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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백전 인절미] 시즌8 <몽타이유>3 후기 (75/100)

게시물 정보

작성자 알료샤 작성일20-06-28 12:04 조회59회 댓글3건

본문

2020. 06. 24 (시즌8, 5주차)

: <몽타이유> 3/5

참여자(7): 현정희, 이윤하, 최세실리아, 김성아, 이용제, 박상욱, 김흥범



이번에는 몽타이유 2부 9장부터 14장까지 공부하였습니다.

일전에 카를로 진즈부르그는 <치즈와 구더기>에서

미시사의 탐색을 두고, '실마리 찾기 paradigma indiziario'라 표현하며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셜롬 홈스의 추리에 빗대기도 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무의식적 습관이나 담배 꽁초, 구겨진 편지 봉투 등은

사건과 정신을 해부하는 열쇠가 되었지요.


두 번째 미시사 책인 <몽타이유>까지 읽어가며 적절한 비유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이번에 발제 맡은 범위 중에서

9장 '클레르그가 사람들의 리비도', 10장 '뜨내기 사랑' 같은 장들은

멜로나 탐정 소설 혹은 정신분석학 책을

보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발제를 준비하며 흥미로웠던 부분은

중세 기독교와 성윤리에 대한 라뒤리의 평가입니다.

그는 기독교 절정기로 이해되어 왔던 12~13세기가

오히려 근대 전환기인 16~18세기보다 느슨했다고 주장합니다.

몽타이유 마을의 사례와 민중문화에 대한 분석을 토대로요.

역자 유희수 교수의 저서 <낯선 중세>에서도 관련 내용을 다룬

미시사 연구자들의 주장이 정리되어 있어 많은 참조가 됐습니다.

예컨대 16세기까지도 기독교 지역 대부분은 아직 포교 대상이었다는 것,

대항종교개혁의 영향으로 중세 말에 가서야

엄격히 훈련된 사제들이 농촌에서 사목활동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 그렇습니다.


한편 세미나 중 푸코가 <성의 역사>에서 언급한 중세 인식과 다른 것 같다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이에 따르면 푸코의 관점은 기독교에 포섭되지 않은 민중 문화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거시적 관점에서 중세 기독교의 지배와 종속에 주목한 것 같습니다.


이외에도 12장 '결혼과 여성의 조건'에선

여성이 내면적으로는 아무 거리낌없이 자유로운 내연관계의 사랑을 추구하지만

남편, 가족, 마을사람 등 타자의 판단에 따라 얽매이게 되는 '외면화한 명예'에 대한 분석이 나옵니다.

중세 사람들이 기독교적 관념을 깊이 내면화했다는 기존의 생각과 다른 부분인데,

푸코 <김사와 처벌>에서 언급된 내면화와 어떤 맥락에서 차이를 갖는지 잠시 토론이 오갔습니다.


좀 더 구체적인 텍스트 분석이 필요하겠지만,

푸코와 라뒤리 각자가 초점을 맞춘 주제와 연구 방법론이 다른 만큼,

서로 상충하는 부분이 있어도

고유의 맥락 안에서 유연하게 받아들일 여지가 있을 것 같습니다.

세미나 중 푸코에 대한 언급이 여러 번 등장하니,

일전에 진즈부르그가 <치즈와 구더기> 서문에서 언급했던

미셸 푸코의 작업물 <나, 피에르 리비에르>에 대한 비판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이 연구 과정에서 드러난 것은 미학적 본질의 비합리성이다. 피에르 리비에르와 지배 문화 간의 불명확하고 모순된 관계는 충분히 언급되지 않았다. 더구나 그가 읽은 수많은 서적, 종교서 등이 완전히 무시되었다. 대신 그는 범죄 후 "마치 문화 의식이 없는 인간으로서 (......) 본능을 상실한 한 마리의 동물처럼 (......) 어떠한 인식 체계에도 속하지 않기 때문에 정의를 내리는 것이 불가능한 신화적 존재이자 괴물처럼" 숲속을 방황하는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36P)


푸코의 의도는 광인 피에르 리비에르를 통해 민중 문화를 분석하려는 것이겠지만,

그 시도는 무관심하게 구현된, '상징이 전도된 민중주의'라는 평가입니다.

