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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백전 인절미] 시즌 7 <죽음 앞의 인간>3 (63/100)

게시물 정보

작성자 세실 작성일20-03-26 16:16 조회55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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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25 (시즌 7 3주차)


책: <죽음 앞의 인간>


참여자(4): 현정희, 이윤하, 최세실리아, 김보라


이번 시간은 시즌 7, "죽음 앞의 인간" 3주차로! 5장 '횡와상, 기도상 그리고 영혼'으로 2부를 마무리하고,  6장 '전환'으로 3부를 시작하였습니다. 5장과 6장은 묘지와 묘비명 그리고 죽음에 대한 의미가 어떻게 변하고 또 되돌아오고 전환하며 변화를 계속해나갔는지가 주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세미나가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묘비명들에 무엇이 적히기 시작했는지 책에서 다루던 부분에 대하여 이야기가 나왔는데, 뭐 그런 것은 남기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 경우와 진지하게 고민할 것이라고 생각한 두 경우 모두 막상 묘비명을 생각하니 유머러스하고 기억에 남게 쓰고 싶었다는 이야기가 나온 것이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저번 시간에 지금의 우리는 죽음을 나의 죽음이라고 인식하고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이나 끝나버리는 내 삶을 아까워하고 부당함을 느끼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이번에 읽었던 장들이 어떻게 죽음이 개인적인 일이 되었는지를 보여주었던 것 같습니다.


가장 오래 이야기를 나누었던 부분은 555페이지의 "이렇게 해서 죽음을 대신하여 보다 일반적 차원의 숙명적 죽음이라는 개념이 부상한다. 즉 예전에는 죽음이 이루어지는 현실적인 순간에 칩약되었던 죽음의 감정은 이제부터 삶 전체로 그 영역이 확대되었으며, 그만큼 그것의 강도도 점차 약화되어갔던 것이다. 따라서 삶의 개념도 미세한 변화를 겪게 된다. 이전까지는 유사 죽음들로써 여러 개의 짧은 단위들로 조각나 있던 삶이(실제적인 죽음이 그 마지막 단계에서 모든 것을 마감했다) 이제는 충만하고 밀도 있고 연속적인 삶이 된 것이다. 여기서 죽음은 늘 존재하나 저 멀리 맨끝에 위치할 뿐이며 쉽게 망각된다." 라는 부분이었습니다.


보라 선생님이 먼저 이 부분에 대하여 이야기를 시작하셨는데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어서 다함께 앞장을 뒤적이고 뒷장도 뒤적였습니다. 그래도 끊임없이 이 부분에 대하여 의견과 생각을 계속 주고 받았는데 함께 이부분을 이해해보려 대화를 나눌수록 예전에는 죽음을 어떻게 생각했고, 지금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생각해야하고 등등 여러가지 생각과 비유들이 쏟아져 나왔던 것 같습니다. 


여기서 저희는 죽음도 의미가 있으며 지금의 우리는 솔직히 그것을 알 수 없지만 그 의미를 알았던 그 시대와 그 사람들의 위치에 서서 알아보기 위한 노력해야 한다고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나는 안 그런데? 난 안그랬을 것 같은데 라며 나를 자꾸 뚝 떨어트려 놓으면 책을 읽고 공부할 필요도 없을뿐더러, 그에 대한 것을 조금이라도 알고 받아드리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죽음이 언제 올지 모르니까 망각하는 것을 택배를 기다리는 것과 같은 상황이 아닐까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일상 속의 이야기라 그런지 조금 더 와닿았습니다, 가령 12시에 택배가 온다는 것을 알면 택배가 오는 시간을 포함한 모든 시간에 집중할 수 있는데, 언제올지 모른다면 택배의 존재를 망각하거나 한켠에 불안해하면서이도저도 못하게 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 부분이 오긴 오는데 언제 올지 모르는 죽음!과 비슷하게 느껴졌습니다. 내가 삶을 살아가는 태도가 곧 죽음을 맞이하는 태도일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갑자기 이제부터 죽음을 알던 때처럼 죽음을 예츶하자! 고 해도 그렇게 할 방법은 없으니 어떻게 죽음을 생각하고 느낄지는 책을 더 읽어나가며 함께 알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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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25. / 청백전 수요반 / 죽음 앞의 인간 / 김성아 

 

생각보다 우리랑 비슷한 중세 

 

우리는 이번주 5장을 읽으면서 중세 초기에 비해 그 이후의 무덤과 묘지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아주 자세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책의 제목으로는 죽음 앞의 인간이 아니라 무덤 앞의 인간이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 11세기까지, 무덤은 일부 성인과 저명인사의 경우를 제외하면 익명으로 머물렀고 묘비석에도 거의 아무런 내용이 적히지 않았다. 그러나 13세기 이후 무덤과 죽음은 개인적이고 가시적인 것이 되었다. 귀족 계층은 물론, 일반 대중들의 묘비에도 고인의 일생과 업적을 상세히 적는 것이 관행이 되었다. 조금 더 후기로 가면 고인의 모습을 본 따서 만든 횡와상이나 기도상이 무덤에 놓이게 된다. 여기 죽어있는 것은 라고 외치는 것만 같은 무덤들이 많아진 것이다. 

