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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영별곡]4. le MONDE diplomatique - <NBA의 허망한 아메리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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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석영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7-07-20 13:47 조회193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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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석영별곡 4번째입니다.



이번에 소개해드릴 글 역시 르몽드 디플로 6월호 실려 있는 글입니다. 사실 르몽드는 이미 7월호가 나왔지만.. 에세이 다음 날 올려야 하는 문제로 제가 미리 봐둔 글이 있어서 이렇게 저번 달 호에서 기사를 찾아왔습니당.^^ (7월호는 다음 기회에~~)


오늘의 글은, 쥘리앵 브리고씨가 쓴 이라는 글입니다. 저는 농구에 별 관심이 없어서 처음엔 이 글을 읽지 않고 그냥 넘겼는데요, 두 번 세 번 뒤적이다 읽어보니 꽤 흥미로운 글이었습니다. 이 글을 통해 농구 자체보다는 자본주의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소수의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모습에 관해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아메리칸 드림, 자수성가 스토리


미국은 유독 자수성가 스토리를 좋아하는데, 그 중에서도 농구는 특히 편애하는 단골 소재다. (...) 1984년부터 2004년까지 NBA 총재를 역임한 데이비드 스턴가 선수들의 성공 스토리를 노출하고 스타화 전략을 구사함에 따라 NBA는 거액의 돈을 쓸어 담을 수 있었다.(...)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벤치마크인 NBA리그는 능력 중심의 아메리칸 드림을 부추긴다.


미국의 NBA는 선수들의 자수성가 스토리로 많은 사람들을 자극하나 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농구가 그렇게 국민적인 스포츠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이런 비슷한 분야는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저는 이 글을 보면서 슈퍼스타 K, 쇼 미 더 머니 등 우리나라의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생각났습니다. 자신의 음악 실력을 가지고 경쟁을 하는 프로그램이죠. 우승자에겐 큰 상금이 주어집니다. 그런 프로그램들을 보면 1등을 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게 자신의 스토리를 어필하는 것입니다. 어려운 환경에서 이렇게 노력했다, 그래서 이런 자리에 왔다 하는 것들이죠. 이런 것들은 현실을 조금 더 극적으로 표현한 것일 수도 있고, 굉장한 과장이 들어갔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사실이라고 해도,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런 길을 걷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노력하면 뭐든 된다?


“출신이 어디든 상관없다.”, “이곳에선 종교나 외모가 아닌, 오로지 실력으로만 평가한다.”, “공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 나이키의 광고카피는 ‘당신이 어떤 사람이든 오직 실력이 중요하다!’ 고 말합니다. 실력이 중요하겠지요. 하지만 이 말을 들으면 마치 내 능력은 내 의지에 따라 무한정 늘어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 곳엔 어떤 것도 장애물이 될 수 없고, 당신이 열심히만 하면 된다고요.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글쓴이는 ‘빈민가에서 태어난 아이가 NBA 리그에 입성하는 꿈은 여전히 가능한가?’라고 묻습니다.


“장애물? 나에게 그런 건 없다.”, “아버지는 화물 운전수였고 어머니는 매장 관리인이었다. 극심할 정도의 빈곤을 겪지는 않았지만 넉넉한 형편도 아니었다. 여기에선 출신 배경이 아무런 상관이 없다. 열심히 뛰고 연습 때 팀원들 족치면 그걸로 충분하다.”

프랑스 출신 피봇 플레이어 케빈 세라핀은 키가 206cm인데, 자신의 타고난 키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습니다. 농구라는 운동의 제 1기준은 키입니다. 키가 1인치 더 클수록 NBA 리그에 들어갈 확률은 2배로 증가한다고 합니다. 그는 이미 아주 큰 장애물도 넘을 수 있는 키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네요.


이처럼 스포츠를 말할 때 유전자의 영향을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2016년 NBA 선수 중 50%는 부모 중 적어도 한 명이 프로 운동선수 출신이라는 사실은 여전히 놀랍습니다. 축구의 경우 부모 중 한 명이 운동선수 출신인 경우가 20%미만임을 보면, 농구는 스포츠 중에서도 유독 유전자의 영향이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농구를 하는 데 경제적 여건도 중요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010년 연구에 따르면, 흑인 선수 66%와 백인 선구 93%는 부유층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인내, 절제, 자신감, 키, 뛰어난 기량, 신체역량 및 반사 신경 등 우수한 공구선수가 되기 위한 비인지적 역량의 순조로운 발달은, 결국 선수가 성장한 사회경제적 배경에 따라 좌우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요즘에는, 다른 여러 분야들과 마찬가지로, 농구 역시 코트 위에서의 개인적 역량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학교 성적까지 특기 장학생이 되는 평가조건이라고 합니다.




위험한 현실을 벗어나기 위한 수단?


“범죄에 악용될 소지를 피하기 위해 농구골대의 백보드에서 림이 제거됐다. 게다가 이 동네 아이들은 어디 가서 놀 만한 곳도 없다.” 시카고에서 작년 한 해 발생한 살인사건은 모두 762건으로, 이는 LA와 뉴욕에서 발생한 살인사건 수를 합친 600건보다도 많다. 시카고가 모든 범죄기록을 경신하고 있는 상황에서, 운동에 올인 하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 이곳을 빠져나가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었다.


