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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백전 인절미] 시즌 5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 2/2 (46/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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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단비 작성일19-10-27 18:00 조회5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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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23

[청백전 인절미] 시즌 5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 2/2 후기

출석 : 김계성, 김지혜, 문보경, 박단비, 이용제, 이윤하, 현정희

이번 시간에는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를 끝까지 읽고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발제는 정희쌤이 맡아주셨습니다.

5장에서는 구아야키 족 사회의 몇 가지 금기를 볼 수 있었습니다. ‘로 상징되는 남성의 역할, ‘바구니로 상징되는 여성의 역할을 엄격히 지키는 금기, 사냥꾼은 자신이 사냥한 것을 먹지 못하는 금기, 일처다부제의 시행. 3가지를 엄격히 지키는 방법으로 사회를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하는데요. 윤하쌤은 소유를 하지 않게 하는 방식이 권력이 생겨나는 것을 막는 역할로 보인다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또한 구아야키 족의 남자들이 부르는 노래는 듣는 사람 없이 언제나 1인칭으로 불리며 노래하는 사람이 훌륭한 사냥꾼임을 칭송하는 독창이었다고 하는데요, 이 부분에서 많은 분들이 흥미로웠다는 반응을 보이셨고 이 노래를 부름으로써 남자들은 자기 배설을 하기도, 자기 확신을 느끼는 것 같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6장에서는 인디언들을 즐겁게 하는 인디언 신화를 볼 수 있었습니다. 인디언에게는 두려운 존재인 샤먼(권위와 위세를 추장과 나누어 가지며 병자를 치료함)과 재규어(힘이 세고 뛰어난 사냥꾼)를 신화에서는 웃음거리로 표현하였다는 것에서 인간이 두려움과 위기를 대처해나가는 방식을 볼 수 있었습니다.

7장은 이전 시간에서 보았던 2장과 이어지는 듯한 내용으로, "국가 없는 사회에서 말하기는 권력의 권리가 아닌 의무"(p192)라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지혜쌤은 말과 권력이 밀접한 현대 사회에서 효력 없는 말을 하는 추장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고 하셨습니다. 그 당시 아메리카 인디언 사회로 시간여행을 떠나볼 수 없기 때문에 여전히 잘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사실이지만 "원시사회는 추장이 아니라 사회 그 자체가 권력의 진정한 소재지이기 때문에 분리된 권력을 거부하는 장이다. 인디언은 폭력이 권력의 본질임을 알고 있었다(p194)"는 내용은 왠지 중요한 대목인 것 같아 끄덕이게 되었습니다.

9장은 짧지만 가장 난해한 장이었습니다. 과라니족에서 말하는 하나는 그 자체로 죽음이기도 소멸이기도 하다고 합니다. 또한 최후의 인간들의 목적지인 '이우이 마라 에인'에 도달할 것이라는 믿음은 계속 또다른 공간을 찾도록 만들었다고 하는데요(p214) 과라니족이 바라는 하나가 아닌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또한 선이 2개일 수 있다는 내용은 태극기가 생각난다는 선생님도 계셨습니다.

10장은 고문이라는 고통스러운 입문 의례의 경험 후 몸에 새겨지는 자국이 개인의 자발적인 사회에 대한 충성심을 이끌어냈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한 선생님께서는 군대에서 받는 훈련과 무엇이 다를까 궁금해하시기도 했는데 계성쌤이 군대에서 받는 훈련은 자발적 의지도 충성심도 생기지 않는다고 답해주셔서 (조금은 씁쓸한..!)웃음이 터지기도 했습니다.

너희들은 우리와 같은 무리에 속한다.(생략) 너희들 중 그 누구도 우리보다 못하지 않고 낫지도 않다. 그리고 너희들은 그것을 절대로 잊지 못할 것이다(p230)라는 대목은 다시 보니 프랑스 혁명에서의 3대 이념 중 하나인 평등이라는 개념이 떠오르기도 하면서 평등은 어떤 형태의 사회이던 인간으로써 살아가는데 중요한 개념인건가? 라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마지막 장인 11장에서는 인디언의 노동시간이 흥미로운 부분이었습니다. 인디언 사회의 남성은 2년간 4달을 일했다고 하는데요, 일 외의 시간을 놀이, 어로, 음주 그리고 그들이 좋아하는 전쟁을 하면서 보냈다는 내용에서는 놀라움과 함께 잠깐의 부러움을 가지기도 하며, 선생님들의 여러 반응이 있었는데요. 인디언들의 삶은 중간이 없다는 반응, 현대인들은 불안감에 이렇게 보내지 못할 것 같다는 반응 등이 있었습니다. 지혜쌤은 일상생활이 따분한 정년퇴직자들이 모여 회사놀이를 하는 한 소설의 내용이 생각난다고 하셔서 선생님들이 흥미를 보이시기도 했습니다.

