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강학원

본문 바로가기
남산강학원을 즐겨찾기에 추가
사이트 내 전체검색

청백전

[청백전 마늘쑥쑥조] 시즌5 <이것이 인간인가> 발제 (47/100)

게시물 정보

작성자 영영영 작성일19-11-17 23:12 조회177회 댓글0건

본문

수용소에서 살아남는다는 것

이것은 다른 사람의 일인가?

이것이 인간인가를 읽으면서 떠오르는 질문은 두 가지였다. ‘어쩜 사람이 이토록 잔인하게 사람을 다룰 수 있지?’그 사람들은 이 참혹한 곳을 어떻게 견딜 수 있었던 거지?’였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고, 감히 입에 담지도 못할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런데 이런 반응을 예상하기라도 하듯 프리모 레비는 말한다. 수용소의 일들이 정말 다른 사람의 일로 보이냐고.

개별적으로든 집단적으로든, 많은 사람들이 다소 의식적으로 이방인은 모두 적이다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러한 확신은 대개 잠복성 전염병처럼 영혼의 밑바닥에 자리 잡고 있다. 그것은 우연적이고 단편적인 행동으로만 나타날 뿐이며 사고체계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러한 일이 발생하면, 그 암묵적인 도그마가 삼단논법의 대전제가 되면 그 논리적 결말로 수용소가 도출된다. 수용소는 엄밀한 사유를 거쳐 논리적 결론에 도달하게 된, 이 세상에 대한 인식의 산물이다.

프리모 레비, 이것이 인간인가, 돌베개, 6

프리모 레비에게 수용소는 황당무계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수용소가 철저하게 논리적인 결과라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수용소의 일과 무관한 사람은 없다. 즉 누구라도, 파시즘의 논리에 빠질 수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프리모 레비는 이 수용소에서 있었던 일을 모르는 다른사람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참여시키고자 한다. 한 발짝 떨어져 머리로 다른 사람의 일을 이해하듯 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우리의 일임을 느끼도록 수용소에서 인간이 어떻게 행동하고 생각하고 살아가게 되는지를 보여준다.

수용소라는 사회

사흘 밤낮 쉼없이 유대인들을 태운 기차, 아기도 있고 노인도 있지만 사흘동안 마실 물 하나 주지 않는다. 그렇게 도착한 아우슈비츠라는 수용소에서 맨 처음 그들이 당해야 하는 수모는 아무것도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털 한 올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이, 옷은 물론 머리도 모두 밀려야 했다. 그리고 소독. 수용소에서 그들의 목숨은 마치 모기처럼 가볍다. 영영 돌아오지 못하는 선발은 어떠한 기준이 있다기보다는 주사위 던지기와 같이 운에 가깝다.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조그마한 단서라도 알고 싶지만, 질문이라도 하면 여긴 집이 아니다’, ‘아무 이유도 없다라는 대답만 돌아올 뿐이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자 수용자들은 이해는 포기하고 당장 눈앞에 있는 현실에 어떻게든 적응해간다. 철로 숟가락을 만들고, 철사로 신발을 단단히 고정시키기도 하며, 종이 하나라도 속옷에 덧대며 주위의 모든 것을 이용해 살아가려 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하나의 사회가 만들어진다. 수용소에 있다고 다 똑같은 입장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함께 억울하게 갇혀있으니, 서로에게 의지하고 독일인에게 반항하기엔 그럴만한 체력도 여유도 없다. 모두 멀건 죽과 가혹한 노동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용자들 사이에서 싸움과 말다툼은 기본이고, 본능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경쟁하고 몸부림친다.

신참과 고참은 물론, 각 개인이 가지고 있는 능력에 따라 생존 방식이 달라지는 것은 당연하다. 어리버리한 신참은 비웃음을 당하기 일쑤고, 대장장이에서 일을 했던 유대인은 철로 숟가락을 만들어 배급받는 빵의 반과 거래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도둑질하고, 누군가는 바깥사람들과 거래를 하기도 한다. 이 수용소에 사는 사람들에게 이 사회의 물리세계를 파악하고 맞춰 사는 것이 유일한 생존방법이다.

동의하지 않는 능력

하지만 수용소 생활을 지켜보다보면, 수용소 생활을 버티게 했던 것은 적응능력만이 필요한 게 아니라고 말하는 이가 한 명 있다. 세수조차 하지 않으며 체념하며 살아가는 프리모 레비에게 한 유대인 할아버지는 말한다.

수용소는 우리를 동물로 격하시키는 거대한 장치이기 때문에,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동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곳에서도 살아남는 것은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나중에 그 이야기를 하기 위해, 똑똑히 목격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한다. 우리가 노예일지라도, 아무런 권리도 없을지라도, 갖은 수모를 겪고 죽을 것이 확실할지라도, 우리에게 한 가지 능력만은 남아있다. 마지막 남은 것이기 때문에 온 힘을 다해 지켜야 한다. 그 능력이란 바로 그들에게 동의하지 않는 것이다.

프리모 레비, 이것이 인간인가, 돌베개, 58

프리모 레비도 동물보다 못한 삶을 살고 있는데 동의하지 않는 게 무슨 대수일까 싶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부드러운 가르침으로 오기는 했지만 혼란스러운 마음만 가득했던 것 같다. 사실, 나도 유대인 할아버지와 같은 마음가짐이 끝도 없는 수용소 생활을 어떻게 바꿔줄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그래서 나머지 반을 읽으며, 독일인에게 동의하지 않는 그 권리를 어떻게 지킬 수 있는지 봐야겠다.

게시글을 twitter로 보내기 게시글을 facebook으로 보내기 게시글을 Me2Day로 보내기 게시글을 요즘으로 보내기 게시글을 구글로 북마크 하기 게시글을 네이버로 북마크 하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