 

가 구원된다는 보장 

이러한 무덤의 변화는 크게 두 가지 사실을 말해주는 것 같다. 사람들이 영혼의 구원을 보장받을 새로운 수단이 필요했다는 게 그 첫 번째다. 13세기 이전 중세 전반기에도 사람들은 자신의 영혼이 구원 되기를 기원했지만 그것이 자기정체성의 필요로 이어지진 않았다. 내가 나인 것과는 상관 없이, 사체가 성인 곁에나 혹은 교회 내에만 매장된다면 영혼이 구원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은 자신이 사후에 개별자로서 심판을 받게 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단지 영적인 것에 가까이 위치하는 것 이상으로, 구원을 향한 보다 확실한 수단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리고 14세기에 또다른 주제가 등장한다. 죽은 자는 산 자들에게 개종만을 권유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로부터 중개의 기도를 얻어내기 위해 말을 걸게 된 것이다. 죽은 자는 중개기도를 통해 영벌이나 연옥의 형벌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다. 타베르니 성당에 매장된, 1387년에 사망한 몽모랑시 가문의 벽 부착식의 한 묘비명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져 있다.  

이 앞을 지나가는 선남선녀들이여, 부디 하느님께 기도하기를 게을리 하지 마시오, 그 밑에 누워 있는 육신의 영혼을 위한 기도를.” (필립 아리에스, 죽음 앞의 인간, 새물결, 394) 

 

이 때, 산 자들의 역할이 커지게 된다. 즉, 현세의 사람들이 죽은 자의 구원에 개입하는 비중이 커진 것이다. 영혼이 구원되기 위해선 산 자들이 나를 위한기도를 올리고,나를추모해주는 것이 매우 중요해졌다. 따라서 14세기 이후 묘비에 적힌 기도문은 가족이나 친지한테뿐만 아니라 그저 무덤가 앞을 지나가는 행인에게도 중개의 기도를 청한다. 그런가 하면 일부 유명 인사들의 경우, 추모의 용이성을 위해 시신을 이곳 저곳에 분리해 여러 개의 묘소를 만들기도 했다. 영적 구원, 불멸성을 위해선 더 많은 기도와 추모를 확보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선 살아있는 동안 명성을 떨쳐야 한다! 그러니 현대인의 감각과는 달리, 중세인에게는 현세적인 영광을 목표로 정진하는 것과 영원한 구원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모순되는 일이 아니었다.  

 

무덤, 중세 버전 SNS가 되다 

중세 중후반기의 두 번째 변화는 개인이라는 개념이 탄생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단순히 영적 구원을 받기 위한 수단으로써만 자기 이야기를 묘비에 적진 않았다. 이제 사람들에게는 가 어떤 사람인지가 중요해졌다. 그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어하게 되었다. 또 그렇게 함으로써 흩어지기보단 기억되고 싶어했다. 

 

무심한 행인은 무덤 또는 고인의 생애에 관한 몇몇 사실들을 설명하기 위한 구실이 되기도 한다. 즉 그에게 말을 거는 행위는 기도를 요청하기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그에게 어떤 이야기, 곧 개인적인 전기를 말하기 위한 구실이 되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발화 상대가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또한 그것을 기억하고 있다가 다시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전제로 한다. (필립 아리에스, 죽음 앞의 인간, 새물결, 394) 

 

현대인인 우리에게 SNS가 있다면 당시 사람들에게는 기도문이 있었던 셈이다. 일면식도 없는 이들을 상대로도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적극적으로 활용된다는 점에서 그 둘은 공통적이다. SNS와 묘비 기도문 사이에는 또 한 개의 공통점이 있다. 언뜻 보기엔 대화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사실은 일방향적으로 한 사람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만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SNS에 상응하는 플랫폼을 이렇게 이른 시기에 찾아보게 된다니 의외가 아닌가? 현대 사회의 불통이나자의식 과잉문제를 논할 때, SNS는 자주 그 예시로 등장하지 않았나. (나에게만 신기한 사실일 수도 있겠다. 솔직히 공부를 하다 보니, 시간을 막연하게 오래 거슬러 올라가 보면 지금보다는 더 자유롭고 윤리적인 세상이 있었을 것이라는 편견이 생겼다.) 물론, 중세 시기 사람들이 현대인과 비슷한 정도로 자아 개념에 꽁꽁 묶여 있었을지는 미지수다. 중세인들은 뿅 하고 나타난 개인성을 현대인들과는 다르게 감각하고 활용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당시 발명된 개인성이 굳어지고 굳어져서 오늘날 우리를 이루는 중요한 토대가 되어버렸음은 명백한 것 같다. 그래서, 중세 중후반기 무덤의 변천을 읽으면서 나는 현대인들의 초상을 조금은 엿볼 수 밖에 없었다. 묘비명을 통해서나 SNS를 통해서나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말을 걸지만, 결국에 그 내용은 나는 어떤 사람인지로 전부 환원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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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이달팽님의 댓글

이달팽 작성일

책읽기는 힘들지만 세미나는 너무 재밌어요 ㅋㅋ!
매주 다른 이야기를 하게 만드는 이 두꺼운 벽돌 .. ;;

백수님의 댓글

백수 작성일

벽돌책 ㅎㅎ
묘비 기도문과 sns를 연결시킨 성아의 발제도 재밌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