누구보다도 래디컬하게 권력 담론을 분석해온 푸코지만,

권력 담론을 연구하는 데 있어 미시적인 민중문화는 부수적인 것이기에,

진즈부르크, 라뒤리와는 중세 기독교에 대한 인식, 민중문화 연구에서 여러 차이를 보이게 된 것 같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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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백전 시즌 8 / <몽타이유> 9~14 / 2020.06.24

이 사람을 보라


모든 것이 금지된다면 모든 것이 동일한 가치를 갖는다. 모든 것이 가능하고 모든 것이 허용된다.”


니체의 아포리즘이 아니고, 14세기 피레네 산골지방 몽타이유에 살았던 본당 신부의 말이다. 피에르 클레르그는 카톨릭 사제이면서 동시에 카타르파 이단의 인물이었고, 최소 열두 명 이상의 정부를 거느린 돈 후안이었으며, 몽타이유 마을의 가장 큰 권력자였다. 몽타이유 마을에 첫 이단재판이 들이닥쳤을 땐 심문관으로서 카타르파 내부 정적들을 정리하는 수완을 발휘하기도 했다.


언뜻 그의 카톨릭 사제 지위는 돈 후안적 사랑을 나누는 데 있어 장애물처럼 보인다. 그러나 피에르 모리나 다른 양치기들에 의하면, 당시 성직자들은 일종의 기사계급이었다고 한다. 여유롭게 말이나 노새를 타고 다니며 노닐 수 있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사제는 거친 농민이나, 차가운 귀족과 달리 부드러움(douceur)으로 여성을 이해심 있게 대한다는 평이 퍼져 있었다. 부와 권세 역시 갖추고 있었으니, 쇠사슬 같은 기독교적 도덕만 던져버린다면 그의 말처럼 모든 것이 허용되는 최적의 직업이었던 셈이다.


피에르 클레르그의 주요 정부 중 하나였던 성주 부인 베아트리스는 당시 여성들의 애정 생활을 심층적으로 드러내는 인물이다. 많은 여성들이 그랬듯, 그녀 또한 어린 나이에 고령인 베랑제 성주와 결혼했다. 이런 경우 여성들은 대개 남편보다 아이들에게 애정을 쏟았으며 일찍 과부가 되었다. 남편 사후에는 사회적 지위가 격하되어 자유로운 사랑을 나누기 용이했는데, 이 틈새를 파고든 것은 피에르 클레르그였다. 베아트리스는 사제와 밀회를 즐기는 한편, 자유로운 이단의 사랑과 가톨릭에 재정복된 평지(재혼)의 매력 사이에서 흔들렸다. 그녀는 두 번째 남편 오통이 죽은 후, 또 다른 카톨릭 신부 바르텔르미 아밀락을 정부로 삼았다. 이처럼 자유로운 사랑은 원숙한 부인이나 자유로운 여성의 특권이었고 부부 사이보단 혼외관계에서만 가능했다.


내연관계와 가부장제


사랑의 민주화는 비단 본당 신부와 그 정부들에게만 있었던 예외가 아니다. 적어도 1300년경 몽타이유에서 불륜 가정은 전체의 10퍼센트였고, 마을에서는 내연녀를 공개적으로 데리고 살수도 있었다. 라뒤리는 이런 성윤리를 두고, 기독교 절정기로 이해되어왔던 12~13세기가 오히려 근대 전환기로 받아들여졌던 17~18세기에 비해 느슨했다고 주장한다.몽타이유에서 이해된 카타르파 교리는 내연관계를 크게 관용하긴 했지만, 결정적 요인은 마을 민속의 성격에 있었다. 지참금이 막대해서 결혼이 쉽지 않았고, 집에 대한 권리의 절대적인 의무감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내연관계는 피레네 산의 다른 많은 지역들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난 현상이었다.


