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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백전

[청백전 인절미] 시즌 6 <도덕경 2> (60/100)

게시물 정보

작성자 세실 작성일20-03-08 23:27 조회72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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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04 


10주차 


도덕경 2/2


참여자(5): 현정희, 이윤하, 최세실리아, 문보경, 이용제



코로나 바이러스로 세미나 시간이 한 주 밀려 3월에 접어들어 10주차 세미나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세미나는 도덕경 2번째 시간이었습니다.
도덕경의 반을 읽고 한주간 쉬는 바람에 오랜만에 세미나를 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번 세미나에서 함께 이야기 했던 것들이 곧바로 떠오르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발제문을 읽고 필사한 부분들을 나누다보니 세미나 중반에는 '도'가 무엇인지 자유롭게 이야기 나누고 있었습니다.
도, 자아, 성인을 주제로 이야기하다보니 이번 시즌에 읽었던 다른 책들도 많이 거론되었던 것 같습니다.
유독 다른 시즌보다 여러 책들을 연관지어 읽으며 세미나를 했던 시즌이었습니다.

도덕경은 도가 도라고 이름 붙여지면 더이상 도가 아니라고 했지만 도에 대하여 계속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살아가야하는 것인지도 말합니다. 성인들은 어떻게 살아가는지도.
바로 전에 읽었던 우파니샤드에서 저희가 자아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면 이번 시간에는 도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만큼 도를 행하는(?) 성인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왔습니다.
도덕경에 성인들이 어떠한지에 대하여도 이야기가 많이 나왔고, 세미나 시간에 각자의 생활이야기도 꽤 나와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성인은 예리하거나 빛나는 것은 맞지만 다른 이에게 위압적인 것은 아닐 것이다. 고압적이고 지배한다면 그것은 억지스럽기 때문에 도가 아니지 않을까. 도를 알고 행이 바뀔 때에도, 바꾸는 것과 억지로 바뀌어지는 건 다른 것 같다 등의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공동체 생활이나 사회에서 살아갈때에도 스스로 안다고! 맞다고! 생각하는 것을 잘 살펴야 한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너무 살피기만 하다가 행동하지 못하고 공상만 하게 되는 것도 좋지 않겠지만, 상대방을 상처입히고 내가 상처받고 그 생각에 잠겨있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다음 시즌은 죽음에 대하여 함께 공부합니다. 자아, 도, 참된 것에 대한 공부를 삶과 죽음으로 이어 배움을 함께 행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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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26. 도덕경 2/2 청백전 인절미, 최세실리아

 

도를 행하는 법

 

<도덕경>에서는 도를 말로 설명하거나 정의할 수 없다고 한다. 도를 도라고 하면 이미 도가 아니라고. 그렇다고 도에 대하여 말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도를 말하고,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도인지 말한다.

도덕경을 읽으면서 노자가 말하는 대부분의 구절이 유유자적하고 이상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삶이 법칙이나 규범에 의하여 좌지우지되기보다는 본연의 마음이나 자율성, 자연에 초점을 맞추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계속 읽어나갈수록 도라는 것이 마냥 허송세월하는 것 같지 않았고 오히려 이것저것이라는 구별이나 이분법을 아예 넘어서 살아가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글로 쓰여 있는 것을 읽으며 아, 그런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것과 생활은 달랐다. 다는 아니라도 조금은 알았다고 생각했는데 읽고 나서보니 책을 조금 읽었다고 그렇게 살아지는 건 아니었다.

최근 일상생활을 하면서 지친다는 느낌을 받았다.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일정들이 버겁게 느껴졌고 이동시간이 새삼스럽게 길게 느껴졌다. 책도 하루만 늦게 조금만 이따가 읽자고 미루게 되었고, 밥도 좀 이따가, 아니 그냥 먹지 말자 미루다가 나중에는 진짜 시간이 없어서 먹을 수 없었다.

 

어려운 일을 하려면 그것이 쉬울 때 해야 하고,

큰 일을 하려면 그것이 작을 때 해야 합니다.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도 반드시 쉬운 일에서 시작되고,

세상에서 제일 큰 일도 반드시 작은 일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도덕경, 63)

 

책을 읽는 동안 제63(어려운 일은 쉬울 때 해야)이 계속 눈에 들어왔다. 딴 곳을 읽다가도 다시 돌아가 읽었다. 다 읽고 나서 왜 그랬는지 생각해보니 내가 요새 엉망으로 생활하는 것이 떠올랐다. 어려운 일을 쉬울 때 하라는데, 쉬운 일을 꼭 어렵게 만든 후에 하려고 하고 뻔히 예상할 수 있었으면서도 커진 일이 감당하기 어려워 괴로움을 겪고 있었기 때문이다.

 

큰 것을 작은 것으로 여기고,

많은 것을 적은 것으로 생각하십시오. (도덕경, 63)

 

처음 읽었을 때는 큰 것을 크게 느껴 너무 부담가지지 말고 막 시작되어 아직 작을 때 일하라는 것까지만 느껴졌었다. 하지만 계속 읽어보니 크거나 작은 것이 서로 다른 것이 아니니 동일한 마음가짐으로 실천하라는 것으로도 느껴졌다. 크거나 작거나 모두 같다면 애초부터 해야 하거나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지 않을까.

도라는 건 특별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내가 만들어낸 괴로움에 묶이거나 어려움을 스스로 만들어내지 않는 것. 세상이 보기에 크거나 작을 것이라는 판단으로 일을 하지 않는 것.

우리가 도를 모른다고 하더라도 일상의 크고 작은 부분들의 본래 생김새를 보려 노력하며 하나하나 해나가면 도를 행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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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님의 댓글

백수 작성일

'함이 없는 함'을 실천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