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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백전

[청백전 인절미] 시즌4 <증여론>2 발제 (37/100)

게시물 정보

작성자 김다솜 작성일19-08-19 16:37 조회3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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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8. 14. 청백전 시즌4 / 7주차

 

<증여론> (2/2)

 

참여자(9): 김지혜, 문보경, 이윤하, 최세실리아, 현정희, 김다솜, 서다윤, 이용제, 장서형


2019814/ 청백전 수요반 인절미/ 증여론(2)/ 김지혜


나누지 않을 수 없다

 

 맛있는 음식을 혼자 먹으면? 여전히 맛있다. 하지만 재미가 없다. 친구들과 같이 먹고 맛있다고 호들갑을 떨어야 더 맛있고도 재미있다. 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취향이라고 생각했다.

 

나누어지는 것이 음식물의 성질이며,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주지 않는 것은 음식물의 본질을 죽이는 것이다. 또한 그것은 자신에게서나 다른 사람들에게서나 음식물을 파괴하는 것이다.”- 마르셀 모스, 증여론, 226

 

 그런데 증여론에서는 나누어지는 것이 음식물의 본질이라고 말한다. , 나는 그냥 친구들과 먹는 것 두 가지를 좋아했던 걸까? 아니면 증여론에서 말했듯이, 교환체계에서는 흉내도 낼 수 없는 활기가 일어나는 순간을 본능적으로 알았던 걸까? (그것도 아니면 내가 음식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그 본질에 가서 닿아버린 걸까?)

모스는 주고받는 것, 증여에 대해서 말한다. 모스가 말하는 주는 것과 받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의 위험은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는 일상에서 왜 주고 받아야 하고, 어떻게 주고 받을 수 있을까? (음식으로 좁혀서 질문하자면 어떻게 더 맛있고 재미있게 먹을 수 있을까?)

 

주고 받기, 귀족적 즐거움

 추장들은 귀족적인 주고 받기, 특히 귀족적 지출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경제적으로 계산하지 않고, 명예를 위해서 자신의 부를 나눴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명예는 커녕 손해 볼까 두려워한다. 호구가 될까봐서 이미 귀족이 되는 것은 접고 시작한다. 그런 현대인들이 꿈꿀 수 있는 건 기껏해야 돈 많은 졸부정도? 그것도 운이 좋아야 가능하고 보통은 빼앗길까 부당한 일을 당할까 두려워하기만 하는 임금노동자일 뿐이다. 너무 당연하게 그렇게 스스로가 귀족일 수 없다고 여긴다.

 귀족은 영혼과 개성이 있는 물건을 기꺼이 받는다. 받은 것을 재생산할 자신 또는 더 가치 있는 선물로 답례할 자신이 있다. 하지만 현대인은 자신이 없다. 재생산을 할 자신이 없어서 받기를 꺼린다. 답례할 자신이 없어서 더치페이를 일삼는다. 결핍감은 쌓여가고 자신감은 더욱 떨어지니 후한 인심은 더더욱 낼 수 없어진다.

 

그는 재산을 소비하고 분배하여 다른 사람들의 자존심을 꺾고 그의 명성의 그림자로 덮어버릴 때에만 그 재산을 증명할 수 있다. ... 포틀래치를 주지 않은 신화상의 대()추장 가운데 한 사람에 대해서는 썩은 얼굴을 가졌다고 말한다. ... 왜냐하면 북서부 아메리카에서 위세를 잃어버리는 것은 바로 영혼을 잃어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영혼이란 진실로 얼굴이자 춤의 가면, 즉 정령을 구현하고 문장이나 토템을 지닐 권리이며, 아울러 이처럼 걸려있는 인격(persona)이다. ... 이들 사회 어디에서나 사람들은 주려고 안달이다.” - 마르셀 모스, 증여론, 151~153

 

 명예는 돈을 축적해서 또는 유능해지고 유명해진 사람들의 것이라고 여겨진다. 자신의 능력치를 키우고 싶어 하는 것은 젊은이들뿐 아니라 모든 인간이 바라는 바다. 하지만 나누는 능력을 키우고 싶어 하는 사람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주려고 안달이 난 사회와 대조적으로 현대 사회는 주지도 받지도 않으려고 안달이 났다. 주기 전에 열심히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를 따진다. 관계와 재생산을 두려워하고 영혼 또는 인격에 무관심한 현대인은 증여 사회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쪽팔리는라이프 스타일을 추구하는, 얼굴 없는 놈놈놈들이다.

