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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백전 인절미] 시즌 5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 1/3 (4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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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삼봉 작성일19-10-22 07:43 조회4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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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16

[청백전 인절미] 시즌 5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 1/3 (45/100)

출석 : 박단비, 이용제, 문보경, 최세실리아, 현정희, 김계성, 김지혜


안녕하세요, 인절미의 후기를 맡은 김지혜입니다.

지난 1016일에 저희는 피에르 클라스트르의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를 읽었습니다~

이번 시즌도 여전히 만만치 않은 느낌이 듭니다. 첫 책 <유목민의 눈으로 본 세계사>부터 <카프카 단편집>를 지나온 저희에게 클라스트르는 또 다른 종류의 즐거움(?)을 주는군요. 산을 넘는 즐거움... 이번에는 숫자로 된 산입니다. 굉장히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숫자로 이전 학자와 주장들이 얼마나 허무맹랑한지를 면밀히 밝히는데... 문제는 저희가 모두 숫자문맹(?)인지 감각이 전혀 없어서 그 과정에 오롯이 공감할 수 없었습니다. 그저 결과만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지요. 그래도 어쨌든 다들 끝까지 읽어 오신 듯합니다.

단비샘의 발제로 토론을 진행했는데요. 제목을 정치+권력이 되기까지로 뽑아주셨는데 정말 잘 뽑은 제목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두들 정치와 권력이 함께 간다는 것에 의문을 품어본 적조차 없었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그것에 의문을 품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추장이라는 존재는 이런 의문을 전개시키는데 아주 큰 키워드이자 방향키가 되어줍니다. 잘못된 시각으로 보았을 때, 추장이란 곧 원시사회라는 덜 발달한(?) 정치 시스템에서의 미개한 권력자로 생각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클라스트르의 면밀한 시선으로 보면, 아주 아주 다른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기본적으로 평화로운 성격을 지니고 있었고 그 기능은 평화로움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아메리카 인디언의 경우 추장들 중에서 누구도 권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한다.(P15) ... 인디언 추장제의 두 번째 특징인 관대함은 의무 이상의 것이며 오히려 추장을 속박하는 성격을 지닌다. 물건에 연연하지 않고 사람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주는 것이 추장의 역할이다. - 박단비,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발제문 중 발췌

사람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주는 것이 역할이라니!! 추장에게 평화와 관대함은 권유도 의무도 아닙니다! 그들의 존재 이유 그 자체인 듯합니다. 소위 우리가 아는 권력자란 발달된 정치 시스템의 우월하고 세련된 존재, 그러니까 더 많이 소유하고 더 많은 힘을 휘두르며 약자들을 착취하는 갑()입니다. 하지만 추장은 아주 달랐습니다. 어째 갑은 갑인데, 을한테 좀 당하고 사는 허울 좋은 갑의 느낌이랄까요?

그들은 이야기꾼이며, 물 샌 바가지마냥 나누고 또 나눕니다. 특히 힘들 때 그들은 진가를 발휘합니다. 사람들이 전적으로 그들에게 의존하게 됩니다. (이 부분은 조금 예시가 더 있었으면 합니다.) 물론 여성이라는 가치물(?)을 좀 더 누릴 수 있기도 하지만 이마저도 권력이 모이지 않도록하는 그들만의 정치 또는 윤리의 한 일환으로 느껴졌습니다.

권력이 만들어지지 않도록 빈 구멍이 되어주는, 물을 맑게 유지할 수 있게 계속해서 돌아가는 장치에 가까운 느낌이었습니다. 추장이 있던 사회에게 이것은 아주 중요해보입니다. 고인 물이 되지 않는 것! 그러기 위해서 중요한 것이 입니다. 언제나 이야기로 넘쳐나려면 추장은 공부도 많이 하고 아는 것도 많아야할 것 같다는 이야기도 나왔지요.

