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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백전 마늘쑥쑥조] 시즌4 <마음의 진보>1 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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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쓰담쓰담 작성일19-07-10 16:13 조회4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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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에게로 가는 길

 

신을 찾고 싶었다.’

마음의 진보7년간의 수녀원 생활을 접고 환속한 카렌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녀는 17살에 수녀가 되기로 마음을 먹고 집을 나선다. 기독교, 아니 종교 자체가 친숙하지 않은 나에게 이런 결정은 참 별나 보인다. 한창 속세를 즐길만한 17살이 무엇이 아쉬워서 삭막한 교회로 들어간단 말인가?

당시 카렌이 살았던 영국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였다. 전쟁에서는 승리했지만 파괴된 도시는 복구가 진행 중이었고 빚도 어마어마했다. 전후에 태어난 젊은이들은 이런 피폐한 상황 속에서 기성세대의 간섭에 저항하며 새로운 삶의 방식을 꿈꾸었다. 흔히 그들은 의미도 없는 말들로 채워진 로큰롤 음악을 듣고 넘치는 성 에너지를 마음껏 써 버리며 강렬함을 추구했다. 카렌 역시 방법은 달랐지만 강렬한 새로움을 추구했다는 점에서는 다른 젊은이들과 마찬가지였다.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회에서도 결국 여성의 삶의 끝은 결혼이었다. 남편을 내조하고 아이를 키우는 데 봉사하는 삶. 거기에 비한다면 수녀는 누구에게도 명령받지 않고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멋진 상으로 다가왔다. 수녀원 학교를 다녔던 카렌에게 수녀는 로큰롤 음악보다도 선택하기 좋은 방법이었다.

 

나의 머리는 가톨릭의 이미지로, 성자들의 삶과 본보기로, 장엄한 미사의 모습으로 꽉 찼다. 나도 뿅 가고 싶었다. 나를 다른 차원, 다른 자리로 띄워주는 황홀경을 체험하고 싶었다. 세상에서 내가 보고 들었던 것보다 더 진실한 삶을 살아가고 싶었다. () 수녀원은 획기적이고 대담한 해결책이었다. (카렌 암스트롱, 마음의 진보, 교양인, p.11)

 

살다 보면 기존의 생활에 만족하지 못하는 때가 반드시 있다. 그리고 그럴 때 사람들은 이전과는 다른 내가 되고 싶다,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싶다는 마음으로 새로운 시도를 한다. 오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기도 하고 집을 나와 공부를 시작하기도 한다. 방법이 유별나긴 했을망정, 카렌에게 신을 찾는다는 말은 삶을 변화시키고 싶다는 외침과도 같았던 것이다.

 

수녀와 속세 사이

그렇게 들어간 수녀원에서의 수련은 고단했다. 수녀들은 신을 받아들이기 위해 철저하게 자아를 내려놓도록 훈련받았다. 선배 수녀의 말이 아무리 불합리하더라도 불만을 가져선 안 되었다. 자신이 옳다는 지적 오만을 내려놓고 하느님을 받아들이라는 의미에서였다. 또한 수녀들 간에 우정을 나누는 것도 금지되었다. 세상과 격리되어 애정을 박탈당한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강한 사람이 되라는 게 그 목표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카렌은 실패했다. 선배 수녀의 말에 온전히 복종하지도 못했고 애정을 떨쳐버리지도 못했다. 심지어 비판적 사유를 강조하는 대학 교육을 받으면서 신앙에 대한 의심은 더욱 깊어졌다. 카렌은 자아의 완전한 포기가 자신에게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고 환속한다.

그러나 7년 동안을 수녀원에서 다져진 몸으로는 속세에 적응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파티에서 노는 대학생들의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했던 것도 있었지만, 더욱 심각했던 건 바로 세상과 소통하지 못한다는 감각이었다. 수녀원에서의 고된 수련은 자아를 깨고 환골탈태하도록 하기는커녕, 카렌을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단단한 껍데기 속에 자신을 가두게 했다. 애정에 인색한 환경에 길들어진 그녀는 환속한 후 가족이나 주위 사람들이 주는 애정에 제대로 반응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애정 없이 잘 살 수 있는 인간이 된 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수녀의 세계와 세속의 세계 어디에서도 적응하지 못한 것이다.

 

성공한 삶에서 정직한 삶으로

마음의 진보앞부분은 속세에 나와서도 적응하지 못해 고통 받는 카렌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어떻게 보면 이렇게 극단적으로 어느 쪽에도 속할 수 없는 사람이 있는지 의심이 들 정도이다. 책의 뒷부분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모르지만, 머리말에 나온 것으로 보면 결국 그녀는 속세에서 종교를 공부하는 종교학자의 길을 만들어 낸다.

이것이 속세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간 성공담에 그치는 것일까? 카렌은 이미 세상 나들이에서 자신의 과거를 성공담처럼 풀어낸 바에 대해 후회한다. 카렌은 결코 속세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바람직한 이야기를 쓰려고 했던 것이 아니다. 그녀는 책에서도 자신이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했음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 카렌은 세상에 적응하지 못했다. 그녀는 수녀로서도 세속인으로서도 실패한 삶을 살았다.

하지만 역으로 질문해보자. 실패하지 않는 삶이란, 성공한 삶이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어느 누가 자신이 사는 시대와 불화를 일으키지 않을 수 있냐는 말이다. 우린 모두 자신이 세상에 속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막연히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자신의 실패한 삶을 부정하고 성공한 삶을 머릿속에서 만들어내는 것으로 말이다!

사실 세상을 살아가는 누구라도 세상에 적응할 수는 없다. 세상은 그저 주어질 뿐이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기존의 주어진 삶과는 다른 길을 가고자 하는 욕망을 갖고 있다. 기성세대에 의해 주어진 삶에 저항하는 청년들처럼 말이다. 그 변화로 나아가는 길은 늘 처음 기대한 바와는 같지 않다. 수녀로서의 삶은 카렌이 처음 생각한 수녀의 이미지처럼 아름답지도 멋지지도 않았다. 그것도 당연한 것이, 그녀가 기대했던 성공이란 그녀의 머릿속에서나 존재했던 상이었기 때문이다. 생각이 현실과 늘 같지 않듯, 적응은 늘 실패한다.

그러니 세상에 적응했는지 적응하지 못했는지, 실패했는지 성공했는지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실패는 선택사항이 아니고, 세상을 사는 이상 우리 모두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다만 그 실패를 속이고 자신이 적응했다 믿으며 기존의 질서에 자신을 재단해나가는 삶과, 실패를 끊임없이 직시하며 새로운 지평을 여는 삶이 있을 뿐이다. 카렌은 자신의 실패를 결코 포장하지 않는 후자의 삶을 살았다. 그랬기에 그 길의 끝에서 비로소 기대를 내려놓게 되는 진정한 변화, 신을 찾아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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