 

주는 것과 받는 것, 어느 게 더 좋아?

 하지만 바로 주고받는 것을 시작하며 살기란 쉽지 않다. 증여 사회의 사람들에게도 주고받기는 섬세함이 필요한 것이었다. 주고받기를 잘하지 못하면 지위를 잃어버릴 위험이 있었다. 또 주고받기가 일어나는 축제는 순식간에 전쟁으로 흘러가버리는 불안정한 순간이기도 했다. 위험하고 섬세한 이 주고 받기를 하고 싶은 마음은 어디서 오는 걸까?

 

준다는 것은 자기의 우월성, 즉 자기가 더 위대하고 더 높으며 주인(magister)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답례하지 않거나 더 많이 답례하지 않으면서 받는다는 것은 종속되는 것이고, 손님 또는 하인이 되는 것이며, 작아지는 것이고 더 낮은 지위(minister)로 떨어지는 것이다.” - 마르셀 모스, 증여론, 268

 

 받는 것이 종속이고 주는 것이 우월해지는 거라고? 정말 다른 감각이다. 사람들은 받는 것은 더 선호하는 것 같다. 일단 편하고 받을 때 그만큼 가치있는 사람이라고 느낀다. 그래서 역으로 부모에게 세상에게 못 받은 것을 곱씹으며 결핍감에 빠져있기도 한다. 모두가 받기를 원한다. 금수저처럼 많이 받으며 태어나기를 원한다. 유산이나 복권당첨처럼 대가를 치루지 않고 무언가를 얻는 것을 운이 좋다면서 부러워한다. 더 많이 쓸 수 있어지기 때문이다. 대가 없이 많은 움켜쥐고 있는 것, 뭔가 든든한 이 느낌!

 이 든든한 느낌은 얼핏 뭐든 할 수 있는 느낌으로 오기도 한다. 자본사회에서는 말이다. 돈이 없어서 옴짝달싹못하는 느낌보다는 좋은 느낌으로 감각된다. 하지만 그것은 진짜 활력은 아니다. 쓰는 것과 주는 것은 다르다. “탐욕은 차례차례로 영원히 재생하는 법, 공덕(功德), 음식물의 순환을 차단한다.”라고 모스는 말한다. 쓰는 것에는 재생과 순환이 없다.

증여사회 사람이 유산을 받으면 어떻게 반응할까? 대번 나는 너무 많은 재산을 갖고 있다. 포틀래치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155)라고 할 것이다. 그들은 재생과 순환의 감각을 한다. 그런 그들의 관점에서 보면 받기만 하고 주지 않는 것처럼 위험하고 불행한 일도 없다. 심지어 자선을 받는 것을 마음의 상처(250)을 받는 모욕이라고 본다. 그것은 지배당하는 길이며, 줄 능력이 없는 하위 지위로 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린 오해하고 있다. 받는 것보다 주는 게 좋은 것을! 버스정류장보다 운동장이 재미있는 것처럼, 기다리고 지배받는 것보다 주고 받는 게 더 재미있다.

 주고 받으며 재생하고, 그 활기를 감각한다는 것이 관념적으로 들릴지 모르겠다. “네가 받는 만큼 주어라. 그러면 모든 일이 매우 잘될 것이다.” (260) 같은 말도 애매해서 도움이 안 되는 것처럼 느낀다. 나는 아주 작은 일에서 찾고 있다. 같이 사는 친구들과는 음식을 나눠먹는다. 냉장고에 있는 음식에는 이름표 같은 건 없다. 냉장고가 차고 비워지고를 반복하면서 교환만큼 냉정하지 않은 그러나 증여라기에는 소소한 감각이 자라고 있다고 느꼈다. 그런데 얼마 전, 나는 오이양파장아찌를 담궜다. 같이 사는 친구가 늦은 점심을 나의 장아찌를 반찬 삼아 먹는 모습을 보는 데 어찌나 뿌듯하던지. 아마도 내가 만든 음식을 나누어서 더 뿌듯했던 것 같다. 나의 얼굴이 담긴 장아찌랄까^^; 증여론에서 나는 사람이란 무엇을 줄 수 있는 지로 스스로의 개성과 얼굴을 만들어 나가는 것임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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