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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쑥쑥조] 시즌8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7>-1 후기 (7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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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소담상 작성일20-06-28 14:40 조회59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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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너무 많아~ 기쁘게 오랜만에 후기를 쓰게 된 소담입니다ㅎㅎ

이거 언제 다 읽어~ 하던 프루스트도 어느 새 7!

사교계를 누비던 게르망트 쪽을 지나 소돔과 고모라 편으로 들어갔습니다.

 

이름부터 예사롭지 않은 소돔과 고모라 편은

샤를뤼스 씨의 찐한 연애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이전 세미나에서부터 이 사람 좀 이상하다는 평판을 받던 샤를뤼스 씨.

그는 남자인데 남자를 좋아하는 동성애자였습니다.

하지만 소돔과 고모라에 나온 동성애의 모습은

우리가 흔히 동성애 하면 떠올리는 부정적인 이미지만은 아니었습니다.

 

나의 이 이론부터 나오는 게 무엇보다 심하게 그들을 화나게 할 테지만그들은 사랑이라는 것의 가능성을 거의 빼앗긴 애인들이다. 그 사랑의 희망이 그들에게 그처럼 큰 위험이나 고독을 견디는 힘을 주지만, 실현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그들이 사랑하는 것은 바로 조금도 여자다운 구석이 없는 남자, 도착자가 아닌 남자, 따라서 그들을 사랑할 수 없는 남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의 욕망은 영영 채워지지 않을 것이다.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7, 국일미디어, p.26)

 

우리와 같은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동성애는 정상적이지 않다는 이미지 때문에

동성애자들은 자연스러운 자신의 마음을 감출 수밖에 없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샤를뤼스 씨의 욕정이 일반 사람들의 그것보다 얼마나 더 크고 증폭되었는지를 봅니다.

우리가 결코 손에 넣을 수 없는 것에 대해 더욱 애착하듯,

동성애자들의 사랑도 그것이 억눌러질 수밖에 없기에 더욱 강렬해진다는 겁니다.

샤를뤼스 씨 역시 사교계에서 만나는 모든 잘생긴 청년들에게 눈이 돌아가는 참 못 말리는 사랑꾼인데요,

그의 그런 넘치는(?) 사랑됨 속에는

결코 자신을 사랑해주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는 데서 나오는 결핍이 숨겨져 있었다는 겁니다.

(물론 이것도 의 이론에 지나지 않지만)

참 이걸 보면서 왜 이렇게 굳이 힘들게 사랑을 해야 할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요,

모든 동성애자들이 그런 건 아닐 거라 믿으며

일단 넘어가 보았습니다.

 


는 샤를뤼스 씨가 공작 부인네서 일하는 청년 쥐피앙과 밀회를 갖는 장면을 보면서

그동안 자신이 샤를뤼스 씨를 보면서 느꼈던 위화감의 정체를 알아냅니다.

나는 샤를뤼스에게서 한 명의 여성의 모습을 발견해냈곤 했는데요,

그가 동성애자라고 하니 무릎을 탁 치면서 의문이 해결되었던 겁니다.

그런 전환을 재밌게도 배가 부른 아가씨를 보고서 어디가 아프시죠?”라고 묻는

눈치 없는 사람과도 같았다고 말합니다.ㅎㅎ

 

사내는 여인의 부른 배를 알아채지 못하고, 여인이 미소지으면서 , 요즘 좀 피곤해서요하고 되풀이하는데도 주책없이 어디가 아프시죠?”하고 짓궂게 묻는다. 그러다가 누가 그에게 그녀는 배가 불러라고 말하자, 언뜻 여인의 배를 본 다음 그것밖에 눈에 보이지 않는다. 눈을 뜨게 하는 것은 이성이다. 우리에게서 한 착오가 없어지면 한 감각이 늘어난다

(앞과 같은 책, p.23)

 

무언인가를 안다는 건, 감각이 늘어나는 것과도 같다는 것.

우리가 배우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나로만 꽉 차 있는 세계에서 모순으로밖에 보이지 않던 것이

배움이 일어난 후에는 너무 당연한 것으로 보이는 이 발견!

