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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백전

[청백전 마늘쑥쑥조] 시즌4 <관계에 대하여>1 발제 (36/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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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쓰담쓰담 작성일19-08-13 18:36 조회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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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아픈 관계는 관계가 아니었음을

 

 

관계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가족, 연인, 친구, 직장상사 등등. 우리가 관계를 맺는 사람들은 다양하고 또 많다. 이들 각각에 대한 심정이 너무 다르기에 관계를 이것이다라고 말하기는 참 힘들다. 하지만 공부도 했겠다, 나는 관계가 공부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자신을 떠나 이질적인 타자와 관계 맺는 게 곧 공부라고, 누구나 말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아무리 관계가 어렵고 힘들다고 해도, 거기에는 타자와의 소통의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타고난 관성덕분인지 나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걸 싫어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게 좀더 편안하고 필요하다고도 생각했다. 이 얼마나 공부에 적합한 신체인가. 나는 이게 친구 사귀기를 꺼리고 혼자 방에 박혀 있는 친구들보다야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에 크리슈나무르티는 아쌀하게 말한다. “현재의 관계는 고립되어가는 과정이며, 따라서 끊임없는 갈등 아닌가요? 여러분과 다른 사람 사이의 관계, 여러분과 아내와의 관계, 여러분과 사회와의 관계는 이런 고립의 산물입니다.”(지두 크리슈나무르티, 관계에 대하여, 고요아침, p.25) 관계가 고립이라고? 그렇다면 대체 타자와 소통한다는 관계란, 고립이 아닌 관계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고립된 성; 관계의 현실

우리의 삶, 다른 사람과 우리의 관계를 살펴보면, 그것이 고립의 한 과정이라는 걸 알게 될 겁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염려하지 않습니다. 비록 그 사람에 대해 아주 많은 이야기를 하기는 해도 정말로 염려하지는 않습니다. 그 관계가 우리를 기쁘게 해주는 동안에만, 누군가가 우리에게 쉴 곳을 제공하거나 우리를 만족시켜주는 동안에만 그 누군가와 관계를 맺습니다. () 다른 말로 하면, 우리가 만족스러운 동안에만 관계가 있다는 말입니다. (앞과 같은 책, p.26)

 

요즘 나를 포함한 대학생들은 친구들과 싸우는 걸 힘들어한다. 그래서 이왕이면 서로 잘 안 부딪치고 잘 지내기 위해 친구들 사이에서도 조심스럽다. 집에 자주 놀러가는 것도 부담스럽게 된다거나, 사소한 부탁을 하는 것도 꺼려한다. 제 딴엔 상대를 위한다고 하지만 이게 정말 서로를 위해서인지는 의문이다.

크리슈나무르티는 우리가 관계를 맺는데 벽을 세워둔다고 말한다. 우리는 어쩌면 관계를 통해 벽을 허물기보다 벽을 세우는 데 더 주력하고 있는 건 아닌가? 벽 바깥에 상대를 두고 적당히 즐거움은 누리지만, 결코 벽을 허물 생각은 하지 않는다. 관계를 맺기보다 벽이 훨씬 더 많은 기쁨을 주기 때문에 그 벽에 둘러싸여 살고 있으며, 그게 훨씬 더 안정하다고”(앞과 같은 책, p.27) 생각한다. 이렇게 벽 쌓기에 주목하다보니 당연히 관계는 고립이 될 수밖에 없다.

이때 관계는 오히려 고립에서 오는 외로움을 도피하기 위한 기분전환으로 전락한다. 사람이 좋아서, 관계를 통해 나를 변화시키고 싶어서 친구를 만나는 게 아니다. 벽에 쌓여 고립되고 위태로운 나, 외로운 나를 감추기 위해 친구를 만나는 것이다. 기분전환으로 상대를 만나는데 어떻게 우정이 생겨나겠는가? 술을 같이 마시고, 여행도 같이 가고 수다도 많이 떨지만 계속해서 친구와 거리감을 느끼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렇게 관계 맺는 자신이 혼자 방에 처박혀 있는 사람과 다르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 지독히도 견고한 벽 안에 자신을 가두려고 하는 건 어느 쪽이나 마찬가지다.

 

홀로 있으라!

그렇다면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 벽을 부수기 위해 크리슈나무르티는 어떤 행동을 하라기보다는 관계에서의 자신을 철저히 직시하라고 말한다. 내가 어떤 욕망과 쾌락을 가지고 관계를 대하고 있는지, 어떤 생각 때문에 갈등하고 있는지를 직시하라는 것이다. 저 친구와 성격이 맞지 않아서, 라는 표상적인 이유를 말하는 게 아니다. 내가 어떤 망상을 상대에게 기대하고 있는지, 또 거기에서 어떤 욕망과 쾌락을 느끼고 있는지 그 뿌리를 보라는 것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런 과정을 거치면 갈등은 사라진다(고 한다). 이것이 곧 홀로 있음이요, 이것을 겪지 않으면 도피를 한다고 해도 모퉁이를 돌 때마다 다시 마주치게 될 뿐이다.

 

이 홀로 있음은 두려움을 일으키는 것도, 힘든 것도 아닙니다. 고립이 있을 때에만, 외로움이 있을 때에만 아픔이 있습니다. 그럴 때는 근심이 있고 두려움이 있으니까요. 홀로 있음은 전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그것은 다만 홀로 있는 마음, 그 무엇도 영향을 미칠 수 없는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마음이 쾌락원칙을 이해했으며 따라서 그것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뜻입니다. (앞과 같은 책, p.106)

 

나는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어떤 욕망과 쾌락을 품고 있었을까? 나는 어떤 벽을 내 주위에 두르고 있었던가? 고립된 상태의 불안함도 아직은 너무 추상적이다. 내가 여태껏 관계 속에서 행동했던 것들을 다시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것조차 기억해내려 하지 않는 게으름이란! 아직까진 고립됨에 익숙하니 불안함도 가져가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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