한편 14세기 랑그독 지방에선 귀족층이건 도시민층에서건 부인들의 위치는 농민 계층과 다를 게 없었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곧잘 아내를 물건처럼 다루며 학대했다. 이러한 현상은 을 기반으로 한 가부장적 권력의 발현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극히 드물긴 하지만 여성이 남자를 대신해서 잠정적으로 남자 가장을 계승하는 경우 모권적인 상황이 조성되었다.”(331) 권력을 가진 시빌 바이유의 경우 남편을 쫓아내고 자식들의 이름 역시 자신의 성을 따르도록 했다. 라뒤리는 이런 모권으로의 귀속을 분석하며 남성 중심주의는 토대가 아닌, 집에 부수된 현상이라고 봤다. 이외에도 여성 직업은 남성에 의한 성차별을 완화하는 역할로 기능했지만, 그것은 모권의 귀속과 마찬가지로 극소수의 여성만이 누릴 수 있었다.


라뒤리의 아리에스 비판


1280~1305년에 몽타이유는 베이비 붐을 맞았다. 여기에는 카타르파 윤회사상의 영향도 있는데,아이들은 먼저 죽은 형제자매들의 영혼을 어머니에게 되돌려”(350)주리라는 믿음의 기제로 작용했다. 당시 유아 사망률이 무척 높았는데, 아이가 죽을수록 부모는 영혼을 되돌려 받기 위해 더욱 임신에 매진했던 것이다. 사실 카타르파 교리는 기본적으로 결혼과 출산에 적대적이었는데, 많은 사안에서 그랬듯 철저한 교리 수행은 완덕자들의 몫이었고, 대개 농민들은 되는대로 받아들이고 해석했다.


라뒤리는 몽타이유 사람들이 갖고 있는 본격적인 어린이 인식을 서술하기에 앞서, 필립 아리에스가 아동의 탄생에서 주장했던 관점을 비판한다. 아리에스는 이 책에서 부모가 어린이에 대해 갖는 애정이 중세 말~ 근대 초 상류층의 세속 문화에서 시작된 것이라 분석했다. 오랫동안 대다수 중세인들에게 어린이는 축소된 작은 어른에 불과했으며, 어린이나 갓난 아기의 죽음은 정서적으로 덤덤한 사건이었다는 것이다. 아리에스의 논증은 특정 문학과 회화에 근거하고 있는데, 라뒤리는 이를 두고 구미에 맞는것만 발췌한 문학적 망상이라 봤다. 예컨대 아리에주 농민들만 해도 음유시인들의 작품을 전혀 읽지 않았고, 문학의 영향 이전에 이들은 섬세한 농민문화를 공유하고 있었으며, 오히려 음유시인들이 민중 문화를 조명한 것에 불과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민중 문화를 특정 고급스러운 문화외부 엘리트에 의해 접목된 이식의 산물로 보지 않으려는 라뒤리의 관점이 도드라지는 대목이다. 그는 여러 실증적인 사례를 통해 아이들에 대한 몽타이유 주민들의 사랑을 입증했다.


죽음을 둘러싼 종교적 양상


카타르파교의 위령안수 의례기록은 몽타이유 마을에서 죽음이 어떻게 다루어졌는지 말해준다. 사망자 분포를 파악할 수 있는 가톨릭 교회의 호적부조차 남아 있는 게 없지만, 이단재판관 자크 푸르니에의 열정으로 이를 추정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 것이다. 1348년 페스트가 창궐하기 전까지 몽타이유 같은 산악지대에선 병리학적 지식이 결여되어 있었다. 의사 역시 부족했기에 카타르파 완덕자들이 영혼 치료사로서 대체 기능을 했다.


가톨릭과 카타르파는 죽음의 문턱에서까지 경합을 벌였다. 본당 신부나 수도사를 신뢰할 경우 그들에게 천국 가는 길의 중재 역할을 부탁했고, 정통 가톨릭을 불신하는 사람들은 완덕자에게 기대었다. 세세한 차이가 있을지언정, 고독하게 죽음을 마주하지 않고, 중재자의 인도 아래 가족들 품에서 죽음을 원하는 마음은 마찬가지였다. 한편 완덕자가 베푸는 위령안수는 죽기 직전까지 단식해야 했는데, 카타르파 교도임에도 가족의 고통을 보다 못해 음식을 주는 경우도 있었다. 또한 가족간 종교가 다를 경우, 향후 있을지 모르는 이단재판의 위협에서 을 지키기 위해 막는 경우도 있었다. 앞서 라뒤리가 여러 사안에서 지적해왔듯, 몽타이유 농민들의 풍습은 이단이나 정통 가톨릭으로 환원되지 않고, 고유한 민중문화에 더 결정적인 영향을 받았다.


