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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과 인생 그리고 봄여름가을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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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홈피지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7-08-28 18:15 조회24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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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 박지원을 대중적으로 알리는 데 기여한 고전평론가 고미숙
고전에 담긴 읽기와 쓰기와 배움의 지혜를 나누다


고미숙은 2003년 고전평론가가 된 이래로 고전의 엄숙한 권위에 가리어 잘 드러나지 않던 지혜와 비전을 힘있고 논리정연한 필치로 대중에게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저자는 지난 5년간 다수 매체의 제안에 응해 자신이 사랑하는 고전들에 관한 평론을 연재했다. 그 연재물들이 책의 씨앗 역할을 했고, 여기에 그리스 문명 공부의 도정에서 집필한 새로운 글 두 편(일리아스, 오뒷세이아)이 모여 ‘고전 읽기’의 방법론을 제안하는 글이 되었다. ‘글쓰기’에 관한 파트인 5장은, 저자가 공동체에서 대중지성 글쓰기를 지도하면서 학인들에게 가르치는 글쓰기의 초식과 자세를 처음 교양서를 통해 밝히는 글이다. 책의 구성상 읽기와 쓰기 파트는 구분되어 있으나, 저자의 논지는 읽기와 쓰기는 본디 하나라는 점을 강조한다.

고전을 통해 인생과 자연의 리듬을 배우다
 책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사계절의 분류에 따라 내용을 구성했다는 점이다. 봄의 고전, 여름의 고전, 가을의 고전, 겨울의 고전. 5장 글쓰기에서도 사계절은 중심 키워드이다. 이처럼 고전과 자연의 호응을 읽어내는 것은 고전평론가로서 부단히 걸어온 저자에게는 자연스러운 발견 혹은 귀결이다.
 처음에는 고전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지식인으로 출발했지만, 고전평론가가 된 이래 고전을 읽고 쓰는 것이 삶의 근간이자 현장이 되었다. 그것은 고전 안에 담긴 시공의 리듬을 익히고 터득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문득 알게 되었다. 일 년이 봄여름가을겨울이라면 하루도 봄여름가을겨울이고, 마침내 인생도 봄여름가을겨울이라는 사실을. 때에 맞게, 때와 더불어 살아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고전의 지혜라는 것을. 고전과 인생, 그리고 사계의 삼중주. (19쪽, Intro 중에서)
 고전에는 자연의 리듬이 내재하며, 고전의 지혜를 배운다는 것은 자연의 리듬을 배우고 익히는 것에 다름 아니다. 자연의 리듬으로 대표적인 것이 봄여름가을겨울, 달리 표현하면 생로병사 혹은 생장수장(生長收藏), 목화토금수의 오행도 그 동의어이며, 인생의 행로로는 소년-청년-장년-노년으로 치환된다. 이를 다시 한마디로 함축하면 순환이라 할 수 있다.
 고전에는 사계절이 흐르고 생로병사의 이치가 두루 담겨 있어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비전을 제시할 수” 있다. “그럼에도 각각의 책에는 그 나름의 편향이 있다. 저자의 기질에 따라, 텍스트가 탄생하던 시절에 따라, 혹은 그 지역의 기후에 따라 오행적 편차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것은 편향이면서 동시에 개성이다. 그것을 적극 활용하자는 것”이 저자의 제안이자 고전 활용법이다.” 고전과 인생과 사계를 유연하게 관통하는 이러한 관점이 낯선 독자를 위해 각각 봄여름가을겨울로 구성된 1장부터 4장까지의 첫머리에서는 계절과 고전의 상관관계를 설명하는 글을 두었다.

고전과 윤리 혹은 실천적 독법
고전의 지혜는 이미 세상에 충만한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세상은 언제고 고전을 소환하고 더 소비하고자 한다. 왜일까? 존재의 위기에 부닥쳐 고전과의 대화를 시도했고 그것으로부터 실마리를 얻었어도 인간은 좀체 바뀌지 않는다. 당연히 세상도 제자리걸음이다. 현재 내가 점한 좌표를 수정하려면 버리고 비워야 하지만 알면서도 할 수 없는 것이 가진 것을 포기하는 일이다. 이렇다면 위대한 고전을 천 수레나 읽은들 어디에 쓸까? 저자는 고전이 자연의 리듬을 닮았다는 사실로부터 윤리를 도출할 수 있다고 말한다.
 사계절의 리듬을 인생이라는 흐름과 연결하면 거기에서 윤리가 탄생한다. 봄의 생동하는 기운은 ‘배움과 우정’으로, 여름의 분출하는 열기는 ‘열정과 자유’로, 가을의 서늘한 기운은 ‘수렴과 성찰’로, 겨울의 응축하는 기운은 ‘지혜와 유머’로. 이 윤리적 가치들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것들이다. (21쪽, Intro 중에서)
 그리고 이 윤리를 맛볼 수 있는 고전을 계절마다 4권씩 선정하고 책들의 진수를 명쾌한 필치로 안내했다. 읽고 쓰고 배우는 일상을 조직하려는 이들이 늘어가는 지금, 이러한 실천적 독법은 학인(學人)들에게 일깨우는 바가 있을 것이다.

