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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백전 인절미] 시즌8 <몽타이유>2 후기 (74/100)

게시물 정보

작성자 세실 작성일20-06-22 23:06 조회62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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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06. 17 (시즌8, 4주차)

: <몽타이유> 2/5

참여자(7): 현정희, 이윤하, 최세실리아, 김성아, 이용제, 박상욱, 김흥범


이번 시간은 몽타이유 두 번째 시간이었습니다.

몽타이유 제 1부 제 4장부터, 2부의 8장까지로 '양치기들의 세계'를 주로 공부하였습니다.

피에르 모리는 이동목축을 하는 양치기였고, 저희는 그의 경로를 따라 양치기의 사회와 몽타이유의 삶, 이단 종교에 대하여 읽었습니다.


처음에는 마을에 머물며 살아가는 몽타이유 농민들에 비하여 비교적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살아가는 피에르 모리가 자유로워보이기도 했는데, 이야기를 하는 중에 그 역시 그저 양을 치며 살아가는 중세의 사람이었고 이동경로도 결국은 반복되고 한정적이라는 것을 다시금 떠올렸습니다. 양치기로서 피고용인이 되기도 하고 고용인이 되기도 하는 피에르 모리가 마치 메노키오처럼 경계에 선 인물이 아니었을까 이야기도 나왔는데요. 그의 캐릭터는 메노키오처럼 카톨릭 신앙을 가진 자들의 위선을(금욕하지 못하고 탐욕하는 것) 거론했지만, 이를 주제로 토의하거나 전복시키기보다는 자신의 삶에(양을 치고 떠돌아다니고, 관계를 만들어내는 것) 조금 더 집중하고, 또 그럴수밖에 없었던 인물이었던 같습니다.


저희는 피에르 모리가 말하는 운명과 삶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는데요. 직분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피에르 모리에 대한 이야기를 할때 의견이 조금 나뉘었던 것 같습니다. 그걸 자발적이거나 주도적으로 보는 시선도 있었고, 그 시대에 살았던 그냥 한 유형의 인간이었다는 시선도 있었습니다. 그가 말하는 '운명'이 미신적이기보다 고차원적이었다는 것은 신기한 지점이었던 것 같습니다.


앞선 세미나에서 보았던 클레르그와 피에르 모리가 대조를 이룬다는 이야기를 하였는데, 겉으로 보기에 머무르고 떠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많이 비교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양치기들의 재산에 대하여서도 이야기 나누었는데. 짊어질 수 있는 것까지만 소유할 수 있고 그 외에는 짐이 되는 그들의 삶을 보면서, 그가 얻기 원하지 않던 아내나 집 같은 것이 오히려 짐이었을 수 있겠다. 자기를 어디가 두느냐에 따라 추구하는 가치와 중요한 것의 방향이 달라진다는 것을, 서로 다른 두 인물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동양사상을 읽으신 샘도 있었는데요, 이 시대에 이미 동양에서 인간을 인식했던 것과 달리 서양에서는 아직도 인간보다는 신이 중심이 되는 세계로 느껴진다는 의견은 세계사의 전체적 흐름을 잘 모르는 저로서는 신기하게 느껴졌습니다.


결론적으로 저희는 미시사를 읽고 있고, 우리가 어떤 기준으로로 그 시대를 재단할 수 없다 (영지를 벗어날 수 없으니 이동의 자유가 없고, 그러니 사람들은 괴로웠을 것!이라는 현대적 관점으로 그 시대를 획일화 하는 것 등등)는 걸 잘 견지하며 다양한 방식으로 접근해보는 것이 미시사의 의의라는 것을 이야기 하였습니다.


1부는 그들의 생각이나 그들이 가졌던 이단 종교가 정확히 무엇인지 알지 못하여 의문도 많은데요, 앞으로 남은 장들을 통해 공부 할 수 있는 것이 많이 남은 것 같습니다.





