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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백전 인절미] 시즌4 <가치이론에 대한 인류학적 접근>2 후기(39/100)

게시물 정보

작성자 이달팽 작성일19-09-01 23:18 조회3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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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8. 28. 청백전 시즌4 / 9주차

<가치이론에 대한 인류학적 접근> (2/3)

참여자(7): 김다솜, 김지혜, 문보경, 서다윤, 이윤하, 이용제, 현정희

(세실샘은 졸업식, 서형샘은 가족여행으로 불참했습니다)



<가치이론에 대한 인류학적 접근> 두 번째 시간이었습니다.

이번주에는 앞부분보다 좀 더 어려운 내용이어서, 이 이야기가 어디와 연결되는 건가.. 하는

의문이 세미나 시간에 많이 등장했습니다ㅋㅋ

발제는 용제샘이 맡아주셨는데요, 처음 발제를 해보시더니 너무 힘들었다고..ㅎㅎ

용제샘은 그동안 자본주의에서 말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마음에 들었는데,

이 세미나에서 읽는 책들에서 자꾸 아닌 점을 이야기하니까 의문을 품게 되셨다고 했어요.

그리고 지금 자신이 해결하지 못하고 걸려있는 문제가, 자본주의에서 나온 것 같다고도 하셨지요.

그러면서 자본주의 안에서 어떻게 숨을 좀 쉴 수 있을까, 앞으로 찾아가보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자본주의에 대해서, 아마 다들 이 세미나의 시작 전보다 좀더 잘 알게 되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자본의 흐름이라던가, 생리라던가, 그런 거대한 원리를 알게 되었다기 보다는

우리 안의 자본주의적인 욕망이 어떤 것인지, 그것을 채우려고 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고,

그것 없이 살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이런 것들에 대해서 좀더 생각해보게 된 것 같습니다.


<가치이론에 대한 인류학적 접근>은 모스와 맑스를 연결하면서, 경제주의의 냉소에서 벗어나려는 비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냉소라 함은 어차피- 인간은 자신의 최대 이익을 위해서 행동하는 존재다.. 뭐 이런 종류의 냉소입니다.

증여를 하더라도 그것은 결국 자신에게 돌아올 이익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교환과 다를 바가 없다. 순수한 증여라고 할 수 없다.

이런 논리이죠. (이걸 벗어나기 쉽지 않습니다.)

저자인 그레이버는 개인적 이익과, 아무런 사익 없는 증여를 구별하는 감각자체가 근대적인 감각이라고 하면서 새로운 길을 내겠다는 포부를 드러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제 마지막 3분의 1을 읽으면 그레이버가 무엇을 말할 것인지가 나올 것 같은데 3분의 2지점까지는

그것을 위한 판을 깐 느낌이랄까요.. 물론 그 판을 펼치는 것이 너무 매력적이고 멋져서! 이 책에 벌써 반했지만요)

저희가 자본주의 욕망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합니다.

우리 자신을 경제주의적 인간으로만 정의하지 않을 때, 할 수 있는 것들이 생길 테니까요.


그런 면에서 많은 인류학적 사례들은 다른 인간이 가능하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줍니다.

그중 세미나에서 샘들이 가장 흥미로워했던 것은 꿈 축제인데요.

꿈을 어떤 욕망이라고 보고, 개인이 꾼 꿈=욕망을 공동체에서 함께 해소시켜주는 방식입니다.

밭을 얻는 꿈을 꾸었으면 작은 밭을 선물 받는 등으로요.

또 왐펌 선물은 부족들 간의 대화와 소통을 위한 것이었다는 이야기도 재밌었습니다.

가시적이고 물질적인 것으로 비가시적인 마음을 전달하는 것이지요.

자본주의가 아닌 사회에서는 여러 층위, 여러 형태의 물질적 관계들이 존재했던 것 같습니다.

이것을 ‘경제적 이익’의 관점에서 포획할 수 없다면, 이것을 행하게 하는 마음들!은 어떤 걸까요?

남은 한 주, 세미나에서 이야기해보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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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28./청백전 시즌 4/“가치이론에 대한 인류학적 접근”2 발제/이용제


 나는 지금 살아가고 있는 이 자본주의 사회를 가장 발전된 사회, 그러니까 과거부터 지금까지 있어왔던 사회중에서 가장 완벽에 가까운 사회라고 생각해왔다. 신분에 따른 차별이 없으며,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고, 화폐라는 공통적인 가치속에 모두가 평등한(또는 그렇게 추구하는) 사회를 가장 이상적이고 완벽하다고 생각해왔다. 그래서일까? 청백전을 시작하고 책을 읽으며 문자로 되어있는 역사박물관을 보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저 내가 살고 있는 세상과는 전혀 다른, 깊게 이해하기 어려운 동떨어진 사회라고 생각했다.


 그랬던 나에게 책에서 설명한 이로쿼이 어족의 꿈의 축제 이야기는 새로운 충격이었다. 개인보다 사회에서의 역할, 그리고 ‘함께’라는 공동체적인 생각이 강해보이는 이들에게 개인의 욕망까지 사회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제도가 있다니! 개인에게 집중된 자본주의보다 공동체와 개인 모두를 보살피는 더욱 이상적인 사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수교 선교사들은 또한 대부분의 이로쿼이 어족사람들이 가능한 한 이런 종류의 ”영적소망“을 들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을 이웃과 친척들의 의무로 간주하고 있었다고 기록한다. 그것이 중요한 사람의 꿈인 경우 그것의 의미를 밝히고 그 실현 방법을 논의하기 위해 즉시 모임이 소집되기도 했다. 명백하게 실현 불가능한 소망인 경우에는 상징적 방식으로 이를 해소할 수도  있었다. 예를 들면 다른 사람의 밭을 얻는 꿈을 꾼 여성이 상징적으로 몇 고랑의 밭을 선물 받음으로써 욕망을 충족시키는가 하면, 죽도록 고문을 당하는 꿈을 꾼 남성은 가볍게 상징적인 화상을 입음으로써 원래 꿈의 내용을 대신하는 식이었다. (p.301)


이렇게 조금씩 더 났다고 생각하는 방향을 찾아가다 보면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좀더 건강한(?) 나를 만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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