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강학원

본문 바로가기
남산강학원을 즐겨찾기에 추가
사이트 내 전체검색

청백전

[청백전 인절미] 시즌4 <증여론>1 발제 (36/100)

게시물 정보

작성자 백수 작성일19-08-11 22:00 조회19회 댓글0건

본문

2019. 8. 7. 청백전 증여론발제문 김다솜

 

빚지고 얽혀있는 관계

 

언젠가 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홀로 단칸방에서 굶어 죽은 노인에 대한 기사였다. 음식은 내 돈을 주고 사먹어야 하는 게 당연한 시대이기 때문에 구매력이 없는 노인은 아사했다. 자본주의이기 때문에 가능한 죽음의 형태이다.

모스의 증여론을 읽으면서, 적어도 모스가 서술한 과거의 사회에서는 저 노인처럼 죽어간 이는 없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증여체계가 작동시키는 사회 구조 속에서 인간은 공동의 풍요로움 주위에 앉을 수(38p)’ 있었다. 그렇다면 증여체계에서 현재의 자본주의의 폐단을 타파할 수 있는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우리 사회에서 증여란 어색한 감각이다. 부는 나누기 보다는 쌓을수록 좋다고 믿고 그렇게 행동한다. 하지만 증여 사회에서 부를 보는 관점은 이와 달랐던 것 같다. 그 전제의 차이를 살펴보고자 한다.

폴리네시아의 마오리족 (지금의 뉴질랜드)에서 이루어졌던 증여 체계는 타옹가(taonga) 라는 물품을 통해 이뤄진다. 타옹가에는 영, 즉 하우(hau)가 깃들어 있다. 그 숲, 산지(産地)와 토지의 하우가 깃들어있다. 그렇기에 타옹가는 그 토지 본래의 것(native)'이다.

 

예를 들어 당신이 어떤 특정한 물품(타옹가)을 갖고 있어 그것을 나에게 준다고 가정합시다 () 내가 이 물품을 제3자에게 주면, 일정한 시간이 지난 다음 그는 나에게 대가로서 무엇인가를 주려고 마음먹고, 나에게 무엇인가(타옹가)를 선물합니다. 그런데 그가 나에게 주는 이 타옹가는 내가 당신한테 받았으며 또 내가 그에게 넘겨준 타옹가의 영(하우)입니다.”(66p)

 

또한 어떤 사람에게서 무엇인가를 받는 것은 그의 정신적인 본질, 즉 영혼의 일부를 받는 것(71p)” 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선물을 받은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영혼의 일부인 것을 주지 않으면 안 된다. 영을 순환시켜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물건에 깃든 영이 물건을 받은 사람에게 주술적인 영향력을 미치기 때문에 위험해 질 수 있었다. 요컨대, 마오리족에게 있어서 물건을 받는 다는 것은 그 물건이 자기에게 오기 까지 겪었던 과정으로부터 생성된 영을 받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관념이 셀레베스 섬의 토라자족(지금의 인도네시아)에서도 발견 된다(83p). 그들은 정령과 신에게 공희를 바치기 위한 포틀래치를 열었다. 이 공희는 구입의 개념이었다. 자신의 재산에 대해 어떤 행동을 할 권리, 즉 나무를 베거나 토지를 가는 등의 행동을 할 권리를 정령과 신에게 구입해야 했다. 구입의 의미로서 공희를 바치면, 신이 그 값을 나중에 보답할 것이라는 믿음이 그들에게 있었다.

토라자족에게 있어서 그들 소유의 재산은, 당장 손에 쥘 수 있다고 해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온전한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정령과 신이라는, 자연의 영향력 속에서 함께 호흡하는 것으로써 사물들을 이해했다. 앞서 살펴 본 마오리족의 경우도 역시 사물을 대함에 있어서 그것에 깃든 영을 함께 감지했다. 사물을 둘러싼 맥락을 지우지 않는 태도라는 점에서 두 부족의 태도는 비슷하다.

증여 제도를 통해 영적 교류는 이루어진다. 각 부족들은 이 영적 교류와 관련한 상징적 표현들을 사용한다. 모스는 이 상징적 표현에 대해, 고대유형에 속하는 분절사회 내의 하위집단들이 끊임없이 서로 밀접하게 얽히고 또 서로에게 빚지고 있다고 느끼는 방식을 매우 직접적으로 표현(129p)”한 것이라고 말한다. 세상은 기본적으로 서로 빚지고 얽힌 관계로 이루어져있다는 전제가 그들에게 깔려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증여 사회의 이러한 전제와 현 시대의 상식은 매우 다르다. 우리는 절대 금전적으로 빚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의 힘으로 돈을 벌어서 그 돈으로 자신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되면, 독립했다고 생각한다. 금전적으로 독립했기에 채무의 감정은 없다. 하지만 내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구매해야 했던 상품들이 나에게 오기까지의 과정을 떠올려 본다면 어떨까? 그리고 그 과정의 노고가 그 가격으로 책정 된 것이 정말 합리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 역시 증여사회가 그러했듯 서로 빚지고 얽힌 관계로 이루어져 있다. 다만 돈으로 가치가 책정되기 때문에 돈만 제대로 지불한다면 문제시 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상품 이면에 얽혀 있는 관계망은 보이지 않게 된다.


게시글을 twitter로 보내기 게시글을 facebook으로 보내기 게시글을 Me2Day로 보내기 게시글을 요즘으로 보내기 게시글을 구글로 북마크 하기 게시글을 네이버로 북마크 하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