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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백전

[청백전 인절미] 시즌 6 <우파니샤드>3 (58/100)

게시물 정보

작성자 이달팽 작성일20-02-12 22:10 조회193회 댓글2건

본문

2020.2.12(8주차)

: <우파니샤드>

참여자(6): 현정희, 이윤하, 최세실리아, 문보경, 공태경, 이용제



이번 주는 <우파니샤드> 세 번째이자 마지막 시간! 이었습니다.

마지막 시간에 다시 보게 된 이 책의 부제는 “인간의 자기 발견에 대한 기록”이었습니다.

모든 존재 안에 있고 또 모든 존재 밖에 있는 ‘브라만’으로서의 자기를 발견한 인간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죠.. !

저는 발이 묶인 새처럼, 결국 참자아로 돌아오게 되는 인간의 마음에 대해 발제를 썼습니다.

<우파니샤드> 뿐만 아니라 지난번 읽었던 <숫타니파타>를 비롯한 불교,

<중용>등의 중국 학문 모두 <우파니샤드>에서 말하는 ‘참자아’로서의 인간이 되고자 하는 비전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인간에게는 어쩔 수 없이 이런 것에 끌리고, 이렇게 자신의 육체적 쾌락을 넘어선 존재가 되고 싶은 욕망이 있구나, 싶었습니다.

누구에게나 깨닫고 싶은 마음이 어느 정도는 있는 것이죠!


이번 주에는 용제샘이 사뭇(?) 다른 분위기로 책을 읽어오셨는데요,

책을 읽다보니 ‘브라만’이 경외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자연 같은 존재라는 느낌이 들었다고 하셨습니다.

<우파니샤드>에서는 윤회를 말하면서 현생의 삶이 다음 생의 육체를 결정한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때 낮은 계급의 육체를 갖게 된다는 것은 ‘죄’가 있어서라고 말할 수 없을 것 같은데(어떤 신이 죄가 있다고 판단을 내리는 것이 아니니까)

그렇다면 어떤 원리가 있는 것일까 하는 질문을 던져주셨습니다.

그런데 어쩌다 이야기가 다른 쪽으로 틀어져버리는 바람에 이에 대해서는 더 이야기를 하지 못했습니다ㅜㅜ


“참 자아를 깨달은 사람은 모든 세상과 원하는 모든 것을 성취한다”

“심장 공간 속에 있는 바라만을 깨달은 사람이 향기와 꽃다발이 있는 화려한 세계로 가기를 원하면

그 생각만으로 향기와 꽃다발이 있는 세계로 간다.”

“심장 공간 속에 있는 브라만을 깨달은 사람은 그가 무엇을 원하든, 무엇을 바라든 다 그대로 이루어진다.

그러면 그는 자기가 원하던 것이 이루어진 것을 알고 행복해 할 것이다.”


이번에 읽었던 <우파니샤드>의 분량에서는 이런 구절이 종종 나왔습니다.

참 자아를 깨달으면 원하는 것이 모두 이루어진다- 는 내용이었습니다.

혼자 책을 읽을 때 저는 이게 대체 무슨 말인가 했는데, 세미나에서 이야기를 나눠보니 좀 알 듯(?) 했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발이 묶인 새라, 다시 참자아로 돌아온다는 비유가 내면에 진짜 가치 있는 것이 있으니

다시 돌아와야 한다는 것 같다는 이야기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우리 안의 브라만에 이미 모든 것이 들어있기 때문에 이를 깨달으면 모든 것을 ‘성취’하는 것이라는 말이지요.

