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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백전

[청백전 인절미] 시즌 7 <죽음 앞의 인간>1 (61/100)

게시물 정보

작성자 이용제 작성일20-03-15 14:08 조회4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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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11 (죽음에 대하여 1주차)


: <죽음 앞의 인간>

참여자(6): 현정희, 이윤하, 최세실리아, 김보라, 김성아, 이용제

 

천 페이지가 넘는 분량으로 6주간 함께할 책 죽음 앞의 인간으로 청백전 입곱 번째 시즌이 시작되었습니다. 책은 인류가 어떻게 죽음을 받아 들여왔는지, 그리고 시대마다 그렇게 받아들인 이유는 무엇인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놀라웠던 부분은 현대와 과거(중세부터 근대까지)의 죽음에 대한 인식차입니다. 지금 사람들이 죽음에 대해 갖는 인식은 부정인 반면, 과거 중세의 사람들이 가지는 인식은 죽음은 매우 일상적이고 가까운 것이라고 인식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현대인이 죽음을 어떻게 느끼는지 좀 더 이야기를 해보았습니다. 어떤 방식이던 물리적으로 접하기 어렵게 된 죽음으로 인해 더욱 멀어지게 된 것은 아닐까, 죽음이라는 현상은 자신과 세상 사이에서 벌어진 인과관계와 무관하지 않은데, 이것을 무시하면서 죽음을 부당한 현상이라고 여기게 되는 건 아닐까, 죽음에서 실제로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죽음까지 가는 과정 중에서 느끼는 고통, 나의 자아가 나를 벗어나는 것, 그리고 죽음 이후에 벌어질 일들을 두려워하는 것 같다는 이야기들이 있었습니다.


 

2020.03.11. 청백전 수요반 [죽음 앞의 인간 1/6] 이용제

 

어떻게 죽어야 할까?

 

종교에 큰 관심이 없던 나는 평소에 생각해보지 부분을 책을 읽으며 생각해보았다. 신이 없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존재하지 않는 신이 만들어낸 묘지에서 생겨난 문화가 흥미로운 첫 부분 이고, 특히 집중했던 두 번째는 중세부터 이어져 온 신앙을 가진 사람들의 죽음의 방식이었다.

 

예수그리스도가 부활을 통해 죽음을 극복한 이래로 이 세상에서의 죽음은 진정한 죽음이며 영원한 생명으로 향하는 육체적 죽음이 되었다. 바로 이러한 까닭으로 그리스도교 신도들이 죽음을 새로운 탄생으로서 기꺼이 바라마지 않는 대상으로 여기게 된 것이다.(죽음 앞의 인간, 33p)

 

그리스도교에서는 죽음이 그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죽음 이후의 새로운 곳에서의 부활을 위해 가능한 신성한 곳에서, 신성한 사람 주변에 묻히기를 원했다. 죽음부터 부활까지의 기간 동안 그 성스로움으로 보호받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사는 만큼만 알 수 있다. 그 이후의 일은 직접 경험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영역이다. 그리스도교를 믿었던 사람들이 죽은 이후에 실제로 묻힌 장소에 따라 보호를 받았는지, 천국 같은 곳에서 불멸로 부활했는지는 모르는 일이다. 태어나서 죽기까지의 기간 동안 그 믿음에서 평안을 얻으며 살았다는 것만이 사실일 것이다. 나는 이런 죽음이 옳은 죽음인지 아닌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존재의 여부도 모르는 사후세계를 믿고 안식을 얻는 것이 옳을까? 죽음에 대한 공포는 삶에 대한 욕망이 있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욕망을 끊어내지 못하고 사후의 부활을 욕망하며 죽는 것이 옳은 죽음일까? 설령 죽음 이후에 부활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이 경우 죽음에 대한 공포를 넘어서지 못하고, 또 다른 세상에서 같은 공포를 느끼며 살아가는 지금의 연장선인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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