배움이 관념적인 데 머무르는 게 아니라, 실제 우리의 세계를 바꿔놓는다는 걸

다시 한 번 짚어보았습니다~





청백전 마늘쑥쑥조 / 시즌 8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7발제문 / 2020. 06. 21. / 박소담


아름다움을 뽑아내다

 

() 머리를 쳐들고, 상체에 거만스러운 자세를 취하고, 한쪽 주먹을 볼꼴사납게 건방지게 허리 위에 놓고, 궁둥이를 불쑥 내밀고, 조물주의 섭리로 뜻밖에 나타난 땅벌을 향하여 난초 꽃이 하는 듯한 교태스러운 자세를 지었다. 쥐피앙이 그처럼 보기 흉한 모양을 할 수 있으리라고는 미처 몰랐다.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7, 국일미디어, p.12)

 

는 게르망트 공작 부인네에서 샤를뤼스 씨와 쥐피앙의 은밀한 만남을 목격한다. 이전부터 나에게 심상치 않은 기운을 풍겨 왔던 샤를뤼스 씨는 아니나 다를까 남자인데 남자를 좋아하는 동성애자였다. 샤를뤼스 씨는 마침 찾아간 게르망트 공작 부인네에서 일하는 쥐피앙에게 첫눈에 반하면서(?) 그에게 열렬한 눈빛을 보낸다. 위 장면은 그 눈빛에 화답하는 쥐피앙의 자태인데, 여기서 힘들겠지만 좀더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자. 샤를뤼스 씨는 왕년에 잘생긴 외모가 남겨져 있긴 하지만 배가 불룩 나온 50대 사내’(앞과 같은 책, p.43)이고, 쥐피앙은 엉덩이가 큰() 튼실한 청년이다. 그런 둘이 서로 애교를 떨며 사랑을 나누는 모습이란사실 그렇게 아름답게 그려지진 않는다. 나의 말마따나 그건 지금의 우리가 보더라도 보기 흉한 모양이 아닐까 싶다.

이처럼 보기 흉한것만큼은 아니더라도, ‘동성애자라는 말이 튀어나오면 단순히 남녀 커플이라는 얘기를 들을 때와는 달리 멈칫하게 되는 지점이 있다. 동성애라는 사랑의 형태가 소위 정상이라 생각되는 남자와 여자의 맺어짐이 아니라는 생각에서다. 머리로야 각자의 자유는 존중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신체에서도 동성애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데까진 이르지 못한 것이다. 프루스트가 살던 당시에는 동성애를 바라보는 시선이 지금보다 안 좋으면 안 좋았지 더 낫진 않았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가 둘의 만남을 바라보는 시선은 정말 독특하다. 쥐피앙을 흉하게 보던 는 곧 그들의 만남에서 어떤 기이한 양상을, ‘자연이라고 부를 수도 있는 아름다움을 발견해내곤 놀라워한다. 이처럼 의 감상을 순식간에 바꾸어버린 자연이란, 그 아름다움이란 대체 무엇이었을까?

 

의도하지 않음에서 드러나는 의도

샤를뤼스 씨와 쥐피앙의 만남은 사실 좀 의외인 지점도 있었다. 샤를뤼스 씨야 이전부터 동성애자의 느낌이 났다고는 하나, 이전에 등장했던 재봉사 쥐피앙의 모습에서는 어떤 동성애자의 흔적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랬던 그가 샤를뤼스 씨와 만나자마자 능숙하게(?) 교태를 부리는 모양이라니! “그러나 또한 그가 오랫동안 되풀이해 온 듯싶은 () 이러한 완벽함은, 우리가 외국에서 한 동포를 만나 금세 이심전심되어 스스로 양해에 이르는, 또 여태껏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이 그런 장면이 미리 설정되어 온 듯한 생각이 드는 때밖에 자연히 일어나지 않는다.”(앞과 같은 책, p.12)

물론 의 눈썰미가 그리 좋지 않았다 말할 수도 있겠지만, 또 다르게도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쥐피앙 본인조차도 자신이 그런 식으로 행동할 수 있을 줄 몰랐던 건 아닐까? 그저 평범하게 재봉사로서만 살아왔던 쥐피앙은, 샤를뤼스 씨와 만난 그 순간에 동성애자가 되어 버렸던 건 아닐까? 이것은 각자의 성 정체성이 원래부터 따로 있어서, 그것에 맞게 사랑을 하는 구도와는 좀 달랐다. 사랑은 그것을 이루는 두 사람이 각자 누구든남자든 여자든관계없이 서로 눈빛을 주고받고 밀당을 하는 과정에서 생겨난다. 결과적으로 보면 샤를뤼스 씨와 쥐피앙의 만남은 남자와 남자 간의 만남인 동성애였지만, 그 둘이 이전부터 남자를 만나리라 다짐하고 만남을 이루어냈던 건 아니라는 거다.