인디언 사회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선생님도 계셨습니다.(저는 며칠간의 여행이면 적당할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보경쌤은 권력과 복종이 난무한 현대 사회에서 접목을 어떻게 시켜야 할까? 라는 질문을 던지셨는데, 지난 시간에 이어 다수에 묻혀 편하게 살아가고 싶은 우리 안의 욕구를 한번 더 확인하기도 하였습니다. 저도 보경쌤의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는 못했으나 이번 시즌들의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눠가는 이 시간들이 더 신경쓰기 귀찮다고 생각하며 지나치는 모든 것들에 대해 하나라도 경보를 울릴 수 있는 시간이 된다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 마지막 시간을 마쳤습니다.


하나의 권력, 그 너머의 세계로

발제: 정희쌤

평화의 중재자로서 추장의 말하기

국가 없는 사회인 인디언 사회에서 추장의 역할로 부각되는 것 중 하나로 말하기가 있다. 추장에게 있어 말하기는 의무이며, 매일 새벽이나 황혼 무렵에 교훈적인 말로 자신이 속한 집단의 사람들을 즐겁게 해야만 한다. 추장이 누구인지 알려면 말을 많이 하는 자를 찾으면 된다고 할 정도이다.

그런데 인디언들이 추장의 말에 귀 기울이느냐하면 그건 아니다. 추장들의 설교 주제는 평화의 중재자라는 추장의 역할과 관련되어 있지만, 그의 말은 행복하고 평화로운 삶을 살았던 조상들의 생활 규범을 칭송하는 것의 반복일 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연설동안 각자 자기 할 일을 할뿐이고 추장의 말에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추장은 말하기를 독점하는 자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말에는 권위가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국가 없는 인디언 사회에서 인디언들은 추장의 연설을 듣지 않는 척함으로써 오히려 권력을 빼려는 의도의 행동들이 나타난다. 이는 사회 그 자체가 권력의 진정한 소재지라고 여겼던 인디언들이 권력의 독점을 막기 위해 설정해놓은 장치였던 셈이다. 일반적으로 권력자에게 말하기의 권리가 부여되는, 국가를 형성한 사회에서 나타나는 현상과는 반대로 보인다. 전자의 사회에서는 말하기가 권력의 의무, 후자에서는 권력이 지닌 권리이다.

권력을 거머쥔 추장의 등장

인디언 사회에서 만약 어떤 추장이 권력을 거머쥐려고 한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사실 추장이 권위를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가 있는데 그건 바로 전쟁이다. 군사행동 준비와 지휘를 통해 추장의 전사로서의 기술적 능력이 발휘된다. 하지만 결과에 상관없이 일단 전쟁이 끝나고 나면 추장은 곧바로 권력을 지니지 못한 추장으로 되돌아간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추장이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벗어나 사회의 욕구와 달리 권력을 휘두르려고 한다면 결과는 죽음뿐이다.

그런데 실제로 인디언 사회에 권력을 거머쥔 추장이 나타났다. 보통 원시사회는 인구 규모가 작다. 이러한 소규모의 집단으로 분산된 부족 세계는 통합적인 사회-정치적 집합체로 구성되기 힘들고 결국 국가가 출현하지 못하는 수단이 된다.

그러나 투피-과라니족 사회는 그 부족이나 지역 집단의 인구밀도가 이웃 집단보다 월등히 높았고, 지역 집단의 규모가 보통 열대우림 지역의 사회-정치 단위보다 훨씬 컸다. 이러한 인구 증대와 집중 속에서 권력을 획득하고자 하는 경향이 명료하게 나타났고, 투피-과라니족의 추장은 더 이상 권력 없는 추장이 아니었다.