+발제 첨부



청백전 시즌 8 / ‘몽타이유’ 4~8/ 2020.06.17. / 최세실리아

 

어떤 양치기로 보는 미시사

 

지난 세미나에서, 1부의 제목이 몽타이유의 생태학 : 집과 양치기인 만큼 몽타이유 사람들의 환경과 권력구조, 종교생활 등을 가옥과 연관하여 읽었다. 아주 작은 마을에서 그들은 이단종교를 통해 관계를 맺고 일자리를 구했으며, 그들을 연결시키는 비밀은 가옥을 기준으로 퍼지고 지켜졌다. 이번 4장부터 8장은 한 양치기를(역마살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통한 양치기들의 사회와 몽타이유 사람들, 중세사회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4장부터 7장까지의, 방대한 양치기 사회이야기를 읽으며 아직도 양치기의 세계를 소화하지 못 했지만 앞으로 어떻게 이 책을 읽어나갈 것인가에 대한 공부가 되었던 것 같다.

 

양치기란 무엇인가

지난주에도 양을 키우는 몽타이유 농민과 양치기가 함께 등장했는데, 현대에 양치기에 대응하는 것이 없어서인지(목축업자?) 얼핏 알고 있는 이미지 이상으로는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알고 있는 양치기는 다윗이나 양치기소년’, ‘의 주인공 목동이 전부였다. 모두 양치기 본업보다는 그들의 이야기가 주는 상징이 더 중요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들을 통해 양치기의 삶을 알기도 어려웠고, 양치기를 캐릭터 설정 이상으로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더군다나 양치기라는 말의 뜻도 모호했다. 몽타이유나 오르놀락 같은 고지 아리에주 마을에서는 모두가 다 어떤 의미에서는 양치기였다. 모든 사람이 많건 적건 양을 기르고 있었기 때문이다.”(엠마뉘엘 르루아 라뒤리, 몽타이유, 135) 게다가 애초부터 우리가 양치기의 삶을 알기는 어려웠던 것 같다. 대부분이 다 양을 치는 마당에 전문 양치기가 있다고 해도, ‘양치기는 주류의 삶이 아니었다. 4장 초입에 나와 있는 것처럼 이들이 이단종교에 빠져있는 존재가 아니었다면 재판소에서 기록하지 않은 나무꾼처럼 별다른 기록조차 없었을 것이다.

 

여기에는 14세기 몽타이유의 작은 양치기 세계가 잘 드러나 있다. 그것은 본당구 안의 가옥 주변에 있는 경작지와 저 멀리 고산지대에 있는 산간 방목지로 크게 구분되고, 그 사이에 있는 목초지는 건초용 초지와 방목용 초지로 구분되어 있었다. 계층 구분도 드러났다. 한편에는 자기 양(과 타인의 양)을 다른 사람의 소유의 초지에서 풀을 뜯게 하는 양치기가 있었고, 다른 한편에는 완전 소유권을 지닌 조상 전래의 초지에서 양을 기르는 토지 소유 농민인 양치기가 있었다.”(엠마뉘엘 르루아 라뒤리, 몽타이유, 143)

 

사실 나는 중세에 양치기 세계가 존재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중세는 영주, 기사, 사제, 농노의 세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양치기가 있다한들 방목지를 크게 넘나들다 못해 산을 넘고 마을을 건너가는 건, 태어난 곳에서 쭉 자라다 그곳에서 죽는 중세사회에서는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14세기 몽타이유 출신 전업 양치기 피에르 모리는 원하는 곳에서 원할 때에 양을 친다. 양을 잘 치기로 정평이 나서 언제든 일자리를 구할 수 있어서인지, 그에게는 먹고 자고 입는 것보다 이단종교 속에서 대부-친부의 친분을 쌓고 우정을 만들고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해 보인다.(그것이 곧 먹고 자고 일하는 것을 뜻하기도 했지만)

 

 

중세사람 피에르 모리

피에르 모리는 특이한 양치기다. 양치기든 농부든 장인이든 모두가 태평했다는 몽타이유 사람 중에서도 유난히 태평했다. 그는 그 자신도 알고 있었지만 대단한 방랑벽이 있는 인물로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은 그에게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원래도 떠도는 것이 양치기의 일이라지만 유난히 떠돌며 양을 친다. 그의 인생은 나름대로 부자였다 가난했다, 마치 들판에 누워 자던 계절과 얼어 죽을 것 같았던 겨울 혹한기처럼 들쭉날쭉했다.