그걸 는 외국에서 한 동포를 만나 마음을 나누는 것과 같이 본다. 여행을 가서 어떤 사람을 만나리라 다짐한 건 아니지만, 그곳에서 마음이 철썩 같이 맞는 상대를 만난 것이다. 그 만남이 너무 완벽하여 마치 그걸 위해 여행을 한 것처럼 생각될 정도로! 이런 만남이 무엇보다 기이한 건, 어떤 의도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마치 의도가 있는 것만 같은 사건이 연출되기 때문이다. 쥐피앙이 샤를뤼스 씨와 만남으로부터 동성애를 깨닫듯, 의도하지 않음에서 드러나는 의도. 그것을 프루스트는 자연이라고 했다.

사랑이라는 자연은 원래 어떤 의도하지 않음에서 생겨난다. 온갖 가문과 신분제도와 국경을 넘나드는 사랑의 위력을 생각해보면 그런 자연이 낯설지 않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자연에서 어떤 정상성을 추구한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인데 하물며 동성애에서랴? 어떤 정상성도, 합리도, 의도도 파괴해버리는 힘, 그럼에도 그 속에서 새로운 정상을, 합리를, 의도를 만들어내는 힘. 이런 역설을 품고 있는 자연은 정말 기이하고, 불가사의하다. 하지만 그런 자연에서 또 가 말하는 아름다움이 흘러나오는 것은 아닐지.

 

동성애자란 말 너머의

가 말하는 아름다움은 또 다른 견지에서도 드러나는 것 같다. 바로 기적이라는 면에서다. 샤를뤼스 씨와 쥐피앙의 만남은 정원에 피어있는 암꽃에 수꽃의 꽃가루를 묻힌 꿀벌이 찾아오는 장면과 계속해서 오버랩된다. 수꽃 없이 정원에 피어있는 암꽃들은 스스로는 수정하지 못하는, 어찌 보면 안타까운 운명을 타고 났다. 그런 암꽃에 찾아오는 꿀벌은 그들의 몸에 수꽃의 꽃가루를 묻혀 암꽃을 수정시켜줄 수 있는 귀인이나 마찬가지다. 물론 꿀벌이 담장을 넘어 제대로 와 줄지, 꽃가루를 묻혀 왔을지, 그것이 암꽃을 수정시켜주는 수꽃의 꽃가루인지는 전혀 알 수 없지만 말이다. 그 모든 가능성을 돌파해서 암꽃이 수정을 이루어냈다면 그건 정말 기적이나 다름없다. 쥐피앙을 만난 샤를뤼스의 심정도 이와 같았다고 말하고 싶었던 걸까.

그러면서 길게 얘기되는 고독자로서의 동성애자 이야기는 잔잔한 장편 아침 드라마를 보는 것만 같다. 우리가 거칠게 동성애자라 부르는 한 사람은 결코 동성애자라는 말 속에 담기지 않을 여러 이야기들을 품고 있다. 처음으로 자신의 취향을 깨달아 치욕스러워하기도 하고, 첫사랑에게 매몰차게 차이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게 가면을 쓰고 있기도 하고, 동류를 혐오하면서 또 외로움에 동류를 찾아다니기도 하는.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동성애를 누구보다 치욕스러워했던 게 다른 사람이 아닌 그들 자신이었다는 점이다. “그들의 악습이랄까, 남들이 붙인 이 부당한 호칭이 남에 대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가해지는 내적인 구속에 비하면 가볍기 때문에, 이것은 그들에게 하나의 악으로는 보이지 않는다.”(앞과 같은 책, p.29) 아무리 개방적으로 보이는 동성애자들 역시 처음에는 우리와 갖는 통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생각해보면 당연하지만 그들을 정상적이지 않은 존재, 자연스럽지 않은 존재로 간주했을 때는 보이지 않던 사실이었다.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지도 못하고 여러 사람들의 환멸을 받던 그가 우연히 지나친 한 곳에서 사랑을 이루었을 때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그 모든 게 정말 기적처럼 다가오지는 않았을까?

동성애자를 그려내는 프루스트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그들에 대한 적대감이 어느새 가벼워져 있는 걸 깨닫는다. 이는 단순히 프루스트가 동성애자였기 때문에, 그래서 그걸 더 잘 담아낼 수 있었기 때문만은 아닌 듯하다. 통념으로 거칠게 채색된 어떤 인물에게서도 세밀한 아름다움을 뽑아내는 프루스트의 시선. 그 시선에서 느껴지는 따뜻함이야말로 우리를 매료시키는 또 다른 아름다움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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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훈님의 댓글

재훈 작성일

무엇인가를 알게 되었을 때 나의 감각이 하나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 매우 신비롭다. 모순덩어리 세상에서 내가 '자유'를 얻을 수 있는 방법도 책을 읽고 내 전제를 깨나가는 과정 속에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기대를 품게 되었다. 소담상, 나로 하여금 지금 당장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킨 놀라운 후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