세실샘은 이렇게 권력자에 대한 상이 바뀌니, 저항이나 대항에 대한 편견도 새삼스럽게 다시 보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제목부터 등장하는 대항은 추장을 닮아서 관대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전투적이고 격렬한, 뭔가 나를 아프게 하는 갑()이나 시스템과 맞서 싸운다! 이런 기존 이미지와 맞지 않을 것 같다는 이야기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가 무엇이지, 국가에 대항하는 것이 왜 필요한지도 조금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았습니다. 책을 더 읽으면 알 수 있을까요?

추장의 말에 굉장히 힘이 실려 있었다는 이야기와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가 무엇일까 같은 이야기가 섞이면서, 언어에 담긴 대항의 힘 또는 언어에 담긴 속박의 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추장의 언어가 관대함이나 타협점을 찾아가기에 권력에 대항하는 힘이 있다면, 우리가 쓰는 언어는 반대로 권력을 유지시키고 있는 건 아닐까요?

앞서 말한 권력이나 대항과 같은 언어에 강하게 새겨진 이미지들이 우리가 다른 길을 찾는 것에 대해서 막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그 대항의 가장 큰 적이 우리 안의 나태함과 게으름이 아닐까하는 이야기로 흘러갔습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익히거나, 하던 것에 의문을 가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것이 옳고 더 낫다고 느껴지더라도 말입니다.

기존에 쓰던 단어들 하나하나에 유의하면서 말을 하는 것은 왠지 쓸데없이 걸려 넘어지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느려진 것 같고 지나치게 유난 떨고 예민하게 사는 거 같고 좀 쉽게 살고 싶은 마음이 솔직하게 불쑥 치솟습니다. 예를 들어, “결정장애라는 말에 묻어있는 장애인에 대한 무심함과 깔보는 마음을 스스로 깨닫는 것은 그닥 유쾌하지 않습니다. 누구나 좋은 사람이라고 느끼면서 살고 싶으니까요. 하지만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생각합니다. 단어 하나하나를 통해서 아주 평범하고 권력과는 거리가 먼 우리가 권력의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는 경고. 이 경고가 조금은 버겁게 느껴지는 것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부터 틈새를 만드는 것을 시작할 수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부족과 지명 덕분에 웃음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투카노 부족, 오리노코강 등등의 단어를 보고 새삼 놀란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물고기를 키우는 용제샘입니다, 물고기들의 이름에 들어있던 지명을 발견하고 예상치 못한 반가움을 느꼈다고 합니다. 다 같이 물고기와 지도를 찾아보면서 클라스트르가 의도하지 않았을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결론, 모두들 추장에 대한 묘한 매력을 느끼면서 앞으로의 책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토론을 마쳤습니다.


--발제 : 박단비--

정치+권력이 되기까지

권력은 언제부터 정치에서 없엘 수 없는 개념이 되었을까? 도입에서 저자는 정치공간에서의 권력의 근원에 대해 정치인류학적으로 찾아가보고자 정치권력의 문제를 다룬 라피에르의 <정치권력의 기초에 관한 시론>을 인용하며 이야기를 이끌어나간다. 꽤 흥미로웠던 몇 부분들을 요약해 보았다. 


정치권력의 문제를 다룬 이 책에서 라피에르는, 매우 정당하게, 우선 정치권력이라는 인간적 현상이 생명의 필요에 부응하는 것인지, (생략) 다시 말해서 권력 탄생의 원천과 그 존재 이유가 문화가 아닌 자연에 있는 것인가? 검토 결과는 이렇다.


