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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백전

[뭄조] 시즌5 <섹서스>2 발제(48/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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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다솜 작성일19-11-17 23:25 조회15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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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1. 12. 청백전, 섹서스(2) 발제문, 김다솜

살아내기가 아닌 살아가기


1. 사유하고 창조한다는 것

  헨리에게 있어 노동은 그 자신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헨리는 토로한다. 자신이 기계처럼 조종당하고 있는 것 같다고. 다른 사람들에 대해선 모두 알고 있지만 나 자신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상태라고. ‘너무 많이 느끼고만 있을 뿐이라고. 그렇기 때문에 자신에게 사유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이다. 모나 역시 사정이 비슷하다. 모나는 댄스홀에서 사내들과 춤추는 일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심한 외로움을 느낀다.

  헨리는 자신을 기계라고 표현했다. 기계는 작동명령에 복종하여 똑같은 작업을 무미건조하게 수행한다. 시키는 일을 저항 않고 잘 해내는 수동성만이 필요할 뿐, 사유는 요구되지 않는다. 수동적인 것과 스스로 사유하고 인생을 형성해내는 것은 정 반대의 벡터이다. 기계 같은 삶에 익숙해진 헨리는 사유 함과 멀어져버린 듯하다. 헨리는 이러한 자신의 상태가 잘못 되었다고 느낀 것이다.

그는 내 인생의 지위에 왜 그렇게 불만인가를 이해하지 못했다. 더구나 나는 그렇게 많은 선을 행하고 있었는데, 사람은 그가 단지 의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으로 심히 불쾌할 수 있다는 것을 그는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다. 나는 맹목적인 도구에 불과하고 무기력한 법칙에 굴종하고 있으며, 또 비록 그것이 선행을 의미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나는 무기력을 싫어한다는 것을 그는 깨닫지 못했다. (197p)

  헨리는 토드와의 대화에서 이렇게 말한다. 직장에서 지시하는 명령들에 복종하는 것 이상으로, 헨리는 모든 세상의 법칙에 대하여 맹목적으로 복종하는 태도 자체를 혐오한다. 그 법칙이 흔히 이라고 여겨지는 것이더라도 말이다. 수동성과 맹목성이 그에게는 최고 악인 것이다.

  수동성에 반대 되는 사유 함’. 헨리 식 표현으로 하자면 창조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헨리는 일과 창조는 반대되는 것이며, 창조는 유희이고, 창조는 그 자체로서 밖에는 존재 이유가 없기에 인생에 있어서 최상의 동기요 힘이라고 말한다(199p). 창조의 과정 혹은 존재가 변이하는 과정을 거칠 때 살아 있다는 감각을 느끼기 때문에, 창조가 인생 최상의 동기라는 말 자체에는 동의하지만, 창조가 무용하기 때문에인생 최상의 동기라는 말은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무용함이 뭔가를 더 가치 있다고 여기게끔 하는 조건이라도 되는 것일까?

  어찌되었든 헨리는 인생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스스로 잘 알고 있는 듯하다. 그는 창조를 중요시했다. 그렇다면 그는 무엇을 창조했나? 창조물로서든, 존재와 인식의 변화·확장이라는 넓은 측면으로서든 말이다. 일단 모나와의 관계 자체를 예로 들 수 있을 것 같다. 워낙 여자와 많이 관계를 가진 헨리인지라, 모나만큼은 자신에게 특별하다는 헨리의 말을 쉽사리 믿기는 어렵지만, 일단 헨리 자신이 모나를 특별히 여기기도 할 뿐 더러 모나를 만난 직후 소설을 썼다는 점을 미루어보아 모나와의 관계가 그에게 있어 어떤 생성을 가져다 준 듯하다.


2. 적은 가까운 곳에

  헨리는 외부의 법칙에 무기력하게 굴종하기를 싫어했다. 도덕적 관습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그의 태도에서 이는 잘 드러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헨리를 자유로운 존재라고 볼 수 있을까? 그럴 순 없을 것 같다. 헨리 스스로 고백하듯, 그의 죽은 영혼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싹트는 모든 것에 맹목적으로 순종했다(206p). 이는 가장 가까운, 자기 몸에서 꿈틀거리는 성욕과 충동들에 맹목적으로 순종했다는 뜻이 아닐까?

  그렇다면 헨리는 왜 성욕이 일어나는 족족, 상대를 가리지 않고 그것을 채우려고 하는 것일까? 정확히 이유를 꼬집기는 어렵겠지만, 적어도 헨리가 다른 무엇과 만나 자신을 변화시켜나가는, 작은 창조를 이뤄나가는 나날들을 보낸다면 그렇게 센 느낌으로 자신이 살아있다는 느낌을 확인하려 들진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하루의 상당량을 기계 부품으로 작동해야하며 그런 태도를 내면화한 사람으로서는 그런 구렁텅이에 빠져들기 쉬운 것 같다. 또한 그렇게 외적인 규칙에 대한 순종을 거부했던 헨리였기에, 자신의 성욕이 그 외적인 배치와 무관한 것이 아닌 것임을 확실히 인지했더라면 다른 길을 내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딸에 대한 관심은 안중에도 없고, 친구의 아내와 바람을 피고, 모나를 택해놓고 다시 모우드와 바람을 피는 등의 헨리의 행동을 전혀 좋아할 순 없지만, 적어도 어떠한 가치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은 무기력임을 확실히 인지하는 그의 태도는 빛나는 점인 것 같다. 어떤 이야기를 들었을 때, 가치 판단을 쉽게 내릴 순 있지만 그 판단의 이유에 대해서는 제대로 설명할 수 없을 때야 말로 맹목에 가까운 것 같다. 사유하고 고찰하지 않았기에 내 주변의 배치물이 만들어 놓은 판단을 그대로 쓰는 것이다. 이는 무기력이며 나에게 내재하는 적에 다름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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