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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백전

<청백전 인절미> 시즌3 - 축의시대 9, 10장 후기 (2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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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보경 작성일19-05-13 18:09 조회9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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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축의 시대 종교적 핵심은 자비와 존중 보편적인 관심이다. 각자 다른 시대에서 살았지만 결국에는 비슷한 해결책을 내고 있다. 현자 모두가 쉽지 않은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이었고 그런 시대에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영적인 기술을 창조하려고 노력했다. 그들은 평범한 사람들도 훈련이나 노력으로 가능하다고 이야기한다. 훈련이나 노력으로는 자기중심주의를 버리는 것, 자의식에서 벗어나는 것, 누군가를 믿는 종교적 가치보다는 스스로가 자비를 실천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자신을 초월할 수 있다고 한다. 거창한 게 아니라 우리의 자비심을 흐트러트리는 여러 상황이 있는데 한 번만 생각을 해보고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자신을 초월한 것이다. 

 현자들은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행동을 비판적으로 관찰하고, 삶의 고통과 기쁨에 대한 자신의 반응을 관찰하여 사회관계의 질서를 잡는 방법을 발견했다고 한다. 우리는 시대적 상황적 등 필연적인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부분에서는 자신의 폭력성을 모르고 지날 칠 수도 있다. 자신을 관찰함으로써 폭력성을 인지하고 자비를 실천한다면 자신을 초월하고 내면의 평화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발제 (현정희)

그것을 밝히려는 시도들


『축의 시대』 앞의 여러 장과 9, 10장에 걸쳐 사람들은 신, 브라만, 도 등으로 일컬어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초월적이고 신비로운 힘을 느꼈고, 그것의 정체를 밝혀 그 상태에 도달하기 위한 시도들이 있어왔다. 그 과정에서 현자들은 두카의 경험, 공감, 황금률, 자비 등을 통하여 케노시스, 즉 자기비움의 경지에 다다를 수 있었다. 이렇게 자기를 비워 자기중심주의에서 벗어나면 내면의 다른 의식 상태를 경험할 수 있었다고 한다. 자기중심주의의 에고를 벗어나 자기비움에 이르는 과정을 보여주는 한 사건에 가까이 다가가 보자. 


바가바드기타, 주님의 노래


크리슈나는 전쟁을 옹호하는 모든 전통적인 논거를 인용하여 아르주나에게 용기를 불어넣으려 했다. 다가올 전투에서 쓰러져 죽는 전사는 진짜로 죽는 것이 아니다. 크리슈나는 그렇게 말했다. 아트만은 영원하기 때문이다. 전투에서 죽는 전사는 곧장 천국으로 가는 것이므로, 아르주나는 사촌들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일 수 있다. 아르주나가 전투를 거부한다면 겁쟁이라고 비난을 받을 수도 있다. 더 심각한 것은 크샤트리아 계급의 다르마를 위반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전사로서 싸우는 것이 아르주나가 부여받은 신성한 의무였다. 그것은 신들, 우주의 신성한 질서, 사회가 그에게 요구하는 것이었다. 

<카렌 암스트롱, 『축의 시대』, 교양인, 612쪽>


힌두교의 경전인 《바가바드기타》에 나오는 전쟁을 앞둔 상황인데, 여기서의 전쟁은 아르주나 내면의 영적인 전쟁을 뜻한다. 크리슈나는 아르주나에게 영적인 온전함을 알려주는 과정에서 속임수를 써서 사촌을 죽이라고 한다. 영적인 온전함이란 자신의 행동의 결과와 자신을 분리해내는 것이다. 아르주나가 전사로서 살인을 저지르더라도 자신의 행동의 결과로부터 자신을 분리해내면 모크샤, 즉 해방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인간을 무한한 환생의 고리에 묶는 것은 행동 자체가 아니라, 행위에 집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행동을 하면서도 에고 중심적인 욕망에 거리를 둔다면 그 행위는 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 하지만 거기에는 전제조건이 있는데 신성의 본질을 이해하고 그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르마의 선물, 도구가 되어라


크리슈나/비슈누는 파괴자로서 전선에 정렬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군대를 이미 없애버렸다. 물론 아르주나의 인간적 관점에서는 싸움은 아직 시작도 안 했다. 그러나 결과는 이미 확정되었고 바꿀 수 없었다. 우주가 계속 존재하려면 하나의 시대에 다음 시대가 이어져야 했다. 판다바와 카우라바의 전쟁은 영웅 시대를 끝내고 새로운 역사적 시대를 열었다. 크리슈나가 아르주나에게 말했다. “네가 없다 해도 서로 싸우려고 늘어선 이 모든 전사들은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들은 이미

나에게 죽임을 당했다.

그저 내 도구가 되어라

내 옆에서 궁수가 되어라.

<카렌 암스트롱, 『축의 시대』, 교양인, 617-618쪽>


이미 전사들의 운명은 결정지어졌기 때문에 아르주나는 도구로서 움직일 뿐이다. 도구가 된다는 것은 자기를 비워 에고 중심적인 상태를 떠나, 자연스럽게 자신의 역할로 주어지는 어떤 행위를 하면서도 그 결과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아르주나는 이전의 여러 정치가와 전사들이 자신은 운명의 도구라고 주장하며 무시무시한 행동을 정당화한 것을 떠올렸다. 하지만 크리슈나가 강조하는, 도구로서 행동하되 개인적 이익을 얻고자 하는 욕망을 비운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완전한 자기비움을 통해서만 모크샤라고 불리는 해방에 이를 수 있다. 


우리시대의 과제, 새로운 비전


축의 시대 현자들은 우리가 처신해야 할 방침에 대해 두 가지 조언을 제시했다. 첫째는 자기비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상대방의 문제점을 지적하기 전에 자신의 행동을 살피고 고쳐야 한다. 둘째는 축의 시대 현자들의 본을 따라 실천적이고 효과적인 행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주장에서 문제점을 발견했을 때 그것들을 외면하지 않고 개선해나가려고 노력했다. 

자기비판을 거쳐 현자들의 가르침을 따르기 위해서 우리들 역시 역사적 사건들과 오늘날 벌어지는 내면의 문제들을 직접 분석하는 작업에 나서야한다. 축의시대에는 인류가 사회적‧심리적 도약으로 인해 개인주의가 나타나면서 영성의 많은 부분이 자기의 발견에 몰입했던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다시금 비약적인 도약을 거쳐 세계화된 의식을 계발해야할 시점이다. 새로운 비전 제시가 필요한 것이다. 

현인들이 제시한 지식습득이나 영적체험 또는 신체적변화 등 자기비움 상태에 도달하기 위한 방식들은 제각각이지만 각자의 입장에서 보면 모두 맞는 말이었다. 게다가 각각의 주장에 구멍이 있기 때문에 장단을 살펴 전체를 통합해서 볼 수 있다면 새로운 비전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의 과제는 현인들이 옛 종교의 통찰들을 심화하고 확대했듯이 우리도 현인들의 가르침을 재조망하고 오늘날의 시대상에 맞춰 발전시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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