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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백전

[청백전 마늘쑥쑥조] 시즌5 <파시즘의 대중심리>-2 발제 (4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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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문명 작성일19-10-06 11:44 조회1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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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성욕자의 그것, 신비주의

들뢰즈의 안티오이디푸스를 읽고 나서 친구들은 말했다. “우리는 짝짓기를 하기 위해 태어났어!” 연구실을 강타한 짝짓기 열풍. 단순 남녀의 성을 떠나 우주 만물과의 접속을 열망하는 힘이 우리 안에 있다고 한다. 그렇다. 우리 안에는 성적인 결합뿐만 아니라 무엇이든 만나고 싶은 욕망이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 힘을 과연 잘 사용할 수 있을까? 아니, 이 힘에 대해 제대로 알기나 할까? 욕망의 극단적인 추구와 억압 사이에서 혼란스럽기만 하다. 라이히는 성적 쾌락이 어떻게 억압되어 왔는지, 그리고 그 힘이 어떻게 파시즘으로 나아가는지 설명한다. 우리 안에 있는 생명력 있는 힘이 어떻게 신비주의로 갈 수밖에 없었는지 알아보자.


기독교적 믿음에 닻을 내린 민족주의

지난 시간에 봤듯이 국가주의는 권위주의적 가부장제 아래의 성적 억압에서 비롯되었다. 여성이 가족제도 안에 들어가면서 여성의 성욕은 그 안에 갇히게 되고, 모성에 대한 환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성에 대한 억압! 그것은 기독교적 교리와도 일치한다. 민족사회주의자들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예수가 유태인임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를 받아들임으로써 신비주의적 세계관을 강화시킨 것이다. 그들은 예수가 신의 아들이기 때문에 유태인으로 볼 수 없다고 말한다. 덕분에 성적인 접촉 없이 잉태한 동정녀 마리아를 섬기게 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은 기독교적 신비주의라는 종교적 모티브를 유지하며 혈통, 믿음, 국가의 삼위일체를 이뤘다.


요컨대 이것은 하나의 속박을 다른 속박으로 교체한 것에 불과하다. 가학적이고 나르시스적인 민족주의가 피학적이고 국제적이며 종교적인 신비주의를 대체하게 된 것이다. 이제 신비주의는 이렇게 나아간다. (...) 출산기능은 차치하더라도 기독교는 결혼을 평생 유지될 완벽한 삶의 공동체로 바라보고, 민족사회주의자는 생물학적 인종보호제도로 결혼을 바라본다. 모두 강제적 결혼만을 말할 뿐, 성생활은 외면한다.

(파시즘의 대중심리, 빌헬름 라이히, 그린비, p.183)


이렇게 탄생한 민족주의적 신비주의는 이제 종교와 같이 신적인 것과의 합일을 통한 세상과 세상의 권력으로부터의 해방을 추구한다. 일상의 곤경은 보지 않고 오로지 세상으로부터의 해방에만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 혁명가들이 현실의 문제에 직면해있을 때, 파시스트들은 그 비참함의 진정한 원인을 보지 못한다. 인간은 단지 자신의 곤경을 참고 견뎌내야 하는, 현세에서 행복해질 수 없는 존재일 뿐이다. 그들은 단지 이 고통을 완화하기 위해 전체적인 합일만을 추구하는 것으로 달려간다.

2차 세계대전 말기에 결성된 일본의 자살특공대인 가미카제도 이러한 배경에서 나왔다. ‘절대적인 우주적 생명의 중심지를 부활시키겠다는 전체주의적인 일념 하에서 진행된 것이다. 종교적 신비주의는 가학적 잔혹성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한다.

성적 금지 때문에 충족되지 못하고, 자연스러운 충족을 향한 정해진 길을 방해받은 생장적인 열망이 그 원천이다. 그러므로 이 강렬한 열망은 한편으로는 강한 가학성의 방출을 쉽게 만들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동시에 존재하는 죄의식에 조응하여) 신비주의적인 종교 경험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같은 책, p.207)


오르가즘 VS 신비주의

이처럼 성의 금지는 합리적 생각과 감정을 차단한다. 청년의 욕구는 자연적인 오르가즘에 대한 열망과 성적이지 않은 애정으로 나뉘어 버렸다. 성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나 생물적으로는 성적 긴장 상태에 종속되어 있는 신체. 자연스러운 성적 긴장과 만족을 경험할 수 있는 능력은 온데간데없이, 계속 억제해야만 하는 긴장된 육체적 흥분상태에 놓여 고통받고 있다.


건강한 젊은이가 사랑하는 사람과 오르가즘을 경험할 때 내놓는 것과 똑같은 생명력 있는 힘과 거대한 사랑을 신비주의적 인간은 성기적 욕구가 억압된 후의 동정녀 마리아에 대한 신비주의적 숭배를 지지하는 데 사용한다. 바로 이것이 신비주의가 자신의 힘을 끌어내는 원천인 것이다. 충족되지 않은 힘이라고 해서 그 힘을 과소 평가해서는 안 된다. 그 힘이야말로 수천 년 동안 인간을 지배해 온 신비주의의 능력과, 대중들의 책임에 반하여 작용하는 억압을 잘 설명해 준다. (같은 책, p.248)


오르가즘적 경험을 통한 만족스러운 결속이나 상대방에 대한 존중을 경험하기란 힘들다. 오르가즘의 능력이 없는 경우, 신경증적인 자존심만을 행사하게 된다. 심리적인 방어력만이 영향력을 행사하고, 성기적 욕구에 대한 지겨움, 혐오만이 존재한다.

이런 욕구에 대한 방어는 자아에게 순수성완전성이라는 강제적 관념을 형성할 뿐이다. 세계 2차대전은 이미 지나갔지만, 파시즘의 흔적은 우리 안에 있다. 순수한 나, 완전한 나, 문제가 없는 나에 대한 이상은 나의 욕망과 현실을 보지 못하게 만든다. 내 삶의 혁명가가 되기 위해서는 지금 나의 현실을 직면해야 한다. 접속을 통한 오르가즘으로 나아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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