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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쑥쑥조] 시즌8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8>-2 후기 (79/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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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형 작성일20-08-01 15:21 조회3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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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다영입니다.

이번 시간에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8권을 중간부분을 읽었어요,
이번에는 1권의 첫부분처럼,  꿈이야기가 많이 나왔었는데요. 꿈 이야기를 볼 떄마다 느끼는 거지만, 프루스트는 꿈에 대해 우리와는 다른 감각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저는 꿈이라는 것을 잠자는 동안에 머리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프루스트는 현행생활과 다른 어떤 것, 어쩌면 또 다른 삶이라고까지 이야기를 합니다. 저희는 이 부분을 보면서 전에 읽었던 프로이트와 비교를 해보았는데요. 프로이트는 단순히 꿈에서 있었던 일들은 지금 현실의 어떤것으로 환원하는 방식인데, 프루스트는 우리의 세계가 엄첨 넓어지는 방식으로 꿈을 이야기하는 것 같아 흥미로웠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흥미로운 부분은 프루스트가 사람의 보는 시선인데요. 전에 알베르틴과 짧은 입맞춤을 하며 10명의 알베르틴을 보았다고 하는 것처럼 이번에는 또 하나 흥미로운 이야기를 해줍니다. 


 
상대인간이란 우리와의 관계에 비례해 끊임없이 위치를 바꾼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이 세계의 끊임없는 걸음 속에서 우리는, 한순간의 시각 속에 상대방을 움직이지 않는 것으로서 바라본다. 상대방을 바라보는 그러한 한 순간은, 인간을 끌어들이는 운동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짧다. 그러나 적어도 그 자체로서는 두드러진 변화를 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 각각 다른 순간의 그리고 상당히 서로 가까운 한 계열 속에서 포착한 상대방의 심상을, 우리의 기억에서 골라내기만 하면, 그 두심상 사이의 차이는 우리하고 관계에 비례하여 상대방의 변이를 나타내는 척도가 되는 법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국일미디어, 186쪽


 

그런데 관계는 늘 변하기 마련이고, 그에 따라 상대도 위치도 바꾸지만, 우리의 시각은 그 위치를 따라갈 만큼이 안된다는 말이예요. 고정적으로 보지 않는다면. 더 다채롭게 볼 수 있을텐데, 이것이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양철학을 공부하는 친구들은 이 장면을 보고 들뢰즈의 '이것임'이라는 개념도 설명해주었는데요. '이것임'은 정해져 있는 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때 그떄 달라지는 관계망을 가르키는 것이라고 해요. '이것임' 어떻게 알아차릴 수 있을까 궁금해집니다ㅎㅎ

그럼 다음주에는 8권 마지막부분을 읽고 만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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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는 세상

    원자연

 

프루스트는 이라는 것을 꽤나 주목했던 듯하다. 잠에서 깨어나 기억의 실타래를 찾아가는 모습도 일전에 한 번 묘사한 적이 있었고, 이번에 소돔과 고모라3장을 시작하면서도 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정화스님도 우리가 자는 동안 뇌 속의 청소부들이 활동한다고 하신다. 장기기억과 단기기억으로 오늘의 일들을 분류하는 일을 한다고. 그런데 이 꿈속은 정말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을 위한 그런 역할을 하는 걸까? 하루의 1/3, 잠자는 시간은 그저 깨어있는 시간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일까?

 

이라는 세상

저자는 세상에 여행이란 게 없었다면, ‘여행이라는 건 아마 이었을 거라고 한다. 꿈나라에 간다고 하지 않는가. 어렸을 적 해볼 만한 질문, ‘우리는 잘 때 정말 어딘가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 아닐까?’. 작가는 이 질문을 다소 진지하게 던지고 있다. 실제로 우리는 잠시 꿈을 꾸는 것이 아니라 정말 다른 세상을 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그런 질문 말이다.

