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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백전 뭄조]시즌3 <생명의 느낌> 발제 (29/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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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문빈 작성일19-06-10 18:41 조회4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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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소통하는 매클린톡

 

일반적으로 과학자를 생각해보면 하얀 가운을 입고 실험실에 앉아 현미경으로 어떤 대상을 관찰하고 있는 모습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들은 실험에 실험을 거듭하여 어떤 진리를 생산하는 것처럼 보인다. 어떤 대상을 샅샅이 분석하여 객관적인 지식을 얻어내는 것이다. 그렇게 얻은 결과물에 대해서는 아무런 이의도 제기할 수 없다고 여긴다. 그래서 우리는 과학적이라는 말 앞에 서면 작아지고 또 그 말을 이용해 사람들을 쉽게 설득하기도 한다.

그런데 생명의 느낌의 저자는 주인공 매클린톡의 생애를 보여주면서 과학이 절대적인 진리를 말하는 학문이 아니란 걸 우리에게 말해준다. 우리가 그렇게 과학을 숭배하는 것은 그것이 너무 이성적이고 명석 판명한 것으로만 이루어졌다고 여기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저자는 과학의 발전을 논리적인 영역으로만 한정하지 않는다. 매클린톡은 이성이 아닌 다른 힘을 통해 다른 과학자들이 보지 못하는 새로운 차원을 발견했다. 그 힘은 어떤 것일까?

 

대상과 나를 연결하는 소통의 힘

19941월 매클린톡이 스탠퍼드대학에서 곰팡이 실험을 할 때의 일이다. ‘뉴로스포라의 정체를 밝히는 일이었는데, 그녀가 오기 전까지 여러 유전학자가 매달렸지만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그녀도 처음에 그 일을 시작했을 때 자신이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며칠 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다가 자신이 막혀있다는 점을 알아차렸다. 이럴 때마다 그녀가 하는 습관이 있다. ‘자신 안에서 해결해 보려는 것이었다. 그래서 산책을 갔다. 거기서 30분 정도 생각에 잠기었는데, 불현듯 바로 이거다!’라는 해결책이 떠올랐다. 그리고 현미경 속에서 그전에는 전혀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실험에 점점 빠져들기 시작했고 그녀는 그들과 자신이 함께 움직이는 걸 느꼈다. 그렇게 그녀는 다른 유전학자들이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영역을 발견한다.

보통 우리는 무언가를 관찰하고 거기서 어떤 지식을 구해야 할 때 그 대상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책을 통해 무언가 얻고 싶으면 책만 열라게 파고 있으면 된다고 여기는 것이다. 앞의 예처럼 곰팡이를 통해 얻고 싶은 게 있다면 곰팡이를 관찰하는 시간만 엄청나게 투자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매클린톡의 생각은 다르다.

 

우리가 어떤 난관에 봉착했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이 문제인지, 왜 지금 문제를 파악하지 못하는지 알아내는 거예요.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성찰해야 해요. 그런데 사람들은 보통 그렇게들 하지 않아요.

(생명의 느낌/ 이블린 폭스 켈러 / 앙문 / 201p)

매클린톡은 곰팡이를 실험하고 관찰해도 모자를 시간에 자기 자신을 성찰해야 한다. ? 그것은 곰팡이와 내가 완전히 분리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관찰하는 대상는 분리되어 있지 않다. 내 감정에 따라 책이 다르게 읽히고, 살아온 환경에 따라 다른 관점에서 책이 읽히듯이! 그러니 내가 지금 어디에서 막히고 있는지 보는 것이 대상과 연결되고 더 잘 소통하는 길이다. 그녀는 나와 대상을 분리해 놓고 대상을 낱낱이 해부하려는 냉철한 이성의 힘이 아닌 대상에게 다가가고 하나가 되려는 소통의 힘을 통해 문제를 해결한 것이다.