동물 세계에서는 어떤 형태의 정치권력도 심지어 맹아적인 것도 찾아볼 수 없다(p11)


이러한 결과로 라피에르는 인간 사회에서의 정치권력의 ‘고대적’형태들에 대해 고찰하기 시작한다. 이 고찰에서 고대적 사회들에 관해 공통적으로 무문자와 생계경제라고 하는 몇가지 편견이 발견된다. 이 부분을 읽고 고대 사회라는 말을 들었을 때 떠오르는 이미지를 생각해보았다. 건축 기술이 없어 안전한 동굴을 찾아 자고, 먹을 것은 단지 채집과 사냥으로 구할 수 있으며, 언어가 발달되지 않아 몸짓을 위주로 의사소통을 하는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 전에 고대 사회도 ‘사회’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 


저자는 원시 사회를 미개하게 바라보는 생각들은 서구의 근대적인 이데올로기의 영역에 속하며 잘못된 견해라고 단언한다. (사실상 생계경제라는 관념은 서구의 근대적인 이데올로기의 영역에 속하는 겻으로 결코 과학적 개념 도구가 아니다. p17~18

무문자 사회가 문자 사회보다 덜 성숙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p27)


또한 인류학적 연구를 끊임없이 가로막는 자민족 중심주의와 진화주의에 대해 날선 비판을 하고 있다. 이 비판은 <유목민의 눈으로 본 세계사>를 읽으며 느꼈던 감정들(편견을 갖고 있는 것을 알지 못하고 그것을 사실이라고 생각하는 무지한 현대인으로써의 부끄러움)을 다시 느끼게 한다.   


인디언 추장제에서 탐구하는 ‘권력’

얼마 지나지 않은 역사에서, 혹은 매일 보는 미디어에서도 우리는 폭력적인 권력이 낮설지 않은 사회에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강제나 폭력 없이도 권력을 말할 수 있을까?

“권력은 명령-복종이라는 전형적인 사회관계속에서 실현된다” 라는 라피에르의 진술에서는 이러한 본질적 관계가 발견되지 않는 사회들은 권력 없는 사회들이라는 결론을 바로 얻을 수 있다. (생략) 전통주의적 견해가 권력의 본질과 실체는 폭력으로 구성되며 폭력이라는 술어 없이는 권력을 생각할 수 없다는 공통된 기반으로 출발하고 있다. (생략) 그렇지만 문제의 핵심은 강제나 폭력 없이는 권력을 말할 수 없는지의 여부를 민족학이 자신의 본력-고대적 사회들의 영역-에서 확실하게 검증해야만 한다는 점이다. 

저자는 원시 사회인 인디언 추장제에서의 추장의 역할을 탐구한다. 강제가 아닌 전원 합의에 근거하는 정상적인 권력은 기본적으로 평화로운 성격을 지니고 있었고 그 기능은 “평화로움을 유지하는 것” 이었다. 아메리카 인디언의 경우 추장들 중에서 누구도 “권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한다.(p15) (생략) 추장은 형을 언도하는 재판관이라기 보다는 타협점을 찾는 중재자이다. 인디언 추장제의 두 번째 특징인 관대함은 의무 이상의 것이며 오히려 추장을 속박하는 성격을 지닌다. (생략) 물건에 연연하지 않고 사람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주는 것이 추장의 역할이다. (P41) 인디언들은 추장의 말에 높은 가치를 부여한다. 

권력이 있으면서 없는 듯한(?) 이러한 인디언 추장제의 사회에서 보는 권력의 역할이 특이하고 새롭게 다가오기도 한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편견을 가지고 살고 있을까?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가 돌고 있다는 지동설을 로마 가톨릭이 인정하기까지는 440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이 전까지는 모든 사람들이 사실이 아닌 것을 진실으로 받아들이고 생각하고, 그에 따라 행동했다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당시의 사람들은 왜 사실을 사실이라고 인정하지 않았을까?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진실을 보려고 하지 않는다면 지금도 우리가 사실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것들에 대해 쉽게 배반당할 수 있다. 이 책의 4장까지 읽으며 진실을 진실으로 볼 수 있기 위해 평소에 가지고 있던 나의 지식이나 의견이 과연 맞는 것인지 끊임없이 생각해 보고, 경험으로 인해 만들어진 틀을 끊임없이 깨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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