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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쑥쑥조] 시즌6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3>-3 후기 (60/100)

게시물 정보

작성자 자연자연 작성일20-03-06 19:31 조회6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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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또! 후기를 쓰게 된 자연입니다.

지난 주 시즌6의 마지막 시간... 책을 좀 덜 읽어간 저는 후기를 쓰게 되었습니다! 

덜 읽어간 만큼 친구들의 이야기에 집중해보려고 노력했는데, 책을 제대로 못 읽어가서 쉽지 않았습니다! 

역시 세미나는 책을 제대로 읽어가야 제맛!!!


후기를 시작합니다~~~~


3권은 격정적인 이야기들보다는 이렇게 깝깝한 이야기들이 많아 읽기가 쉽지가 않았습니다. 그나마 사랑얘기가 서사가 있어 눈에 들어왔습니다^^;;


나와 질베르트의 사랑, 나의 마음에 비해 너무도 매몰차던 질베르트. '나'의 거의 짝사랑에 가까운 마음과 생각들이 흘러갔습니다. 그녀가 자신을 어떻게 대할지, 이번엔 어떤 말을 할지, 온갖 고민들에 휩싸여 있었는데요. 자신을 좋아하지 않을까봐 전전긍긍..! 읽는 내내 가슴이 깝깝하고, 답답했습니다.ㅠ 


질베르트의 몸 속에 깃들여서 그 빛을 그녀의 양친, 그녀의 집안에 방사하면서, 나로 하여금 다른 모든 것에 무관심하게 만드는 그 야릇한 실체가, 오래지 않아 그녀의 몸에서 빠져 나와 다른 몸에 옮아가리라고는, 나는 상상조차 못 하였다. 사실 동일한 실체이다. 그러나 나에게 전혀 다른 작용을 미치게 된다. 왜냐하면 같은 병이라도 다양하게 변화하고, 몸에 감미로운 독물도, 해를 거듭하여 심장의 저항력이 줄었을 때에는 전처럼 견디지는 못하니까.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3, 국일미디어, 219쪽)


이렇게 '나'는 늘 불안해했는데요. 그녀가 떠날까봐, 상상도 하고 싶지 않았지만... 10000프랑을 싸들고 질베르트를 찾아가지만, 결국 딴 남자와 함께 있는 그를 만나게 되었죠... ㅠㅠ 훌쩍.


소담이는 우리가 이 책에서처럼 삶에서 사건을 매우 복잡하게 만나는 것 같다는 이야기로 문을 열어주었는데요. 그 복잡함이 생겨나는 것은 우리가 새로운 변화에, 새로운 사랑에(?) 온전히 그 마음을 내어주지 못 할 때, 복잡해지고, 헛된 희망이나 수많은 이야기들을 붙이는 것 같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 사이의 시간들이 어쩌면 굉장히 자연스러운 시간인 것 같다고 말이죠. 그런데 우리는 스스로에게 혹은 타인에게도 굉장히 깔끔하게 딱! 무자르듯이 그런 마음과 행동을 원하는 것 같습니다. 


세미나 시간에는 또 이 사교계에 대한 이야기도 나눴었는데요. 겉치레 같은 이야기들이 넘쳐나고 있었는데 헌데 걔 중 멋진 인물이 등장합니다. 왕고모는 불쾌한 말들을 입에 담으며, 이야기를 쉽게 하곤 했지만, 절대 그 사람이 없는 자리에서는 한마디의 험담도 하지 않았는데요! 이건 좀, 멋져보이네요^^

그리고 계속 아무말 대잔치를 많이 나눴는데요^^ 화자가 공부하는 장면에서는 우리들의 공부이야기도 나누고, 지난 주에 이어 천재에 대한 이야기도 나눴습니다! 호정이는 어렸을 때 늘, "천재 이선미"라고 이름을 썼다하고ㅎㅎ


이번 시즌은 이렇게 3권까지 읽고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다음 시즌에는 1권을 한 번 더 읽어 보고, 4권부터 계속 읽어갑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는 시간과 공간을 계속해서 옮겨다니는데요. 콩브레 마을, 스완네 집으로 많은 이야기들이 회귀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1권을 꼼꼼이 한 번 더 읽어보기로 했습니다! 