생각거리


1. 라뒤리는 13어린이 인식과 인생의 시기에서 특정 문학, 회화 텍스트로 중세 농민들의 어린이에 대한 인식을 규정하는 아리에 스의 태도를 비판했다. 아리에스는 문화사 연구에 있어 아동뿐만 아니라, 죽음에 대해서도 중요한 저술을 남긴 바 있는데, 그렇다면 라뒤리가 14이 마을에서의 죽음을 통해 들여다본 관점과 어떤 비교가 가능할지 나눠보고 싶다.


2. 20세기 중반 미디어와 가짜 뉴스에 대해 선구적인 연구를 수행한 다니엘 부어스틴은 저서 <이미지와 환상>에서 민중(folk)’은 사라지고 대중(mass)’은 늘고 있다고 주장했다.


민중은 글도 모르고 자의식도 약한 평범한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은 일상생활에서 자기 나름대로 창조적인 면을 가지고 있다. 독특하고 창조적인 민중들의 생산품을 언어, 제스처, 노래, 민속, 민속춤, 민요라고 부른다. 민중은 이런 것들로 자신을 표현한다. () 그러나 대중 미디어, 대량 생산 등에 쓰이는 매스(mass)란 말은 수단인 화살이 아니고 목표인 타깃이다. 대중은 목소리가 아니고 그것을 듣는 귀이다. 대중은 인쇄물, 사진, 영상, 음향을 만드는 사람들이 팔려고 다가가는 대상이다. 민중은 영웅을 창조하지만, 대중은 영웅을 듣고 보기만 한다. 대중은 누군가 보여주고 들려주기만을 기다릴 뿐이다.” (90)


한국에도 민중이라는 말이 사회적으로 중요한 함의를 품고, 기능하던 시절이 있었다. 전태일의 분신 이후, 많은 학생들은 자기 위치에서 벗어나 공장으로 하방했고, 구로공단을 포함한 수많은 노동 현장에서 노동자들의 집단 창작과 학습이 번성해갔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박노해 시집 <노동의 새벽> 역시 그 결과물이었다. 오월 광주의 코뮌과 876월의 항쟁 역시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독재와 사회주의라는 거대 담론이 퇴락한 지금, 어느 때보다 촘촘한 그물 아래 대중화가 급속히 자리잡게 되었다. 고도로 복잡해진 사회에서 라뒤리나 부어스틴이 규정한 전통적 의미의 민중은 그 의미성을 상실한 듯하다. ‘무학의 통찰은 대개 무지와 위악을 합리화하는 기제로 작용하기 십상이며, 인문학 공부하는 일부 사람들이 습관처럼 사용하는 민중에선 나와 다른 그들을 내려보는 듯한 위계가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 말이 품고 있는 역사성 때문인지,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일어나는 저항적 시위를 명명할 때 대중, 시민과 뒤섞어 쓰이기도 하고, 이를 다시 보려는 시도 역시 계속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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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이달팽님의 댓글

이달팽 작성일

아 정말 탐정만큼 집요합니다... 파미에도 라뒤리도;;ㅋㅋ
샘 후기를 보니 저희 세미나에 푸코가 계속 등장했네요 다음엔 푸코를 읽어야 하나...ㅎ

세실님의 댓글

세실 작성일

실마리 찾기..! 탐정소설을 읽는 것 같다는 말이 너무 공감가요!
중세에 대한 상이 많이 깨지고 있는데... 무엇보다 신앙적 삶.. 성윤리가 가장 그런 것 같아요.
후기 잘 읽었습니다!

백수님의 댓글

백수 작성일

죽음과 관련한 실마리는 다음 장들에서 더 발견할 수 있을 듯해요!
셜록 홈즈가 되어 찾아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