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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백전 마늘쑥쑥조] 시즌5 <파시즘의 대중심리>-1 발제 (4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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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문명 작성일19-10-06 11:28 조회1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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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 억압에서 비롯된 파시즘


파시즘은 인간을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잔혹한 참상으로 이끌었다. ‘이것이 인간인가라는 질문이 나올 정도로 휴머니즘에 대한 이상을 깨부수었다. 이것을 설명해내기 위해 많은 논의가 있었다. 파시즘의 대중심리의 저자 라이히는 성경제학을 들어서 이를 분석해냈다. 파시즘은 단지 마르크스가 말했던 계급적 차원의 논의에서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특정 인종이나 국가 또는 당에 국한된 것도 아니다. 라이히는 파시즘이 일반적이고 국제적인 평범한 인간의 성격구조가 조직화되어 정치적으로 표현된 것이라고 밝힌다. 일반적인 사람들 모두에게서 파시즘을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도대체 인간의 어떤 성격구조가 우리를 파시즘으로 이끌었을까?


소심한 인간의 탄생

통속적 맑스주의는 경제적 토대가 이데올로기를 규정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파시즘은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로 단번에 대중들을 사로잡았다. 사회의 모순을 뒤집는 혁명이라면 당연 모순점을 파악하고 근원적으로 개선하려 들었을 것이다. 이런 지점에서 파시즘은 혁명이 될 수 없다. 이데올로기가 단순히 대중들의 감정을 사로잡아 순식간에 엄청난 힘을 방출한 것이기 때문이다. 어떠한 경로로 우리는 사회적인 모순을 짚어내지 못하고 파시즘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히게 됐을까? 라이히는 이에 대한 경로로 비교적 근래에 이르러 발생한 권위주의적 가족제도를 그 원인으로 꼽는다. 권위주의적 가족제도 안에서 자라나는 어린이의 성억압이 국가의 형태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어린이의 자연스러운 성에 대한 도덕적 억압(이 억압의 마지막 단계에서 어린이의 성기적 성욕은 심각한 손상을 입는다)은 어린이를 불안하게 하고 수줍음 타게 만들며 권위를 두려워하고 복종하도록, 권위주의적인 의미에서 말 잘 듣고’, ‘길들이기 쉽도록만든다. 생동적이고 자유로운 모든 충동이 심한 두려움에 의해 점령되고, 성적인 것에 대한 생각의 금지가 일반적인 사고를 억압하고 비판까지도 무능력하게 만들기 때문에 인간의 반항하는 능력은 마미되어 버린다. 간단히 말해 성욕에 대한 도덕적 억압의 목적은 고통과 모욕에도 불구하고 권위주의적인 질서에 적응하고 그것을 참아내는 말 잘 듣는 노예 같은 인간을 만드는데 있다. (파시즘의 대중심리, 빌헬름 라이히, 그린비, p.67)

인간이 권위주의에 구조화될수록 충동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게 되는 것이다. ‘파시스트의 심리상태는 권위를 갈망하는 동시에 반역적인, 노예상태에 있는 소심한 인간의 심리상태와 동일하다.’ 성을 억압받은 사람들의 성욕은 이제 다양한 종류의 대체만족을 찾기 시작한다. 제복, 리드미컬한 군대식 걸음걸이, 군국주의적 의식 등은 이런 성적 관심을 이용했다. 전쟁 모병 포스터에 나와있는 외국은 여자로 대체되어 성에 대한 굶주림을 이용해 젊은이들의 시선을 끌었다. 파시즘은 실제적인 논쟁은 회피하면서 개개인의 감정을 조작하는 식으로 이루어졌다.


고향과 어머니에 대한 환상

권위주의적 가족관계 안에서 어머니의 모성은 미화된다. 어머니와의 유대는 가족적 유대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히틀러 또한 아버지의 권위에 대한 반항과 복종 안에서 살았다. 그가 딱 한번 울었을 때가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라고 한다. 성에 대한 억압과 모성에 대한 환상이 그가 경험한 것이었다.

어머니에 대한 아이의 (또한 아이에 대한 어머니의) 원초적인 생물학적 연결이 성적인 현실을 가로막고, 풀리지 않는 성적 고착과 불능을 발전시키고, 다른 관계를 맺지 못하도록 만든다는 점이다. 고향과 민족이라는 관념은 주관적-정서적 핵심에서 어머니와 가족에 대한 관념인 것이다. (같은 책, p.101)

가족주의에 대한 비판을 들었을 때에도 오이디푸스 삼각형 안에 머물게 된다는 정도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 인용문을 보자 모성과 가족이 개인을 다른 관계를 맺지 못하도록 만들기 위해 발생한 것이라는 게 다가왔다. 겉보기에는 매우 인자해 보이는 모성이 이토록 잔인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니!

권위주의적 가족제도 안에서 여성은 모성에 대해 요구받음으로써 성적 존재가 아니라 단지 아이를 낳는 사람이 된다. 모성이 이상화되고 신성화될수록 여성의 성의식은 억압받기 때문이다. ‘어머니창녀로 구분되는 여성의 생식과 성적 쾌락의 대립. 이 사이에서 여성의 성은 어떻게 나아갈 수 있을까. 가족 바깥으로 흐를 수 없는, 도덕적인 틀 안에 갇혀버리게 된 성은 이제 그 자연스러운 힘을 잃어버렸다. 라이히는 말한다. ‘성적 존재로서 인정되고 존중받는 여성은 권위주의적 이데올로기의 완전한 붕괴를 의미할 수 있다. 이런 여성의 성을 깨부술 수 있는 다른 성욕의 탄생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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