그렇지만ㄴ 이런 효과가 곧 의미인 것은 아니다. 그것은 ‘언어게임’의 장을 만들지 못했다. 즉 ‘언어’가 아니다, ‘통용’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언어게임’의 장은 단순히 ‘현상’을 보여주는 장이 아니라 이렇게 ‘공적’인 장이다.


492. 하나의 언어를 발명한다는 것은, 자연법칙을 기반으로 (또는 그것과 일치해서) 특정한 목적을 위한 하나의 장치를 발명한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우리가 한 게임의 발명에 대해 말하는 것과 유사한 다른 의미도 지닌다. 여기서 나는 “언어”라는 낱말의 문법을 “발명하다”라는 낱말의 문법에 결부시킴으로써, “언어”라는 낱말의 문법에 관한 어떤 것을 말하고 있다.

_p415


  언어는 상상을 옮기는 것도 아니고, 어떤 효과를 일으키는 것도 아니다(일으키긴 하는데 그것이 본질적인 것은 아니다). 언어는 하나의 ‘장치’다. ‘삶의 형식’에 기반 해서 발명된 장치. 그러면서 하나의 공적인 게임이다. 

  위 소제목에서 정리했듯 언어와 세계는 딱 붙어있다. 그렇게 생각해보자면, 언어는 ‘세계’와 맞닿을 수 있는 장치, 우리가 우리의 외부와 게임을 걸 수 있는 도구다. 말을 하고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이미 외부와 함께하겠다는 행위다. 정확히는 외부와 함께하는, 외부를 갖가지 방법으로 끌어들이는 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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