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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백전 마늘쑥쑥조] 시즌4 <배움과 지식에 대해여>2 발제 (3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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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문명 작성일19-08-06 22:18 조회2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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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할수록 밝아지는 것들


감이당에서 격주로 진행되는 명상시간, 운성스님의 녹음된 목소리에 따라 명상을 진행한다. 마지막에 울리는 운성스님의 목소리, 지금 이 순간 의식하는 자가 누구인가? 느끼고 있는 이 사람이 누구인가? 묻는다. 이뭐꼬?라는 유명한 선문답과 함께. 이 무엇인가, 지금 이 세계를 인식하고 느끼는 자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명상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질문인듯하다. 명상을 하면서도 이것을 왜 묻는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 별로 생각해보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 책을 읽으면서 이것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바로 관찰자와 관찰하는 대상이 구분되어 있지 않음을 이 질문이 말하는 핵심이기 때문이다. 인식하는 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세계와 함께 온전히 존재하고 있음을 깨닫는 것. 크리슈나무르티(K)의 책을 읽으면서 명상과 배움이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음을 느꼈다. K가 말하는 배움은 마치 명상과도 같은 고요함이 온전히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 배움의 태도에 대해서 알아보자.


침묵, 있는 그대로의 경청

배움과 지식에 대하여K의 강연 기록이다. 강연자와 청중이 질문을 주고받는다. 책의 앞부분에서 K의 질문에 사람들이 대답한다. 빠르고 냉철한 답변을 한 사람들. 과연 칭찬받았을까? K는 말한다. 제발 바로 대답하지 말라고! 바로 답변하지 말고 침묵하고 사유하라고 덧붙인다. 자신의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한탄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렇다. 우리는 질문을 받았을 때, 이 사람이 어떤 말을 하는지 그 뜻을 헤아리려고 집중하기보다는, 나의 의견과 생각이 먼저 머리에 맴돈다. K에 따르면 이것은 배움의 태도가 아니다. 단지 지식으로, 나의 경험으로, 기억으로 새로운 것을 해석하고자 하는 것뿐이다.


우리들은 대부분 재잘대고 의견을 내고 판단하고 평가하고 이름을 붙이는 등, 자신의 소음을 내면서 듣습니다. 있는 그대로를 경청하는 법이 없습니다. 자신이 재잘거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정말로 귀 기울여 듣고 있지 않습니다. 정말로 귀 기울이려면, 마음이 놀랄 만큼 고요하고 침묵해야 합니다. 연사가 하는 말을 듣고 있으면서, 자신이 속으로 하고 있는 생각을 개입시키고 있다면, 자신의 의견이나 생각, 결론, 평가를 하고 있다면, 사실은 연사가 하는 말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연사의 말뿐만 아니라 새소리, 일상의 소음까지도 귀 기울여 들으려면 거기엔 고요함, 침묵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배움과 지식에 대하여, 크리슈나무르티, p.179)


우리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도 내 생각을 계속 덧붙이고 있을 때, 다른 사람이 들어올 공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들어갈 여지가 없는 것이다. 그 상태에서 얻는 것은 지식의 축적만을 의미한다. 나를 강화하는 나의 경험들이 바로 그것이다. 내가 이만큼 안다, 나는 많은 것을 경험했다는 논리로. 그러고 보면 요즘 경험을 중요시 여기면서 많은 것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주장도 자아의 확장으로만 쓰일 수 있다. 책에서 읽은 것을 바탕으로 해석하는 것도 주의할 필요가 있다. 말의, 지식의, 정보의 뒤에 숨어서 내 자아가 깨지지 않길 바라고만 있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배움에는 이러한 것들의 절대적 침묵이 필요하다.


나 자신으로부터의 배움

이 고요한 배움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서 철저히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어떠한 권위에 의해서 가능한 것이 아니다. 책의, 교회의, 사상의, 경험의 권위에 매달려서는 해결되지 않는다. 이것 또한 마음이 불안정하고 두려워 기대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K는 배움의 길은 배움의 길은 완전히 홀로 해야 하는 여정이라고 말한다. 숫타니파타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구절이 생각난다. 여기서 말하는 혼자는 어떤 것일까? 의식주를 혼자 해결하라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는 자기 자신을 보라고 이야기한다. 그 어떤 권위에 기대지 말고 있는 그대로.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나 자신에 대해서 알지 못하면 갈등이 끝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두려움과 절망이 끝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나 자신을 이해할 때, 모든 인간을 이해하게 되며, 모든 인간관계를 이해하게 됩니다. 자기 자신을 이해한다는 건, 육체적인 몸과 신경들의 갖가지 반응을 배운다는 겁니다. 매순간의 생각을 알아차리는 겁니다. 질투, 잔인성이라고 하는 것을 이해하고 애정인 것, 사랑인 것을 찾아내는 겁니다. ‘’, ‘라고 하는 것 전체를 이해하는 겁니다.

(같은 책, p.209)


우리는 무언가를 배우려고 할 때, 어떤 사람의 말을 듣거나, 책을 읽는 등 권위에 의존해서 배우려고 한다. 그리고 나 자신을 바라보기보다 다른 사람만을 쳐다보며 비판하려 한다. 하지만 그는 오로지 나 자신의 두려움과 절망, 질투, 잔인성을 바라봐야 한다고 말한다. 배움은 단지 자신을 무한히 지켜보고 있는 한 순간이라고. 그때에만 배움이 존재한다. 내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반응들을 내가 알아차릴 수 있을 때에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자아의 움직임 속에서 마음은 계속 헤매기만 하기 때문에 이와 같은 알아차림이 불가능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생각이 아니라 고요함이다. 이렇게 저렇게 해야 하는 것이 없는 상태, 갈등 없이 바라보는 상태이다. 그 속에서만 사랑의 가능성이 존재한다.


명상노트에서 크리슈나무르티는 이 길이 달에 가는 것보다 훨씬 더 긴 여정이라고 말한다. 타고 갈 기계도, 도와줄 이도, 책도, 이론도 없는 상태에서 자기 혼자의 힘으로만 가야 하는 상태.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만나는 배움의 과정만이 있을 뿐이다. 그는 말한다. ‘배움에는 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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