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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백전

[청백전 인절미] 시즌4 <증여론>2 후기 (37/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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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다솜 작성일19-08-19 16:32 조회4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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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8. 14. 청백전 시즌4 / 7주차

<증여론> (2/2)

참여자(9): 김지혜, 문보경, 이윤하, 최세실리아, 현정희, 김다솜, 서다윤, 이용제, 장서형


 발제자인 지혜쌤이 지적한 내용 중, 증여 사회에서 주지 않았을 때에 위세, 더 나아가 영혼을 잃어버릴 수 있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그 영혼이란 진실로 얼굴이자 춤의 가면, 즉 정령을 구현하고 문장이나 토템을 지닐 권리이며, 아울러 이처럼 걸려있는 인격(persona)”이라는 점도 말이다.


 이는 그들 사회에서 차례차례로 영원히 재생하는 법, 공덕, 음식물의 순환이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탐욕은 지양해야 할 것이었으며, 자선처럼 일방적으로 받기만 하는 것 역시 위세의 추락이며 모독으로 여겨졌다일상에서 누군가에게 뭔가를 줌을 통해서 일어나는 활기 역시, 증여 사회 속의 위세-영혼-얼굴와 비슷한 감각이 아닐지, 양파장아찌를 나누어주며 느꼈던 활기를 예로 들며 발제자는 설명한다. 확실히 증여 사회 속에서 선물을 주고받으며, 사람들 간의 그런 활기가 수반되었을 것 같다.


 나를 거쳐 가는 들 가운데 철저한 교환의 방식으로 거쳐 가는 것들이 있는 반면 증여와 답례의 방식으로 거쳐 가는 것들이 있다. 교환의 방식에서는 아무 감정도 관계의 풍부함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런 방식으로 물건을 주고받을 때는 세상이 재생과 순환으로 작동한다는 상상력도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양파장아찌를 누군가에게 증여 받는다면 확실히 그것이 누군가에게 온 것이며, 어떻게 만들었으며, 어떤 마음으로 만들었는가를 인지하게 되고 그로인해 관계의 풍부함, 활기가 생겨나게 되는 것 같다.


 이번 세미나 시간에서, ‘생각만큼 증여라는 것이 순수하기만 한 관념은 아닌 것 같다는 의견을 공통적으로 나누었다. 가령 고전 힌두법에서 그것을 느낄 수 있었는데, ‘마하바라타왕들에게서 받는 것은 처음에는 꿀처럼 달지만 마침내는 독이 됩니다라는 구절이 그렇다. 증여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 사이에서 확립되는 유대가 두 사람 사이에 너무나도 강력하기 때문에, 받는 사람이 증여자에게 구속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증여라는 것은 순수한 희생적 가치도 아니고, 증여에 뒤따르는 답례는 의무적이었고 어떤 사회에서는 그것을 크나큰 부담으로 여겼기에 기피하기도 했다. 실제로 증여 사회 내부에서도 증여-답례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부족의 경우도 있었고 말이다.


 모스 역시 지적하듯, 미친 듯한 증여가 행해지는 포틀래치는 결코 무사무욕한 것이 아니었다. 포틀래치의 과정에서 상당한 재화를 상대방에게 주고, 또 재화를 아예 파괴해버리기도 하기 때문에, 물질적인 이익에 연연해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무사무욕해 보일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런 행동을 통해, 부족장/부족은 사회적인 우월성이라는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현대 자본주의는 부를 최대한 많이 축적하는 방식으로 사회적 우월성을 얻으려 하는데, 증여 사회는 부를 나눔으로써 사회적 우월성을 얻으려 했다는 점에서 확연한 차이가 나는 것 같다.


이익(interet)이라는 말 자체는 최근에 생겨난 것으로서, 그것은 부기용어, 즉 즉 장부에서 징수해야할 지대(地代) 맞은편에 기재한 라틴어 ‘interest’에서 유래한다. 가장 향락주의적인 고대 도덕에서도 추구되는 것은 행복과 쾌락이지 물질적인 효용이 아니다. 이득(profit)과 개인(individu)이라는 관념들이 널리 유포되고 원리의 수준으로까지 올라가려면 합리주의와 상업주의의 승리가 필요하였다 (...) 아주 최근에 인간을 경제동물로 만든 것은 우리 서양 사회이다.” (270-271)


 모스는 증여사회에서 이익을 추구하는 방식이 현대 사회의 그것만큼 냉정한 동기를 지닌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합리주의와 상업주의의 발달로 인한 물질적인 효용의 추구. 이는 과거의 증여 사회가 추구했던 가치와는 분명 다른 것 이었다. 그렇기에 증여사회에서 추구하는 가장 뛰어나고 아름고 명예로운 인간상(가장 많이 베푸는 사람), 지금과는 달랐다.


 전체성을 생각하면서 그 속에서 명예를 추구하는, 그렇기에 사회구성원이 공동의 부에서 소외되지 않는 증여체계가 지금 우리의 사회에서도 작동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내내 했었다. 하지만 애초에 그 증여사회가 추구하는 가치(행복, 쾌락)와 현대 자본주의가 추구하는 가치(물질적 효용)가 다르다는 사실로부터, 지향하는 가치의 성격이 바뀌지 않는 이상 현대 사회에서 증여체계를 작동시키란 어렵겠다란 생각이 들었다. 지향하는 가치가 바뀌려면 합리주의와 상업주의라는 지배적 이념 또한 바뀌어야 하는 것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증여 사회의 톱니바퀴는 어떻게 굴러가는 것인지, 그에 반면 자본주의의 톱니바퀴는 어떤 성질인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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