프루스트는 잠들었을 때 만나는 세상을, 또 하나의 세상으로, 또 하나의 삶으로 보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의 잉여, 혹은 그것을 위한 것으로 보는 게 아니라 독립된 또 다른 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꿈속 세상은 정말 재밌다. 시간이 흘러가는 감각도 다르고, 꿈속의 나의 능력치(?)도 정말 다르다. 현실에서의 15분의 단잠이 꿈속에서의 하루가 되기도 하고, 잠깐 꾸벅 존 것 같은데 하루가 사라져 있기도 하다. 분명 그곳은 프루스트의 표현에 의하면 시간 바깥에, 시간의 한계를 넘은 곳에존재한다.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삶이라. 잘 상상되지는 않지만, 그곳에는 정말 다른 삶의 이야기가 펼쳐질 것만 같다.

 

회상의 물결을 타고

내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시간 바깥의 그곳, ‘기억에 대한 키를 가지고 있는 것은 맞는 듯하다. 잠을 통해 우리의 기억에 변화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가 철썩 같이 믿고 살아가는 기억’. 그 기억과 관련하여 회상에 관한 이야기를 잠시 살펴보자.

 

우리는 자기의 모든 회상을 소유한다. () 다만 회상의 전부를 상기하는 능력이 없다니. 그럼 우리가 상기 못하는 회상이란 뭔가? 아니, 더 깊이 생각해보자. 우리는 살아온 서른 해의 회상을 일일이 상기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 회상의 물결은 우리의 온몸을 적신다. 그럼 어째서 서른 해에 한정하는가? 어째서 그 전생이라는 걸 탄생의 저쪽까지 연장하지 않는가? 내 뒤에 있는 회상의 일부를 내가 전혀 모르는 이상, 그것들이 내 눈에 안 보이며, 그것들을 상기하는 능력이 내게 없는 이상, 내가 모르는 그 더미속에, 회상이라는 것, 내 생명의 저쪽으로 높이 거슬러 올라가는 회상이라는 것이 없다고 누가 나에게 말할 수 있겠는가? 내가 내 몸 속에, 내 둘레에, 내가 상기하지 못하는 수많은 회상을 가질 수 있다면, 그런 망각은(이야말로 사실상의 망각이다, 내가 하나도 보는 능력이 없으니까) 내가 다른 인간의 몸속에 극단으로 말해 다른 유성의 세계에 산 생명에까지 미칠지도 모른다.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8, 국일미디어, 140~141)

 

우리가 떠올리는 기억, 회상. ‘우리가 떠올리는 것이기에, ‘회상은 우리 스스로 소유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분명 우리의 기억임에도 불구하고 일일이 기억을 떠올리는 것은 쉽지 않다. 또 모든 것을 기억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프루스트는 문제를 제기한다. 어째서 내 생명의 저쪽까지 회상할 수 없다고 누가 말하더냐고. 인용문의 맨 마지막 문장이 인상적이었다. “내가 내 몸 속에, 내 둘레에, 내가 상기하지 못하는 수많은 회상을 가질 수 있다면, 그런 망각은 내가 다른 인간의 몸속에 극단으로 말해 다른 유성의 세계에 산 생명에까지 미칠지도 모른다.”

티벳 다람살라 고원에서 수련하는 스님들은 전생의 기억들을 떠올려, 자신이 어디까지 연결된 존재인지를 확인하는 작업을 한다고 한다. 그렇게 자신의 친지부터 연결된 먼 존재까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악업을 구름으로 모아 본인에게 가져오고, 자신이 쌓은 선업을 그들에게 되돌려주는 일을 한다고 한다. 정말 우리가 스스로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것들을 기억속에서 끌어올려 회상할 수 있다면, 내가 세상의 존재들과 연결됨을 느끼고, 그 힘을 느끼게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프루스트가 기억, 그리고 에 집중하던 것은, 이런 연결성을 어렴풋이나마 느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우리가 다른 유성의 세계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것을 긍정하게 되었을 때, 우리는 지금의 세계뿐만이 아니라 자면서 가게 되는 또 다른 세상도 실재한다는 감각을 느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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