나를 내려놓는 경청의 힘

우리는 식물을 보면서 살아있다.’는 감각이 잘 생기지 않는다. 그래서 식물을 함부로 대할 때가 많다. 지나가다가 별생각 없이 이파리를 따기도 하고, 단단한 나무를 한 번 걷어차기도 한다. 이런 우리와 비교해 볼 때 매클린톡은 자연과의 소통이 정말 활발해 보인다.^^ 그녀는 말한다. “생명은 한 조각 돌멩이가 아니라고.” 식물은 동물과 마찬가지로 엄청난 활동을 하고 있다고. 따뜻한 날 정원에만 가봐도 식물들이 태양을 향해 손을 뻗기 위해 얼마나 애쓰는지 알 수 있다고. 그리고 덧붙여서 말한다. “풀밭을 밟고 지나갈 때면 나는 자꾸 미안한 마음이 들곤 해요. 사실은 내 발 밑에서 풀들이 아프다고 아우성을 피거든요.”(같은 책 / p332) 놀랍지 않은가? 이러한 소통능력은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그녀의 말을 한번 들어보자.

참 다행이다 싶었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얘기만 즐겨하거든요. 자기들의 일과 자기들이 얼마나 훌륭하게 그 일을 해냈는지 얘기하는데, 나는 드디어 귀 기울여 듣는 법을 익히게 되었어요. 그 무렵에 나는 정말 열심히 듣는 법을 배웠어요.

(생명의 느낌/ 이블린 폭스 켈러 / 앙문 / 246p)

 

우리는 듣는 법을 잘 모른다. 그리고 듣는 게 왜 중요한지도 잘 모른다. 그래서 다른 것들에 관심을 가지고 귀를 기울이기보다 내가 어떤 말을 할 수 있을지, 내가 어떻게 보일지 더 많이 생각한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을 받고 싶다는 욕망으로 꽉 차 있다. 하지만 이러한 마음이 커질수록 다른 것과 쉽게 단절된다. 나에게 빠져 있다 보면 전체 상황과 맥락, 분위기를 놓치게 된다. 그래서 결국 다른 것들과도 모두 끊어지게 되는 것이다.

다른 것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일단 나를 비워내야 한다. 내 안에 아무것도 없어야 다른 것이 들어올 수 있다. 그러기 위한 첫 번째 관문이 바로 경청이다. 상대의 이야기를 듣지 않은 채 나 혼자 상대에 대해 이렇게 저렇게 생각할 때는 막히는 경우가 많다. 이해할 수도 없고, 받아들이기 힘들다. 하지만 상대에게 관심을 가지고 상대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할 때 오히려 상대에게 집중이 된다. 그러면서 전에는 막혔던 것들이 받아들여질 때가 있다. 인간관계뿐 아니라 자연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자연에 관심을 가지고 들으려고 할 때 비로소 자연과 소통할 수 있을 것이다. 매클린톡의 소통능력은 듣는 데에 있다!

 

이성이 아닌 다른 힘들

우리는 과학의 시대에 살고 있다! 그리고 과학은 철저하게 이성적인 것이라고 여겨진다. 그래서 우리는 통계적이고 분석적이며 논리적인 것만이 가치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렇게 이성을 비대하게 생각하면서 우리는 우리의 감정이나 느낌, 직관력과 통찰력 같은 것은 하찮게 여긴다.

이성은 나누고 분리하는 힘이다. 그렇게 잘게 나누다 보면 내가 공부하는 것, 내가 관찰하는 것과 나는 단절된 채 만나게 된다. 그 힘만 쓰다 보면 답답하고 갑갑해질 때가 있다. 하지만 대상과 연결되고 들으려고 하면 다르다. 매클린톡은 그렇게 하면 대상이 나에게 와서 스스로 얘기를 한다고 말한다. 이렇게 대상과 소통이 가능해지면 그 자체가 즐거워진다. 대상과 소통하는 과정 자체가 즐거우니 대상에 몰입하게 되고 전에 보지 못한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처럼 어렴풋이 느껴지지만, 이성이 아닌 다른 힘들이 우리에게 존재한다. 우리는 이런 다른 힘들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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