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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백전 인절미] 시즌4 <가치이론에 대한 인류학적 접근>1 후기(38/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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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용제 작성일19-08-26 00:10 조회4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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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8.21 청백전 시즌4 / 8주차

참여자(9): 김지혜, 문보경, 이윤하, 최세실리아, 현정희, 김다솜, 서다윤, 이용제, 장서형

1

가치라는 단어의 3개의 구분(사회학적,경제학적,언어학적)을 살펴보며, “가치에 대한 정리를 담으려 했던 사례들을 살펴보았습니다.

2

좀 더 많은 가치이론들을 살펴보다 반가운 글을 보았습니다. 앞서 읽었던 마르셀 모스의 증여론에서 나왔던 선물경제(증여사회)에 대한 글인데, 이 글과 함께 부르디외의 이론이 함께 나왔습니다. 부르디외는 현대와 동떨어진것처럼 보이는 증여사회의 선물경제를 현대의 기준(또는 그와 비슷한?) 관점으로 설명하였는데, 이해하기 어렵던 선물경제를 조금더 와닿게 해준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3

사물은 모두 변화하는 흐름이라고 주장하는 헤라클레이토스와, 사물은 그 자체로 변화가 없이 고정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파르메니데스의 대립을 시작으로 우리에게는 익숙치 않은 헤라클레이토스적 가치이론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청백전 인절미조 / “가치이론에 대한 인류학적 접근”-1 발제 / 2019.08.21. / 장서형

자본주의 밖에서 어떻게 살 수 있을까?

인문학공부? 자본주의 밖에서 사는 것? 너무 이상적인 게 아닐까?

최근 강학원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 나도 이렇게 청년백수로 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 때쯤 오랫동안 공부했던 추쌤이 갑자기 떠났고(청스샘들에게는 갑자기가 아니었던 것도 같다) 베어에 언제나 머물 것 같았던 연주언니도 홀연히 사라져버렸다. 여기가 자본밖에서 살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혹은 진리)처럼 느껴지던 때에 다들 떠나가니 나도 갈대처럼 마음이 흔들려 다시 불안해졌다. 그리고 최근 사주명리 수업을 시작하면서 장금쌤 강의를 듣고 공부와 우정을 진하게(?) 만나고 배우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그러면서 다시 불안함도 잠잠해졌다. 그런데 웃기지만 문득 장금쌤이 우리(청년)들에게 이 길이 옳은 길이라고, 청년들이 더 떠나가지 못하게 강력하게 주입하고 계신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런 주장들 일체는 대부분의 평범한 일상인들이 철학적 논쟁을 의미 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철학의 논리가 평범한 일상적 경험의 논리와 완전히 모순되고 있는 것이다.(“가치이론에 대한 인류학적 접근”, 데이비드 그레이버, 그린비, p.132)

우리가 흔히 배워온 서구 철학은 파르메니데스적 관점인데 이는 대상이 변화한다는 생각이 환상이고 인간은 결코 완전하게 인지할 수 없지만 사물들이 완벽하고 변화 없는 상태로 존재하는 시재의 층위가 존재한다는 관점이다.

파르메니데스적 전통은 피타고라스와 플라톤에게서 가장 직접적으로 나타나며 이들을 계승한 서구의 거의 모든 철학학파에서도 공통적인 특징으로 나타난다.(같은책. p129)

영화 캡틴 판타스틱을 보면, 자본주의와 기존권력체제에 반대하는 아버지가 아이들을 사회와 단절시킨 채 숲속에서 육체적으로도 정식적으로도 완벽하도록 직접 교육시킨다. 하지만 같이 고립돼 살던 엄마는 우울증에 걸리고 결국 자살을 한다. 엄마의 유언대로 시신을 매장이 아닌 화장을 하기위해 처음으로 세상 밖으로 나온 아이들은 숲에서 배운 완벽할 것 같았던 것들이 완벽하지 않음을 깨닫는다. 이에 아버지는 충격을 받고 결국엔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면서 영화는 마무리된다. ‘우와하고 시작해서 끝내 철학에 대한 고정관념으로 허무하게 결말지어져버린 이 영화를 보면서 이게 무슨...?’하는 찝찝함을 갇고 있던 때에 책에서 파르메니데스와 헤라클레이토스적 관점에 대해 읽으면서 깨달았다.

나를 포함해 우리가 흔히 하는 철학에 대한 고정관념으로 이상과 현실을 분리시켜 철학을 탁상공론의 배부른 자들이 하는 무언가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강학원은 이미 자본주의 밖에서 사는 실현가능한 지점들을 보여주고 있는데도 내가 불안해했던 건 어쩌면 이런 고정관념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또 여전히 이분법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의 사고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어떻게?

청백전 이번 시즌을 시작하면서 함께했던 이 질문은 마지막 책을 읽을 때까지도 아리송했다. 이 어렵고 난해한 책들을 읽으면서 (제대로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좋아 보이기도 하고 한편으론 지금 이 곳에서 적용 가능한 걸까라는 의문도 들었다. 하지만 강학원에서 공부하는 동안 만난 청년백수들을 통해 그리고 남산강학원과 감이당이라는 곳을 통해 알게 모르게 어렴풋이 느껴지고 있는 무언가와 구체적인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사실 제대로 살펴보면 의외로 꽤 다양한 사람들이 자본주의 밖에서 자신들의 신념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자본과 그 밖이라는 구분된 선은 존재하지 않는다. 빈 틈이 곳곳에 존재하고 그 경계에서 자신들만의 지점을 형성해가고 있는 이들은 분명 맑스가 말한 상상력을 발휘해 사는 사람들일 것이다.

궁극적인 자유는 가치를 창조하거나 축적할 자유가 아니라 (집단적으로든 개인적으로든) 삶을 살 만한 가치가 있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를 결정할 수 있는 자유이다. (...) 비록 실재는 그 정의상 언제나 우리가 설명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복잡하다는 사실로 인하며 그 어떤 상상적 총체성도 그대로 현실에 실현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말이다.(같은책, p.202)

우리가 진지하게 눈앞에 제시된 현재의 자유를 의심하고 그 대안을 생각하기 시작한다면, 현재의 문제들이 모두 스스로 그 해결책을 찾으리라는 근거 없는 낙관 대신 우리는 좀더 역동적이면서도, 희망컨대, 좀 덜 강제적인 그런 종류의 구속 기제란 과연 어떤 것일지를 상상하기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같은책, p.205)

모스의 증여론을 읽으며 선물경제가 자본주의에서 실행된다면 결국 소비의 형태로 실천될 수밖에 없는 것이란 의문이 들었다. 받은 것보다 더 크게 답례하고자 할 때, 소비말고는 떠오르지 않는 이 미천한 상상력이여. 책을 좀 더 읽다보면 어떻게 상상할 수 있을지, 그 가능성의 지점들이 좀 더 분명해지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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