 

“‘을 가진 사람인 피에르 클레르그에게 행운은 무엇보다도 종족과 가문의 집단적인 운명에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반면 피에르 모리의 좌우명은 화덕도 땅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의 거처는 피레네 산이었다. 그에게 운명과 행운은 무엇보다도 의 미래보다는 한 개인의 삶에 더 영향을 주는 개인주의적 실체였다.”(마뉘엘 르루아 라뒤리, 몽타이유, 232-233)

 

그런데도 그는 재화나 집에 가치를 전혀 부여하지 않는다. 그는 모두가 결혼을 하라고 할 때에도(실제로 잠시 하기는 했지만) 자신이 가난하기 때문에 그럴 수 없다, 말하는 것이 끝이다. 결혼이나 안정을 도달해야 하는 지점이라고 느끼지 않고 그냥 양치며 사는 걸 삶이라 여기고 어떤 위험이나 상황이 다가온다고 하더라도 자기 운명이라 여긴다.

 

과거로 잠시 맛 본 미시사

내가 지금 겪고 있는 미시사 공부는, 한 인물을 통해 그 주변을 조망할 수 있게 한다. 클레르그를 통해서 모든 사제를 볼 수 있는 것은 아니 듯(그가 취하던 태도를 통해 권력의 관계망은 볼 수 있었다), 피에르 모리를 통해서 모든 양치기를 알 수는 없지만 양치기의 공통 양식을 조금이나마 알아보았다. 양치기는 주로 피고용인이며, 마을에 있을 경우에는 고용인의 집에 머무르지만 그보다는 목초지를 떠돌아다니며 양이 풀을 뜯을 수 있게 한다. 양치기들이 넘나드는 산세는 그다지 완만하지 않고, 위험이 도사린다. 양치기들의 오두막은 정착농민들의 가옥처럼 이단종교나 자신들을 보호하거나 문화를 전승하는 곳이기도 했고, 양치기들은 선한 사람들을 마을로 안내하기도 했다.

아는 만큼 보인다, 항상 무슨 그런 당연한 말이 있을까 생각했었다. 몽타이유 이번 장들을 읽으면서 정말로 언제나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단어들로만 현상을 이해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난 시간 자주 보거나 해본 경험이 있는 농사를 통해 경작지의 모습이나 이를 잡아주는 것을 상상하고, 그 종교를 믿으면서 종교의 계율을 벙벙하게 지키는 중세의 사제를 어떻게 그럴 수가! 라고 여기다가도 이중스파이로 납득했다. (단어가 가진 힘이 대단한 것이 이중스파이라고 하자마자 바로 그 상황이 받아들여졌다.) 그래서 내 안의 중세에 대한 편견이 많이 없어졌고 내가 미시사를 읽을 준비가 된 것이라 여겼는데, 중세사람 같지 않은 중세사람 피에르 모리를 보면서 이거 완전 현대인 아니야? 생각하며 여전히 알던 것으로 그때를 이해하려 한다는 것을 알았다.

미시사를 읽는다는 것은 내가 안다고 생각하거나 신경 쓰지도 않았던 것들을 한 번 더 보는 것으로, 그때 그곳에서 진짜 있었던 사람들을 상상하고 그려보는 것 같다. 과거를 살피고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가 더 나은 선택을 하기 위해서라는데, 그 과거들은 주로 거대한 사건들과 위기의 순간에서의 결단이다. 인류의 대서사도 중요하지만, 지난 과거를 조금이나마 생생하게 읽을 수 있는 결을 따라 가다보면 지금 내 곁에서 일어나는 현실들도 생생하게 해석하며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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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님의 댓글

백수 작성일

몽타이유를 읽음으로써 "지금 내 곁에서 일어나는 현실들도 생생하게 해석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