소담이의 발제문을 붙이며...!!!


그럼 다음 시즌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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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어쩌면 느즈막한 삶을 찾아서


 나는 질베르트와 헤어진다. 이번에 읽은 내용을 정말 짤막하게 요약하면 이렇다. 하지만 100페이지 가량의 분량에서도 알 수 있듯, 헤어짐이라는 사건을 저 한 문장에 요약하기란 무리가 있어 보인다. 질베르트와 싸우고 그녀를 만나지 않게 되면서, 나는 굉장히 지난하고 모순된 생각들로 뒤덮인 과정을 겪어내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삶에서 맞닥뜨리는 사건이 모두 이러한 형태를 띠고 있지 않았던가? 뒤돌아보면 단순하지만, 그 속에 있을 때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그렇다면 한편으론 단순한 사건을 복잡하게 만들어버릴 때 우리 안에서는 무엇이 작동하고 있었던 걸까? ‘나’의 복잡미묘한 감정선을 따라가면서 그 실마리를 찾아보고자 한다.


사랑해서 떠날래!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질베르트를 만나러 스완네 집에 간 날. 공교롭게도 마침 질베르트는 춤을 배우러 나갈 예정이었다. 내가 찾아온 것을 안 스완 부부는 질베르트에게 춤을 포기하고 나와 시간을 함께 보내라 명(!)한다. 나는 좋아하는 질베르트와 함께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지만, 고대하던 대화는 차갑기 그지없다. 서로에게 원망의 말을 주고받던 찰나! 나는 다시는 질베르트를 만나지 않으리라 굳게 다짐하고 집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굳은 결심은 순간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마저 나는 질베르트 곁에 돌아오고 싶다는 마음에 사로잡혀 ‘상처투성이인 채로’ 겨우 집에 도달한다. 그녀를 그토록 보고 싶었음에도 그가 발걸음을 돌리지 않았던 이유는, 만약 그대로 돌아가게 되었을 때 질베르트가 그의 연심을 확신하고 오히려 그를 매몰차게 대할까봐서였다. 사랑하더라도, 아니 사랑하기 때문에 더욱 멀어져야 한다는 이 아이러니!

 그렇지만 정말 질베르트에게 지금의 이별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느낌의 편지를 보내고, 그녀를 피해 다니는 게 그들의 사이를 더욱 돈독히 만들어 줄까? ‘화해에 대한 희망이라고 하지만, 물론 나는 그것이 공상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3』, 국일미디어, p.236) 나 역시 그럴 가능성이 없다는 것은 진작 알고 있었다. 그런 희망은 실제로 희망이 이루어지는지 아닌지와는 별 관계가 없다. 그저 지금 질베르트와 떨어져있기에 괴로운 시간들을 조금이나마 위로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을 뿐이다. 그렇기에 설령 한 희망이 깨지더라도 나는 다시금 새로운 희망을 품으려고 했다. 저녁에는 그녀에게서 연락이 오겠지, 저녁이 아니면 내일 아침이라도, 아니면 모레라도…. 하루 사이에 무너져버릴 희망이지만, 그걸 기대하는 그 순간만은 나의 마음을 편하게 해 줄 마취제로서의 희망.

 결국 내가 끊임없이 회피하고자 했던 현실은 질베르트가 자신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것, 이전과 같이 그녀와 함께 기쁜 시간을 보낼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녀와의 말다툼에서 그 낌새를 눈치챘기에 다시는 만나지 않겠다는 결심을 했지만, 한 순간의 다짐으로 지금까지의 연정이 단숨에 식기는 어려운 법. 나의 마음 한 구석엔 질베르트가 자신을 다시 봐줄 것이라는 희망이 남아 있었다. 나는 희망을 품었기에 실연의 괴로움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었지만, 반대로 희망을 품었기에 몇 번이고 그 괴로움을 다시 맞이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내가 현재에 하고 있는 것뿐만 아니라, 그것에 따르는 미래의 결과를 뚜렷하게 통찰하면서, 계속해 열중하고 있는 것은, 나 자신의 마음속에서 질베르트를 사랑하고 있는 자아의 길고도 잔혹한 자살이었다. (앞과 같은 책, p.263)


 허나 이런 복잡한 심경을 겪는 게 비단 질베르트와 헤어지는 나뿐이랴. 누구나 갑작스럽게 찾아온 사건 앞에서는 당황을 금치 못하는 법이다. 그러다 보면 단순히 사건이 일어나기 이전의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철없는 희망을 품기도 한다. 점점 바뀌어가는 현실 앞에서 과거의 행복(?)을 붙잡고 늘어지는 것이다. 별 일 아니라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금방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을 거란, 그런 희망.

