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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쑥쑥조] 시즌6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3>-2 후기 (59/100)

게시물 정보

작성자 자연자연 작성일20-03-04 21:58 조회5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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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자연입니다! 

이번 주는 스완과 오데트의 사랑이 식어가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사랑의 마음이 끝나도 질투는 끈질기게 스완을 쫒아다니고, 기억은 점점 선명해져갔다고 느껴졌는데요! 친구들은 기억에 매달리는 것도 사랑의 감정이 남아 있을 때나 그런 것 같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오데트를 사랑하지 않게 되어 이제는 그녀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는 날,  그런 고뇌의 앙갚음을 하고 싶다는 숙원도 품어 왔다. 그런데 그 두번째의 숙원이 이루어지는 기회가 마침 왔다, 그도 그럴 것이 스완이 다른 여인에게 연정을 품기 시작하였기 때문에. 그런데 그 여인은 스완에게 시새움의 동기를 주고 있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시새움을 일으키고 있었다. 왜 그런가 하니 스완이 이제는 남을 사랑하는 투를 새로 바꿀 수 없어, 그 여인을 사랑하는 데 사용한 것이 오데트에 대하여 사용하던 사랑의 투였기 때문이다. -3권 141쪽


스완은 스스로를 괴롭히는 방식으로 밖에 사랑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참 안타까웠는데요. 마음 조리고, 다른 사람을 만나도 기존의 방식으로밖에 사랑하지 못하고... 그러면서도, 나중에 오데트와 지내는 모습은 쇼윈도 부부처럼 보이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ㅠㅠ 눈물 ㅜ


뒷부분에 음악 이야기가 나오는 부분에서는 "천재"라는 것이 눈에 띄었는데요! 천재의 작품은 늘 시대의 인정을 받지 못하고, 훗날의 대중들을 마련하는 일이란 것이 재밌게 다가왔습니다. 

 

그들의 삶이 설사 사회적으로, 어떤 뜻에서는 지적으로 아무리 보잘것없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그 거울에 반사시킨다. 천재란 사물을 반사하는 능력에 있는 것이지, 반사된 구경거리의 내부의 질에 있는 것이 아니다. -같은 책, 185쪽


양명이 떠오르기도 하고, 프루스트가 실제로 이런 천재였던 것 같다는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우리의 머리속 이야기를 꺼내놓은 듯 하지만, 절대 쉽게 풀어쓸 수 없는 이야기를 다루는 것을 보면, 세상의 이야기를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를 반사시켜 책에 그려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섬세한 눈을 가지는 것으로도 우리 모두 천재가 될 수 있는...?ㅎㅎ


곧 다음 주 후기로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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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시퍼런 민낯


 사랑이란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얼마나 이기적인 인과 속에서 이루어지는 행위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사랑보다 더 오래 지속되는 다른 감정들. 스완과 오데트의 캐캐묵은 사랑에서 그 감정들의 민낯이 얼굴을 드러낸다. 그 중 가장 끈질긴 놈은 단연 질투다.


질투와 사랑은 한 배를 타고

 스완은 볼일이 있어서 나가면 저녁식사 직전에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회사에서 늦~게까지 야근을 하며 집에 잘 가지 않은 아버지들이 이런 마음일까? 아니다. 좀 다르다. 스완의 마음에는 가기 싫은 그 마음보다 그 낮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 지, 예상은 하지만 그것을 보지 못하는 두려운 마음이 자리하고 있다. 판도라의 상자를 차마 손으로 열 수 없어서 외면하는 그런 마음이랄까?

 그러면서 애써 무심한 척 한다. ‘그게 나하고 무슨 관계가 있지?’ 하지만 그때의 스완의 머릿속에는 이런 생각들이 지나간다.


이전에 스완이 그처럼 스스로 괴로워하던 동안에 그는 스스로 단언했다, 자기가 오데트를 사랑하지 않게 되어, 오데트의 비위를 상하게 하거나 또는 자기가 그녀를 지나치게 사랑하고 있는 줄로 여기게 하거나 하는 것을 다시는 겁내지 않게 된다면, 자기가 초인종을 울리고, 열어 주지 않는 창문의 유리를 두드리고, 그러고 나서 그녀가 포르슈빌에게 찾아온 사람은 숙부였다고 편지를 쓰던 그날에, 과연 포르슈빌이 그녀와 동침하였는지 여부를, 단지 진실을 규명하고 싶은 마음에서 역사의 한 점 모양으로, 그녀와 밝혀내는 만족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그러나 그처럼 흥미진진한 문제도, 그것을 규명하려면 질투심의 소멸을 기다리기만 하면 그만이었는데, 스완이 질투심을 느끼지 않게 된 바로 그 순간, 그의 눈에는 아무런 흥미도 없는 것으로 비쳤던 것이다.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3권, 〈꽃피는 아가씨들 그늘에〉, 139p, 국일미디어)


