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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백전

[청백전 마늘쑥쑥조] 시즌4 <마음의 진보>2 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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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호호미 작성일19-07-15 21:33 조회7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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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자유

 

자신의 가슴을 죽이는 일

마음의 진보를 읽고 있으면 하나의 자연을 들여다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카렌의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폭풍과 바람, 그러다 구름이 걷히면서 잠깐 비치는 햇빛과 어딘가에서 또 뭉글뭉글 생겨나는 안개. 그 과정에서 카렌은 끊임없이 자신의 생명을 의심한다. 자신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고 감각 또한 완전히 망가져버렸다며 다른 사람들과는 벽을 쌓고 지내고, 자신의 미래를 생각할 때에도 세상에서 나가떨어진 사람이 될 것 같다며 비관하기 일쑤다.

수녀원에서의 생활은 카렌으로 하여금 자기 자신을 부정하도록 만들었다. ‘스스로를 신의 선물로 만들어야 한다는 임무 아래 벌어진 일이었다. 이런 카렌의 여정을 보고 있으면 도대체 종교가 무엇인지, 그 믿음이 삶에 대체 어떤 도움을 주는지 심히 의문이 든다.

 

가슴이 죽어있는데 어떻게 인생을 헤쳐 나갈 수 있겠는가? 문학 작품을 읽어도 나만의 감흥이 없는데 무슨 수로 학자가 되겠는가? ‘괴상한 발작에 시달리는데 어떻게 사람 구실을 하겠는가? 앞날을 생각하면 내가 가 있을 곳은 열쇠가 채워진 독방 아니면 자해를 못하도록 스펀지로 벽을 댄 방이었다. 수녀로 몇 년을 지내다 보니 어느새 세상에 적응을 할 수가 없었고 내 안의 무언가가 망가져서 나 자신을 추스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안 생겼다.

(카렌 암스트롱, 마음의 진보, 교양인, 187-188)

 

카렌은 수녀 생활을 하면서 신에 대한 믿음이 도저히 생기지 않아 괴로워했다. 수녀원에서 지켜야 할 것들을 모두 지키고, 신앙이 생기도록 하는 일을 다 하는데도 그것만은 생기지 않았다. 그 믿음을 갖기 위해 카렌이 했던 일은 자신의 가슴을 죽이는 일이었다.

 

오랫동안 나는 검은 것을 희다, 흰 것을 검다고 말하면서 스스로를 속였다. 신의 존재를 입증하는 이른바 증거를 내가 정말로 믿는 것처럼, 행복을 느끼지 못하더라도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거니까 사실은 행복한 것처럼, 바늘도 안 달린 재봉틀을 몇 시간씩 돌리는 것이 시간을 가장 유익하게 쓰는 일인 것처럼 거짓말을 했다. 내 마음이 진리로 손을 뻗으려고 할 때마다 나는 일부러 거짓말을 하면서 마음을 내리눌렀다. 결국 내 마음은 뒤틀리고 무능력하게 되었다.

(같은 책, 253)

 

이렇게까지 해서 카렌이 갖고 싶었던 믿음은 무엇이었을까? 신을 믿음으로써 카렌은 자신을 탈바꿈시키길 기대했다. ‘지금 행복하지 않아도 믿음이 생기면 행복해지겠지, 지금 나는 너무 비참하고 고단한 상황에 처해있지만 믿음이 생겨 정식 수녀가 되면 절로 성숙해지고 거룩해질 거야.’ 그렇게 마음먹은 카렌은 지금의 자신을 계속해서 속여야 했다. 힘든 데도 안 힘든 것처럼, 감정이 올라오는 데도 마치 없는 것처럼.

카렌이 기대고자 했던 종교는 진리에 대해서 말한다. 그런데 진리는 과연 밖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일까? 카렌처럼 나를 속이고, 밖에 있는 그것을 안에 들여놓는다고 해서 얻어질 수 있는 그런 것일까?

 

나는 정신병자가 아니었다

마음의 길은 정말 오묘하다. 카렌은 수녀원 생활을 청산하고 나서도 자신을 억누른 후유증으로 계속된 공포와 불안에 시달리다가 마침내 간질이라는 판정을 받는다. 가뜩이나 자신의 감각을 믿지 못해 세상 불안해하던 카렌에게 이 생기고 만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카렌은 간질이라는 이 병을 선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때부터 카렌에게는 마음의 자유가 찾아온다.

 

사람들은 간질로 진단이 나면 열이면 열 이것을 흉보로 받아들이겠지만 나한테는 더없이 기쁜 소식이었다. 지저분한 건물, 처마 주위에서 더러운 날개를 퍼득거리는 런던의 병든 비둘기, 휴지가 널린 길바닥, 넘쳐나는 쓰레기통 같은 도시의 치부도 내게는 아름답게 비쳤다. 정말로 오랜만에 나의 감각을 믿어도 되겠구나 하는 자신감이 들었다. 내 정신이 글러먹은 것도,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망가진 것도 아니라는 것을 이제 나는 알았다. 나는 정신병자가 아니었다. 따라서 정신병동에 갇혀서 여생을 보낼지 모른다는 것은 기우였다. 나는 세상을 다시 얻은 기분이었다. 태어나서 어쩌면 처음으로 내 인생을 책임질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같은 책, 317)

 

카렌이 수녀 생활에서 얻은 것은 자신의 존재를 끝까지 부정해본 경험이었다. 내 정신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 게 아닐까 하는 불안은 카렌으로 하여금 신체의 이상 상태를 긍정하게 했다. 병을 통해 신체에 이상이 있음을 알았을 때, 그녀에게는 크나큰 안도가 찾아온다. ‘내 정신이 글러먹은 것도,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망가진 것도 아니라는사실은 이제 거꾸로 그녀에게 자신의 존재에 대한 믿음을 불러일으킨다. 수녀 생활 동안 그렇게 부정했던 자기 자신을 조금씩 믿게 되는 것이다.

사면을 받은 듯한 느낌’, 간질이라는 선물이 그녀에게 준 그 느낌은 카렌이 앞으로의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큰 힘이 된다. 자기 자신의 감각을 믿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 그건 과연 어떤 느낌일까? 단순히 올라오는 내 욕망에 충실하는 것과는 다른 문제일 것 같은데 말이다. 마음의 진보를 통해서 나 자신을 믿는다는 것에 대해 좀 더 느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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