 어찌 보면 단순할 수 있는 사건을 복잡하게 만들어버리는 건 우리의 이런 희망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모두 사건을 겪을 때 희망의 괴로움을 함께 겪고 산다. 그 안에 빠져있을 때는 몰랐지만, 질베르트를 둘러싸고 만들어내는 나의 번뇌를 적나라하게 보니 그것은 너무 괴롭게 느껴졌다. 그저 질베르트가 나를 좀 싫어할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하기만 하면 될 텐데! 왜 우리는 미련하게 희망을 탁 놓아버리지 못하는 걸까, 왜 그 희망에 다시 휘둘리면서도 단숨에 희망 없이 살아가기를 바라지 않는 걸까?


계절이 지나듯, 아주 조금씩

 그도 그럴 것이 탕송빌 별장의 안주인인 스완 부인은, 아무리 쌀쌀해도 4월에 꽃이 안 피는 일은 매우 드물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첫 봄기운이 들기까지는 세상에는 비에 갇힌, 초목 없는 집들만 있는 줄 아는 도시 사람의 생각 같은, 그런 엄밀한 칸막이로 겨울이나 봄이나 여름이 구분되어 있지만 않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앞과 같은 책, p.296)


 이전에 책에서도 비슷한 구절이 나온 적이 있었다. 한 계절이 다른 계절에 길을 잃고 들어오는 것만 같은 어느 날. 이런 날들은 분명 우리의 삶 속에 있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지금에도 때로는 너무 이르게 봄 햇살이 찾아오거나, 뒤늦게 한겨울의 눈발이 날리게 되는 날도 있는 것이다. 우리가 주의 깊지 못했다 뿐이지 생각해보면 모든 계절이 그렇다. 어떤 경우에도 ‘땡! 오늘부터 봄입니다!’라고 하지 않고, ‘내일 12시를 기점으로 겨울이니 그때부터 옷을 바꿔 입으세요’라고 하지 않는다. 새로운 계절의 기운은 늘 어느 날 갑작스레 찾아온다. 그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 모습을 감춰버리곤 다시 와서 머리를 빼꼼 쳐든다. 그렇게 하나 둘 조금씩 우리에게 익숙해지더니 어느 새 우리 곁에 자리를 잡게 된다. 그때가 되면 이전의 계절은 이미 전생 일처럼 까마득하다.

 그렇게 보면 우리의 희망은 봄이 올 때 미처 떠나지 못한 겨울의 한 나날과도 같다. 한때 불탔던 연정이 스러지고 또 다른 마음이 그 자리를 대신할 것이지만, 아직 온전히 그 자리를 내어주지 못할 때, 그때의 마음이 우리에게 곧 희망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이 희망이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고, 우리의 오장육부를 배배 꼬이게 만들지만 어떠랴. 그것 또한 당연한 계절의 흐름인 것을. 우리는 늘 그렇게 다음 스텝으로 나아갔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단 한 번도 단순하게 바뀐 적이 없었기 때문에! 복잡하다 슬퍼할 일도 없는 것이다. 그저 ‘또 다른 계절이 찾아오는구나~’를 충분히 느끼면 그만인 일.

 우리는 한 계절의 안에서 지나간 계절의 흐름이 너무 당연했고 단순했음을 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고정된 계절의 한가운데에 있을 때의 이야기다. 봄에서 여름으로,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과정 속에서 요동치는 마음은 결코 당연하고 단순하지 않다. 우리의 희망이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어버리기 때문에. 하지만 그 희망을 이상한 것, 없애버려야 할 것으로 여기기보단, 느즈막히 찾아오는 계절의 흐름 속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여기는 게 훨씬 낫지 않을까? 봄도 겨울도 아닌, 그 ‘사이’의 시간을 충분히 음미하기 위해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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