(<어린왕자>와 <연금술사>, <데미안> 이야기까지 나오게 되었습니다ㅋㅋ).. 아직 느낌만 있네요;ㅎ




3주간의 <우파니샤드>를 이렇게 마치고, 다음주에는 <도덕경>을 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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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2 | 청백전 수요반 s.6 | 우파니샤드 3/3 | 발제 이윤하


발이 묶인 새, 인간


  <우파니샤드>에는 우리의 마음이 발이 묶여 있는 새처럼 ‘참자아’에 단단히 묶여 있다는 비유가 나온다. 묶인 새는 처음엔 날아가보려고 사방팔방 날갯짓을 한다. 그렇게 어느 정도 하다 보면 더 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묶여 있는 자리에 가만히 앉아있게 된다. 그것처럼 우리 마음도 사방팔방 방황하다가 어느 순간이 되면 결국 우리가 묶여 있는 참자아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참자아의 자리가 어디인지는 <우파니샤드>를 끝까지 다 읽은 지금으로써도 알 수는 없으나, 대충 짐작해볼 수는 있을 것 같다. 그건 물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엇이고, 직접 그 ‘참자아’로 존재해 봐야 아는 거라고 하지만, 내가 내 수준에서 내 말로 표현해보려고 한다면 좋은(선한) 존재로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 같은 것이 참 자아의 자리로 돌아온 마음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발이 줄여 묶여 있는 새의 비유는 어딘가 의미심장하다. 우리는 새가 날아가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나? 날아가보려다가 지쳐서 제자리로 돌아온 새의 이미지는 좀 무력하고 약해보이지 않는가. 줄을 끊고 날아가야 자유롭고 ‘참’ 자아로 살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에 대해서도 비슷한 생각이 든다. 사방팔방 방황해보지만 한계가 있고, 결국 돌아올 수밖에 없다는 것. 이것에서 어떤 결핍이 느껴진다. 왜, 인간은 모든 것을 다 욕망하면 안 되는가? 왜 줄에 묶여 사는가? 가끔은 좀 막 욕망하고, 막 마음을 쓰고, 막 살아도 괜찮으면 안 되나 싶기도 하다. 무엇인가가 인간을 막는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우파니샤드>가 말하는 모두의 안에 있는 브라만, 참자아인 것 같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진정한 소망은 거짓 소망에 가려있다. 그러나 거짓 소망에 가려 있다고 하더라도 그 진정한 소망은 언제나 내면에 존재하고 있다. (<우파니샤드>, p259)

  

  <우파니샤드>는 그런 ‘막 욕망’들이 사실 거짓 소망이라고 말한다. 그것에 가려 있는 “진정한 소망”이 따로 있다고 한다. 그것이 인간의 한계라면 한계다. 줄에 묶여 있는 상태, ‘진정한 소망’을 가지고 있는 상태, 이것저것 욕망하고 싶다가도 스스로를 제어하게 되는 상태, 그게 인간의 조건이다. 

  지난주 태경샘이 발제에 쓰신, 말씀이냐 떡이냐- 하는 문제는 또한 내면적인 문제다. 우리 안에서는 두 방향의 욕망이 줄다리기를 한다. <우파니샤드>가 진정한 소망, 욕망이라고 말하는 “늙음과 죽음, 배고픔과 목마름, 모든 슬픔과 걱정에서 벗어나”(256)있는 욕망, 강이 흘러가 바다가 되면 어디서 왔는지 인식하지 않는 것처럼 탈 개체적인 존재가 되고 싶은 욕망(‘존재’라고 말할 수도 없을지 모르겠지만)이 있고, 줄을 끊고 날아가고 싶은 욕망이 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만히 앉아있는 새도 아니고 줄을 끊은 새도 아니고, 사방팔방 날갯짓을 하고 있는 새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에 우리가 답해볼 수 있을까? 줄을 끊고 날아간 인간은 어떤 인간일까?, 줄에 묶에 가만히 앉아있는 상태가 ‘자유’라고 말할 수도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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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백수님의 댓글

백수 작성일

책에 나온 '발이 줄에 묶여 있는 새'라는 표현으로 인해 혼동스러웠던 ㅎㅎ
어쨌든 우리의 영혼은 참 자아에 단단히 묶여 있어 순수의식 속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

세실님의 댓글

세실 작성일

발이 묶인 새의 비유를 함께 이야기 해본 것이 즐거웠어요! 줄에서 풀려나는 것이 자유! 라고 막연하게 생각한 것에 자유...? 라고 다시 생각해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내가 알고 깨닫고 지켜야 할 것이 이미 내 안에 있다는 것은 신기하면서도, 그래서 더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