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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백전 인절미] 시즌3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후기 (3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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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수 작성일19-06-16 23:02 조회10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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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백전 인절미] 시즌3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후기 (30/100)

참석자: 김성아, 김지혜, 문보경, 이윤하, 최세실리아, 현정희, 이지향

발제자: 이윤하

안녕하세요~ 이제 7명이 된 인절미조입니다~ 이번 시즌 마지막 세미나였는데요, 지난주에 이어 이번에도 전원 참석했습니다. 례프 똘스또이의 단편 소설집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두 번째 시간이었는데요, 발제문을 읽고 토론을 시작했습니다. 발제자가 가장 충격적인 작품이었다며 꼽아온 알료샤 항아리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를 도와 밤낮으로 가축을 돌보고 농사일을 하며 자란 주인공 알료샤는 독특한 생김새로 인해 아이들이 놀려도 웃어넘기고, 아버지가 욕을 해도 말없이 듣다가 일에 집중하는 아이로 그려집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도시에 사는 어떤 상인 집에서 문지기로 일하며 지내게 됩니다. 집에서 지낼 때와 마찬가지로 일을 가리지 않고 재빠르게 척척 해내자 모든 일이 알료샤에게 맡겨집니다. 그렇게 2년을 지내던 중 그의 인생에 범상치 않은 사건이 일어납니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꼭 필요에 의해서만 성립되는 게 아니라 아주 특별한 관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주인집에서 일하는 요리사 우스찌냐를 통해 자신이 노동이 아니라 존재 자체만으로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둘은 결혼을 약속합니다. 하지만 상인과 아버지의 반대로 결혼을 포기하고 마는데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지내던 어느 날 지붕 위를 치우던 중 철문 위로 떨어져 목숨이 위태로워집니다. 다음은 발제문에 인용된 부분의 전체 단락입니다.

아니, 정말 죽는거야?우스찌냐가 물었다.

왜 그래? 우리가 뭐 평생 사는 건 아니잖아? 언젠가는 죽어야지.언제나처럼 알료샤는 단숨에 말했다. 고마워, 우스찌냐, 날 불썅히 여겨 줘서. 우리가 결혼을 못 해서 다행이야. 결혼했으면 어쩔 뻔했어. 이제 모든 게 좋아.

신부와 함께 그는 손과 마음으로 기도했다. 그는 생각했다. 여기가 얼마나 좋아, 시키는 일만 잘하면 누구도 화나게 하지 않으니 말야. 그렇게 그곳도 좋겠지.

<례프 똘스또이, 알료샤 항아리, 열린책들, 418>

열심히 살다가 마지막 순간에조차 명랑해 보이는 그이지만, 이 시대의 독자들에게 그런 그의 모습이 비참해 보인다거나 가엾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그가 그 자신을 위한 삶을 살아보지 못하고 죽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라고 발제자는 말합니다. “그렇다면 톨스토이가 알료샤에게서 본 것은 무엇이엇을까?” 라는 질문과 함께 발제자는 죽기 직전에 그렇게 말하는 그가 실제로 앞에 있다면, 삶에 집착하는 자신이 우습게 보일지도, 삶을 가볍게 여기면서도 열심히 살아온 그의 모습이 존경스러워질지도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발제문의 두 번째 이야기인 신부 세르게이로 넘어가보겠습니다. 우여곡절을 겪은 후 신부가 된 세르게이는 순종적인 삶을 살며 여러 종류의 유혹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러던 중 수도원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스승으로부터 모든 것의 근원은 그의 오만함이라는 얘기를 듣습니다. 그가 겸양하는 것이 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오만함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순간적인 분노를 다스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오만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고독이 필요하다며 고된 은자 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의혹과 육욕으로 인한 내면의 싸움에 저항하며 금욕적 생활을 이어나가던 그의 명성은 점점 높아지고 그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납니다. 그러자 수도원에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미끼로서의 역할을 하게 되고 자신이 점점 신이 아니라 사람들을 위해 산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은둔생활 초기에 느꼈던 순결, 겸손, 사랑이 사라졌다고 느끼던 어느 날 한 처녀의 유혹에 넘어가게 되고 수도원을 떠나 정처 없이 길을 나섭니다. 돌아다니다가 잠이 들었는데 꿈에서 어릴 적 친구를 보게 되고 천사가 말하기를 그 친구를 찾아가 그녀로부터 깨우침을 얻으라고 합니다. 그녀를 찾아가 가르침을 받기 위해 어떻게 사는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묻습니다. 가난한 그녀는 힘들고 바쁜 삶을 살며 가족들을 뒷바라지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추악하다고 표현하며 지금도 하느님이 자신을 벌하고 계신거라고 말합니다. 세르게이는 친구의 집을 떠나며 왜 천사가 그녀를 찾아가라고 했는지 알게 됩니다. 다음은 발제문의 인용문 전체 문단입니다.

<그러니까 이게 내가 꾼 꿈이 의미하는 바로구나. 빠셴까야말로 내가 되어야 했지만 되지 못한 인물이다. 나는 신을 위한다는 명목하에 사람들을 위해 살았어. 반면에 그녀는 자기가 사람들을 위해 산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신을 위해 살고 있지. 그렇지, 하나의 선행, 그러니까 보상을 생각하지 않고 내민 한 컵의 물이 내가 사람들에게 베푼 그 어떤 은혜보다 귀중하다. 그런데 진정으로 신에게 봉사하려는 열망이 내게 있었을까?> 그는 스스로에게 묻고는 대답했다. <그래, 있었어. 하지만 사람들의 찬양에 더렵혀지고 너무 웃자라 버렸지. 그래, 나같이 사람들에게 찬양받기 위해 살아온 사람에는 신이 없어. 이제 신을 찾아야겠다.>

<례프 똘스또이, 신부 세르게이, 열린책들, 386>

이후 하느님의 종으로 이 마을 저 마을을 돌아다니며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빵과 잠자리를 구하고, 복음서를 읽어준 후 사람들이 감사의 표현을 하기 전에 그 자리를 떠나기를 반복하자 차츰 그의 안에서 신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발제자는 주인공 세르게이가 떠돌이 생활을 하며 비로소 자신을 내려놓고 신적인 존재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앞선 이야기의 주인공 알료샤와 세르게이를 예로 들며 그들의 삶에는 ''라고 주장할만한 것이 없기 때문에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자아실현'의 인생은 아니라고 합니다. 하지만 ''를 버린 바로 이 지점에 톨스토이가 보여주고자 했던 신성이 있다고 합니다.

"자기를 비우고 신의 말을 따르는 삶, 자신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죽음 앞에서 집착없이 그저 거두어질 수 있는 목숨. 그렇다면 신.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자기를 비우고 고귀해진 인간이다"

<발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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