카라이들의 예언과 움직임

그리하여 투피-과라니족에서 추장에게 집중된 권력을 파괴하기 위한 움직임이 일었다. 지상낙원인 사악함이 없는 대지를 찾아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자고 인디언 집단에 호소하는 열렬한 선도가 일어났다. 카라이들로 불리는 이 훌륭한 추장들은 어떤 계시를 받은 후 수천 명의 인디언들을 이끌고 신들의 고향을 찾아 동쪽의 풍요로운 땅으로 여행을 떠났다.

그런데 이 사회에는 추장의 권위의 그림자와 싹트기 시작한 추장의 정치권력의 압박이 서서히 강하게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그렇다면 사회의 핵심을 차지했던 예언자들이 인간이 사는 세계가 악으로 가득하다고 주장한 것은 권력의 생성이 국가 없는 사회, 원시사회인 투피-과라니 사회를 죽음으로 이끌게 될 불행과 사악함을 지니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고대원시 세계가 그 기초로부터 동요하고 있다는 느낌에 괴로워하고 사회-경제적 파국이 올 것이라는 예감에 사로잡힌 예언자들은 세계를 변화시켜야하기 때문에 다른 세계로 이주할 수밖에 없다고, 즉 인간의 세계를 버리고 신들의 세계에 도달해야만 한다고 결정했던 것이다.

<피에르 클라스트르,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 이학사, 266>

추장의 말은 권력으로부터 분리되어있었기에 그의 사적인 욕망을 채우기 위한 도구로서 사회를 이용할 수 없었다. 그러나 추장의 말에 동요하지 않던 인디언들은 카라이들의 예언을 따라 종교적 이동을 감행한다. 그렇다면 추장과 카라이들의 말에 어떠한 차이가 이런 결과를 가져왔을까.

카라이들의 목표가 사회 집단의 목표와 일치했기 때문이다. 즉 그들이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말을 하는가가 중요했던 것이다. 상대를 위할 때만, 모두를 위한 올바른 마음을 낼 때만 길이 보이고 권력의 힘도 발휘될 수 있다. 돈과 마찬가지로 권력도 그 힘을 잘 운용할 수 있는 사람에게만 말이나 행동에 효력이 주어지는 것이다.

추장은 인디언 사회의 조화를 이뤄야 할 자신의 임무를 잊은 채 사욕을 이룰 요령으로 권력을 휘두르려고 했었다. 그렇게 된다면 국가로 대표되는 하나의 권력이 생겨날 것이고 하나는 불완전하기에 소멸, 즉 사회 전체의 파멸을 초래할 것을 인디언들은 알고 있었다.

동등하고자 하는 의지

이렇듯 권력의 집중 현상을 지양하며 동등함을 외치는 인디언 사회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은 입문 의례의 과정으로 고문을 당하면서 그들의 기억 속에 새겨지는 다음과 같은 각인이다.

너희들은 우리와 같은 무리에 속한다. 너희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우리와 같고 너희들은 서로 같다. 너희들은 똑같은 이름을 지니고 그 이름을 바꾸지 않을 것이다. 너희들 각각이 우리들 사이에서 똑같은 공간과 장소를 차지한다. 너희들은 그것을 지킬 것이다. 너희들 중 그 누구도 우리보다 못하지 않고 낫지도 않다. 그리고 너희들은 그것을 절대로 잊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너희들의 몸 위에 남긴 동일한 각인이 그것을 너희들에게 계속 기억시킬 것이다.”

<같은 책, 230>

동등함은 신체에 고문으로 각인시키면서까지 그들이 기억해야만 했던 사회의 법이자 가치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악이라고 불리는 하나의 권력이 지배하는 사회가 아니라 그들이 원하는 서로 동등한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인디언들이 살던 땅은 현재 여러 민족들이 섞여 살아가는 터전이다. 그들 역시 평등사회를 외치며 끝없는 투쟁을 벌여왔다. 아직까지 차별은 존재하지만 평등사회를 구축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다. 이 지상을 그들이 바라는 영원한 땅으로 만들기 위해선 다음의 남겨진 질문을 지속적으로 고민해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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