시카고에서 농구를 하는 학생들에게 농구는, 시카고를 떠나기 위한 수단으로 인식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가능성을 바라보는 것은 거의 환상을 쫓는 것에 가까운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 와중에 어떤 누군가는 또 한 번 그 환상을 이루어낼지도 모르지만요. 농구는 정말 위험한 현실을 벗어나기 위한 수단이라고만 말할 수 있을까요? 이렇게 비현실적인 농구보다 현실적인 길이 정말 없을까요?


NBA에서 외치는 ‘열심히만 하면 된다.’라는 말은, 이곳은 마치 아무 장애물도 없는 곳일 것 같다는 환상에 빠지게 합니다. 그리고 자수성가 스토리는, 이 길이 지금과 같은 삶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인생역전의 기회라 말합니다. 그것을 따르는 사람 중 일부는 막막한 현실에 눈 감고, 당장에 나는 굉장한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착각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요?


이들이 겪는 어려움이 단순한 상대적 박탈감도 아니고, 그 지역에 산다는 이유로 일상생활에서 생명에 위험을 느낄 정도라고 하니, 이것을 그대로 우리나라의 상황과 비교해서 생각할 수 있는지는 조심스럽습니다. 각자의 꿈을 두고, 그것 허황된 것이니 당장에 돈을 벌 수 있는 일을 해야한다. 는 말도 아닙니다. 하지만 꿈이라는 말은 참 광범위하게 쓰인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래서 함부로 말하기가 어려운 단어이기도 하지요.




꿈을 지켜야 할까?


꿈이라는 건 자신이 어떤 환경에서든 추구하고자하는 가치가 될 수도 있고, 단기간의 목표일 수도, 장기적 프로젝트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아니 조금 흔하게, 다른 사람들이 욕망하는 것을 나도 갖고자하는 마음일 수도 있습니다. 내가 가진 욕구는 사실 다른 식으로도 풀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어떤 특정한 것만이 그걸 해결해줄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역설적이게도 이 분야를 장악한 흑인 사회는 미디어 담론이 부과한 사회적 원형 안에 갇혀있는 상태다. 갱스터와 래퍼, 농구선수라는 세 가지 틀에서 벗어나질 못하는 것이다.”


프랑스인 학자인 얀 데캉은 흑인사회가 여전히 갱스터와 래퍼, 농구선수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미디어 담론이 부과한 꿈. 그렇기 때문에 내가 하고 있는 것이 현실적이지 않더라도 ‘굉장한 일’처럼 보입니다. 그 꿈을 이루면 사회적인 인정과 경제적 안정도 따라올 것 같습니다. 그것은 마치 나의 꿈, 나의 소망을 이루면 따라오는 이득처럼 생각이 됩니다. 하지만 사실 내가 하는 행위 자체는 나의 현실을 외면하기만 하는데 ‘꿈’을 쫓고 있다면, 그건 그저 이후에 따라오는 이득을 바라고 있는 것일 뿐입니다.


이렇게 자본주의 사회에서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자하는 욕망도 ‘꿈’이란 단어로 표현됩니다. 하지만 이 단어가 무척 광범위하게 쓰이면서 절대로 건드려선 안 될 것, 지켜주어야 할 것처럼 생각됩니다. 꿈이라는 말을 지키느라고 지금 내 생활과 나를 파괴하면서까지 자본주의적 욕망에 나를 내맡기는 게 될 수도 있는데 말이죠.


그 꿈은, 정말로 지켜줘야 하는 것일까요? 스스로도 꼭 그것을 지켜야 할까요? 그런 착각 속에서 남들이 욕망하는 것을 갖고자 하며 ‘누구나 노력만 하면 할 수 있다’는 말을 믿는다면, 그 환상을 재현해내지 못한 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이 굉장히 무능력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지는 않을까요? 아니면 충분히 노력하지 못했음에 대해 죄책감을 가지게 되지 않을까요?





이 글은 ‘열심히만 하면, 꿈은 이루어진다.’, ‘이 곳은 오직 실력만 본다. 네가 하기에 달렸다.’ 하는 말들에 어떤 모순들이 숨어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정말로 유전적·경제적 조건이 되지 않는 아이가 NBA 리그에 입성하겠다는 꿈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 이야기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게 방송·연예계 쪽으로 많이 나타납니다. 그곳에 대한 환상도, 그곳을 꿈꾸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사실 저는 이런 게 방송인들이 쉽게 우상화되고, (성공했을 때) 수익이 굉장히 높은 우리나라에서만 유독 심한 현상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역시나 자본주의는 전 세계적인 것이며, 분야가 다르게 나타나도 전 세계의 사람들이 같은 언어적 모순에 갇히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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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자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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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공부하기 전엔 '꿈'이 매우 중요하다 생각하고
열심히 하면 될 수도 있는 것이고,
그것이 없는 것이 한심하다 생각했지요
이제는 그 '꿈'에 대해 의문이 있었는데, 이 글을 보니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니 않았던 의문이 무엇이었는지 슬슬 잡히기 시작하는 군요.
기사 정리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