이런 마음들이 부질없게도 질투심을 느끼지 않는 순간! 아무런 흥미가 없는 것으로 바뀌는 것이다. 그 사람에게 들었던 의심, 그걸 알아내고 싶지만 창피해서 그만두었던 그 마음, 모든 것이 ‘질투심’과 함께 사라졌다. 

 놀랍지 않은가? ‘질투’와 ‘사랑’은 정말 혼연일체였던 거다. 질투와 함께 사랑이, 사람에 대한 관심이 꺼져버리다니. 사랑에 의존하고 있는 점에서 약하디 약한 듯하고, 그럼에도 사랑과 하나로 늘 붙어 다닌다는 점에서 강하디 강한 질투!!

 

죽음만이, 아니 죽음도 끊어내지 못하는 질투 

 과연 스완에게 오데트가 아무 관심도 없는 그런 존재로 바뀌었을까? 그렇지 않다. 사랑보다도 더 오래 이 마음은 지속된다. 사랑은 질투를 낳고, 질투는 복수를 낳는다. 더 안타까운 건 스완이 마음의 행로를 틀지 못하는 거다. 이 마음씀을 새로운 방식으로 쓰지 못한다. (정말 어려운 일인 것 같긴 하다.) 

 스완을 졸졸 쫓아다니는 마음. ‘오데트와 포르슈빌이 동침을 했나 안했나.’ 사랑이 식고, 마음이 불편하면서도 이 한 마음은 절대 스완 곁을 떠나지 않고, 점점 더 뿌리를 내린다.


오데트가 포르슈빌과 동침하였는지 여부를 알고 싶은 비통한 호기심이 뿌리 깊게 남아 있었다. 그러다가 그런 호기심마저 없어지고 말았는데, 그래도 하녀들을 수소문 하는 것은 그치지 않았다. 이미 흥미를 끌지 않는 것의 진상을 알려고 계속 애썼던 것은, 극도로 노쇠에 이르면서도, 옛 자아가 아직 기계적으로 작용하였기 때문이며, 스완이 전날의 고민을 다시 상기할 수 없을 만큼이나 희미해진 근심의 타성에 의하여서였다. 그 고민이야 말로, 한때는 어찌나 심하였던지, 영영 거기서 구출되지 않을 것을 상상해, 사랑하는 여인의 죽음만이(이 이야기의 나중 줄거리에서 잔혹한 실례에 의하여 증명되듯이, 죽음은, 질투의 고뇌를 하나도 감소시키지 못하지만) 그의 꼭 막힌 삶에, 길을 터 줄 수 있는 것처럼 생각되었던 것이다.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3권, 〈꽃피는 아가씨들 그늘에〉, 140p, 국일미디어)


마음이 식었음에도, 무관심해졌음에도 그날의 기억은 점점 선명해져간다. 사실 그 기억을 선명하게 만든다. 그러곤 언젠간 앙갚음을 해주겠어, 라며 복수의 칼날을 간다.

 내가 소나타를 처음 몇 번 들었을 때는, 그게 기억에 남지 않았다. 한 번 듣고, 두 번 듣고, 그 회상의 작용으로 ‘기억’이란 게 생겨난다. 강렬해지는 기억, 그 장면은 분명 충격적으로 다가온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기억의 작용에 밥을 준 것은 분명 나다. 곱씹고, 곱씹고. “복수하겠어!” 혹은 “내 나중에 너를 뻥 차주지” 이렇게 스스로는 해결책(?)이라 생각하는 것들을 키우면서, 스스로의 뇌리에 자리 잡게 하고 있는 것이다. 

 질투는 사랑의 다른 방식으로, 사랑을 할 수 없기에 이런 방식으로 스스로에게 그 사람을 기억하게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어떻게든 그 사람을 나에게 작동하게 만들려는 그 마음이 이런 질투의 끝을 가져오지 않았을까. 사랑의 민낯은 사랑의 변주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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