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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백전 뭄조]시즌4 <교양으로 읽는 뇌과학> 발제 (3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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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만복 작성일19-07-03 11:53 조회5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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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백전 뭄조 시즌4 첫 번째 시간, 『교양으로 읽는 뇌과학』 발제입니다. 


우리는 만들어진세계를 본다

 

지금 눈앞에 있는 호두를 한 번 보자. 아마 우리는 너무 쉽게 그것이 모든 사람과 동물들에게 거의 비슷하게 보이고, 느껴질 것이라고 믿어버리곤 한다. 객관적인 세계 속에 호두가 이미 존재하며, 우리는 능력에 따라 그것을 볼 수 있는 것처럼 생각된다.

그런데 교양으로 읽는 뇌과학에서 이케가야 유지는 우리가 보고, 인식하고, 느끼는 모든 것이 뇌의 해석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것을 말해준다. , 우리는 모두 각자의 뇌에 의해 만들어진세계를 보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과정들이 우리의 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지 한번 살펴보도록 하자.

 

우리는 뇌가 해석한 것을 본다

우선 본다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자. “내 두 눈으로 본 것이 아니면 믿지 않겠다!”라는 말처럼, 우리는 무언가를 본다는 것을 아주 객관적인 활동으로 생각해왔다.

그런데 <네이처>라는 잡지에 착시 현상에 대한 한 흥미로운 논문이 실렸다. 실험자는 화면을 통해 피실험자에게 정사각형과 직사각형을 순간적으로 번갈아 보여주었고, 그때 그의 뇌에 어떤 식으로 전기 신호가 작동하는지 관찰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움직임을 볼 때 작동하는 뇌의 부위가 작동했고, 피실험자는 정사각형이 움직여직사각형이 되는 것으로 보았다. 실제로는 정사각형과 직사각형의 사진이 번갈아 나왔을 뿐인데 말이다. 정사각형은 결코 움직이지 않았지만 피실험자의 뇌가 정사각형에서 직사각형으로의 변화를 움직임으로 해석했고, 그러자 실제로 사각형이 움직이는 듯이 보이게 된 것이다.

또 다른 사례로 맹시 현상을 들 수 있다. 우리의 눈에서 색깔을 감지하는 세포는 망막의 중심부에 모두 모여 있고, 빛을 감지하는 세포는 상대적으로 넓게 퍼져있다. 따라서 눈의 중심부로 보는 중에는 색깔을 감지하지만 주변부로 밀려났을 때에는 밝고 어두운 정도로만 감지한다. 그렇기 때문에 시야의 구석에 빨강색의 크레용을 들고 색깔을 물어보면 질문을 받은 사람은 그것이 무슨 색인지 대답하지 못한다. 하지만 시야 정면에 빨강색 크레용을 보여주고 시야의 구석으로 크레용을 가져가면 그 크레용은 여전히 빨강색으로 보인다. 뇌가 보이지 않는 색을 끊임없이 보완하여 우리에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뇌의 해석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런 뇌의 해석이 우리의 의식과는 전혀 상관없이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왜 뇌는 아무도 시키지도 않은 일을 스스로 해내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우리의 눈과 뇌가 가진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서였다.

먼저 눈은 세계를 2차원으로, 평면적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3차원의 세계에서 살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는 입체시가 필요했다. 물론 두 개의 눈이 거리를 측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그렇기에 뇌는 어떤 사물이 가까이 있고, 멀리 있는지를 여러 가지 근거를 통해 상상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종종 뇌가 잘못된 근거를 가지고 상상을 하기도 한다. 그럴 때면 같은 길이의 두 막대도 하나는 길어 보이고, 하나는 짧아 보이는 착각이 일어나기도 한다.

둘째로 눈의 시신경의 개수가 제한되어 있다는 한계도 있다. 눈 한 쪽의 시신경 수는 100만 가닥이다. 숫자로만 보면 무척 많은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디지털 카메라로 생각해보면 사실 100만 화소는 선명한 사진을 찍기에는 무척 적은 숫자이다. 시신경의 수에 맞게 세상을 본다면 우리는 거친 모자이크 같은 세상을 보게 될 것이다. 하지만 뇌에서는 이것을 보완해서 매끄럽고 또렷하게 세상을 보이게 한다.

셋째 이유는 뇌의 시간분해능력과 관련된다. 뇌는 일정 시간차 이하의 두 번의 깜박거림을 동시라고 느낀다. 뇌가 느낄 수 있는 시간차의 최소 단위가 있기 때문이다. , 인간의 뇌에서 시간은 불연속적인 양자로 흐른다. 이런 한계를 메우기 위해 뇌는 움직임이라는 해석을 만들어냈고 그렇기에 앞의 사각형의 예와 같은 착각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눈이 생긴 뒤에 세계가 생겼다

사람들은 먼저 세계가 있고, 그것을 보기 위하여 눈을 발달시켰다는 식으로 생각하지만 사실은 완전히 반대다. 생물에게 눈이라는 장기가 생기고, 진화과정에서 인간의 눈이 완성되고, 그 눈으로 우주공간으로 핑핑 날아다니는 광자를 받아들이고, 그 정보를 인식해서 해석할 수 있게 되어서야 비로소 세계가 생겨난 것이 아닐까?(이케가야 유지, 교양으로 읽는 뇌과학, 은행나무, 이규원 옮김, 2015, 121)”

 

인간에게는 인간의 눈으로 보는 세계가 있다. 뉴턴은 그 세계를 관찰해서 뉴턴의 3대 법칙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인간과 전혀 다른 눈으로 세계를 보고 있는 개구리나 모기에게는 뉴턴의 3대 법칙같은 것은 아무 의미도 없다. 개구리는 오직 움직이는 것만으로, 모기는 온도와 이산화탄소만으로 세계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빤히 보이는 호두가 개구리와 모기에게는 전혀 보이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이 세계는 우리의 뇌에 의해 만들어진세계일뿐이다. 그러니 누군가 나를 괴롭혀서 힘들게 한다는 생각이 들면, 혹시 내 뇌의 해석에 의해 그 일에 괴롭다는 해석이 덧붙어버린 것은 아닌지 돌이켜 봐야 할 것 같다. 또 어떤 순간에 내가 본 것이 전부라고 믿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드는지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이케가야 유지가 책의 뒷부분에서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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