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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영별곡]3. le MONDE diplomatique - <당신에게 보내는 초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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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석영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7-07-06 08:21 조회589회 댓글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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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 3번째 석영별곡입니다.


이번에 소개해드릴 글은 르몽드 디플로 6월호에서 찾았습니다.

김태경씨가 쓴 르몽드 ‘5월의 감성에세이’ 당선작 <당신에게 보내는 초대장>이라는 글인데요,

군대 시절 겪은 일로 이제껏 가지고 살던 5.18 당시 군인들에 대한 분노가 한꺼풀 벗겨졌다는 내용의 글이었습니다.








글쓴이가 군대에 있던 때 일입니다. 어느 날 새벽 신원미상의 물체가 해안가로 접근중이라는 보고가 들어옵니다. 훈련이 아닌 실제 상황이었습니다. 대원들은 실탄 수 십여 발을 지급받습니다. 그리고 사격준비 태세에 들어갑니다. 글쓴이는 여차하면 살아있는 것에 방아쇠를 당겨야 하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긴장이 극에 달하던 찰나, 다행히 물에 떠내려 오던 것이 탈북민이라는 것이 밝혀집니다. 그리고 글쓴이는, 살아있는 것에 총을 쏴야하는 상황에서 벗어납니다.



사격준비 태세에서 민간인 인도로 작전이 변경됐다. 우린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눈빛을 교환했다. 누군가를 죽이기에는, 갓 스물을 넘긴 청년들은 딱히 준비된 존재가 아니었기에.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내 기억 속 군인들은 모두 감정이 무딘 회색빛 존재였다.


글쓴이는 어린 시절부터 군인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고향인 광주에서 어릴 적부터 군인에 대한 적개심이 가득한 어른들의 경험담을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군인들이 임산부의 가슴을 대검으로 찔렀다, 창자가 튀어나와 버둥거리는 어린 학생의 머리채를 쥔 채 주택가를 뚜벅뚜벅 걸어갔다 하는 이야기가 입에서 입으로 전해왔습니다.
군인에 대한 분노를 담아, 그는 매년 열리는 광주민주화운동 기념 포스터 대회에서 시민에 총을 겨누며 웃고 있는 군인을 조금 더 참혹하고 잔인하게 그려냈습니다. 군인이라는 것을 조금 더 잔인한, 악한 존재로 만들어버리는 것으로 자신의 분노를 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군복무를 하면서 겪은 이 일을 통해, 글쓴이는 이제껏 가지고 있던, 그 때의 ‘군인’들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한 번 짚어보게 됩니다.



무고한 동포를 적으로 간주해 오인사격 했더라면 이 사건은 어떻게 기억됐을까. 잘못을 정당화하지 않았을 것이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시신으로 뒤늦게 밝혀진 그들의 신원조차 애써 부정하며 단지 간첩을 죽인 것이라 끝없이 되뇌었을지도 모른다. 낡은 군용 모포를 덮은 채 밤새 뒤척인 그날, 그제야 시대 저편을 향해 겹겹이 둘러 쌓여있던 막연한 증오를 힘겹게 한 꺼풀 벗겨낼 수 있었다. 비록 다른 장소였지만 한낱 부품에 불과한 당신과 나에게 선택지는 그리 많지 않았다. 다행히 비극을 피한 자와 그렇지 못한 자만이 존재했을 뿐.



사람에게 총을 쏠지도 모르는 순간을 겪은 그는 그 때 광주에서의 군인들이 자신이 그리던 악마가 아니라, 자신과 같은 사람이진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자신이 방아쇠를 당기기 직전까지 발포 명령이 취소되길 간절히 바랐던 것처럼 그들도 그러지 않았을까. 그리고 명령에 의해 오인사격을 했다면, 자신도 자신의 행동을 애써 정당화하진 않았을까. 그렇게 시대 저편에 있는 그들 역시 자신과 같은 사람이라는 것이, 자신도 그들과 다르지 않았을 수 있다는 사실이 다가오자, 그가 악마라며 증오할 대상은 사라졌습니다.


처음에 저는 이 부분에서 약간 어리둥절했습니다. 비슷한 감정이 일어날 때, 어떻게 나도 똑같은 악마로 보지 않고 그들을 용서하게 되는 거지? 이제껏 분노는 그를 끊임없이 힘들게 했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갖던 분노를 한 꺼풀 벗어내고, 그는 마음이 많이 편해졌을 것입니다. 분노를 안고 사는 건 분명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글쓴이와 달리 저는 왜 이 분노를 잡고 사는 걸까요?


저의 경우, 누군가를 싫어할 때, 나에게서 그 비슷한 모습을 본다 해도 이렇게 깨끗하게 정리되지 않는 때가 많았습니다. 다른 사람이 잘못됐다고 생각되는 행동을 할 때, 나는 절대 그런 일을 하지 않을 것처럼 그 사람을 ‘나쁜 사람’으로 봅니다. 스스로를 볼 때는 ‘사람이 원래 이래’하고 얼른 넘어가 버립니다. 하지만 ‘사람이 원래 그렇다’하면서도 여전히 선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존재한다고 믿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마음 한 켠에서는 ‘나 역시 나쁜 사람이구나’하며 스스로 ‘나쁜 사람’으로 묶고 있습니다. 이렇게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을 나누는 건, 나는 아니라도 누군가는 선하게 남아주겠지 하는 마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선한 사람’이 있다고 기대하는 것이지요. 이 믿음을 바꾸지 못해서 여전히 내가 악하다고 생각한 사람에게 분노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기엔 스스로에 대한 불신과 두려움, 분노도 포함되겠지요.


그런 기대, 선한 누군가가 있다. 하는 기대를 접고 ‘누구든 그런 상황에 처하면 그렇게 될 수 있는 거구나.’ ‘내가 그런 상황에 있구나.’ 혹은 ‘있지 않은 것은 다행인 것이구나.’ 하고 생각하는 편이 스스로를 분노에서 구하고, 자유롭게 하는 길인 것 같습니다. 그래야만 내가 자책하고 있지만 어쩌면 ‘나쁜’게 아닐지도 모르는 일들, 혹은 잘못하고 있다면 멈출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들을, 거부하지 않고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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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김태경님의 댓글

김태경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글쓴이입니다. 좋은 비평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문리스님의 댓글

문리스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자금 이게 무슨 상황? 석영이 쓴 글의 저자께서 다시 석영의 글을 본 거? 오오.. ^^ 석영별곡 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