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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백전

[청백전 마늘쑥쑥조] 시즌4 <관계에 대하여>2 발제 (37/100)

게시물 정보

작성자 자연자연 작성일19-08-19 22:22 조회3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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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으로 돌파하는 관계

 

쪼그라든 우리의 관계

크리슈나무르티는 폐부를 찌르며 질문을 던진다. 너네가 정말 관계를 맺고 있기는 하냐고 말이다. 우리의 삶은 관계로 이루어져 있고, 그래서 관계없이 우리는 존재할 수 없다. 사실 이런 걸 절감하고 있지는 못하는 듯하다. 그러니 이렇게 사는 거 아닐까? 허허 정화스님은 세포들도 이웃들과 손을 잡고 있다고 말씀하신다. 세포들도 관계를 어떻게 맺느냐에 따라 그 특성이 달라진다고. 하물며 사람은 어떻겠는가. 그래서 우리는 물어야 한다. 누구와 어떻게 손을 잡을 것인가를.

크리슈나무르티는 우리가 관계를 단순한 감각적인 반응으로 축소시켜버렸다고 한다.

 

우리의 관계란 단순히 감각적인 관계, 성적인 관계이며, 서로간의 관계는 우리가 서로에 대해 만들어놓은 이미지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알아차리고 계신가요?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관계에 대하여, 고요아침, 251)

 

우리는 관계를 맺으려면, 아니 존재하려면, 서로에 대한 이미지를 벗어던져야 한다. 매번 새롭게 관계 맺고 있는 상대를 만나야한다. 말이 쉽지, 익숙한 주변 사람들을 대할 때, 이미지를 지우기란 쉽지 않다.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온전한 관찰은 지성이 된다

관계를 잘 맺으려면 관찰을 해야 한다. 관찰은 완전한 주의집중완전한 반응이다. 우리는 사람에 대한 이미지를 만들고, 그것을 통해 사람을 만나다. 처음 만났을 때의 궁금증과 호기심은 기억들로 채워지고, 어느 순간 익숙함 혹은 귀차니즘으로 알고 있는 그 사람을 만난다. 정말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자연스러운 이 지점에서 시도를 해야 한다. 완전히 집중하고, 반응을 하려고, 그리고 이건 훈련의 영역이라고 그는 말한다. 생각을 멈추고, 관찰할 때. 그때 우리의 머릿속은 비어있게 되고, ‘란 이미지도 없게 된다. 이제야 비로소 완전(?)하게, 아니 어느 정도나마 집중하고, 온전히 반응하게 된다. 재밌는 지점은 이 지점에서 지성이 나온다고 하는 것이다.

 

생각이 멈출 때, 무엇이 있습니까? 망상도 없고, 이미지도 없고, ‘도 없습니다. 그러면 상처도 없으며, 그러면 거기에서 올바른 행동이, 즉 지성이 나옵니다. 지성은 말합니다, 이것이 올바른 행동이라고. 이것을 이해하시겠습니까? 지성이 그렇게 말하는게 아니라, 지성이 올바른 행동 입니다.’ (같은 책, 190)

 

그러니 제발 여러분 혼자 힘으로 그것을 조사하고 자신에게 그 질문을 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이 지성이 무엇인지 알고 계십니까? 그건 있는 그대로의 것의 실체를 통찰함으로써 얻어진 것이며, 그걸 관찰하는 것이 지혜이고 그걸 지각하는 것이 진리입니다. 진리의 딸이 지혜이고, 지혜의 딸이 지성입니다. (같은 책, 161)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는 것, 이것을 통찰함으로써 지성은 탄생한다. 지금 나의 모습에서 있는 그대로를 보고, 그 안에서 어떤 것을 길어 올리는 것. 나는 너무도 쉽게 그저 말 그대로 있는 그대로를 보는 것으로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중요한건 통찰이다. 그것이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보편적이 가치이든,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사적인 인과든 말이다.


관찰은 자유를 향한 발걸음이다

완전한 주의집중과 관찰을 통해 지성에 한 발짝 다가갔다고 하자. 그런데 어리석은 우리는 이것을 또 이미지화 시키고, 나의 산물로 여기고 간직한다. 하지만 크리슈나무르티는 잘 썼으면 던져버리라고 한다. 연사의 이야기도 그저 자기 자신을 비춰보는 거울로 이용하고, 자신을 보는 법을 익히고 깨버리라고 한다. ‘연사에게서 자유로워지기 위하여. 부처님의 뗏목의 비유가 생각나는 부분이었다. 강을 건널 때, 잘 이용하고 육지의 길로 나설 때는 버리고 가는 뗏목처럼 두고 가라고.

그는 이러한 과정이 과거의 짐을 짊어지지 않는 것이고, 젊은 마음을 가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어떠한 이미지도 가지지 않고, ~쓰고 제 때 버리고 떠나는 것. 이것이 배움이고, 또한 무지의 자유이다. 어떠한 앎에도 머무르지 않으니 말이다.

 

관계 안에서 마음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기능을 통해서 사회적 지위를 얻으려고 하면 그 때문에 관계 안에 갈등이 생긴다는 것을, 그리고 여러분과 다른 사람 사이에 구분이 있다면, 여러분의 남편, , 아들, 혹은 그게 누구든 간에 그 사람에 대한 지식이 구분으로서 작용하면서 갈등이 있다는 것을 관찰해야 합니다. 따라서 지식의 기능과 지식의 필요성을 아는 것, 관계 안에서의 지식의 위험성과 독성을 아는 것은 마음이 자유로울 때, 아니 그보다는 알아차릴 때뿐입니다. (같은 책, 161)

 

우리는 계속 모를 때, 계속 알려고 할 때 자유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 지성이 그 길에 힘이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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