고전 읽기와 나만의 봄여름가을겨울 만들기
 책을 읽다 보면 어떤 작가가 특별히 내 구미에 맞고, 어떤 작품이 호평 세례를 받았어도 나에겐 별로라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름 높은 고전의 경우에도 이와 비슷할 때가 적지 않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고전도 마찬가지다. 저자가 택한 계절별 분류법과 저자가 포착하는 고전들의 매력은 그 고전으로 들어가는 다양한 입구 중 한 가지의 제안일 뿐이다. 그럼에도, 고전은 독자를 가리지 않지만 고전을 보다 잘 읽자면 유능한 안내자 한둘을 곁에 두는 것이 좋다. 고전에는 다양한 입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고미숙의 글은 유능한 안내자로서 더할 나위가 없다. 이중 이미 읽은 책도 있고 처음 만나볼 책도 있을 것이다. 저자의 제안에 따라 마음 가는 한두 권이라도 만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쓰기에 관하여, 다시 배움에 관하여
 이 책은 저자의 다른 저작들에 비하면 분량이 소박하다. 그럼에도 고전을 어떻게 읽고 그로부터 어떻게 글쓰기를 수련하는 일상으로 나아갈 것인지에 대해 오랜 체험과 사유가 스며 있는 글이어서인지 발췌하고 필사하고 싶은 구절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글쓰기와 관련해서는 5장이 아니라, 주희와 왕양명의 저작을 나란히 논평하는 글의 마지막 대목을 함께 읽고 싶다.
 생의 마지막 국면에서 양명은 이렇게 말한다. “평범한 사람이 될 수 있어야 비로소 사람들에게 학문을 강의할 수 있다.” 성인이란 비범한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님을 지적한 것이다. 자신을 태산처럼 떠받들려는 제자들에게 말한다. “태산은 평지만 못하다. 평지에 무슨 눈에 띌 만한 것이 있겠는가.” 거기에 붙은 해설은 이렇다. “이날 선생님의 마지막 한마디는 사람들이 평생을 지녀온, 겉으로 우뚝 두드러지고 싶어하는 병을 단번에 잘라내고 깨뜨렸다.”(문성환, 앞의 책) 스스로의 권위를 무너뜨림으로써 학문의 본체를 증명해 보인 것이다. [중략] 주자는 거대한 체계를 세움으로써 결국은 도그마로 가는 운명을 피할 수 없었다면, 양명은 스스로 광야가 됨으로써 후학들로 하여금 그 위를 마음껏 질주하게 하였다. 모두가 군자가 되고 만백성이 성인이 되는 길을 연 셈이다. 과연 태산은 광야만 못하다! (101~102쪽, 2장 여름: 열정과 자유 - 주자어류선집&전습록 중에서)
 왜 배우는가, 책(고전)은 왜 읽는가, 왜 글을 쓰려고 하는가? 자문해 보자. 힘들게 배워서 평범한 사람이 되고 싶은 이가 세상에는 얼마나 될까? 모두 부귀와 공명을 위해, 차마 그렇게 답하진 못하지만 속으로 삭히는 본심은 아닐까…. 배울수록 고원이 아니라 평지가 되어야 한다는 양명의 역설적 가르침을 새겨듣게 된다.
 ‘대중지성’의 시대다. “대중지성은 책읽기와 글쓰기라는 행위로써 구성되고 실재하”는 개념이라고 나름의 정의를 밝히긴 했지만(편집자 주), 모두 저자가 되기 위해 글을 쓰지는 않는다. 그래도 쓴다. 쓴다는 건 생존에 버금가는 기본적 욕구이기 때문이다. 고미숙은 이를 일러 “배움은 생명의 존재형식”이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생명은 쉼 없이 읽는다. 우주와 자연, 세상이라는 텍스트를. 읽었으면 써야 한다. 사유와 행동과 언어 등등, 삶의 모든 과정이 쓰기에 해당한다. 읽고 쓰고, 또 쓰고 읽고… 이것이 바로 생명활동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인간이라는 생명체의 여러 가지 생명활동 중 읽고 쓰기는 생리적 기초 활동의 변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따라서 책읽기와 글쓰기 혹은 배움과 탐구와 쓰기는 하나가 되는 것도 자명한 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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