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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의 글쓰기│불편한 마음을 찾는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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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홈피지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9-01-19 14:47 조회33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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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마음을 찾는 여행




이 인

 

여행 둘째 날 새벽 2시 친구들은 여행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웃고 떠들고 있다. 반면 나는 몸과 마음을 닫은 채 쇼파에 앉아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있다. ‘이 불편한 감정은 뭘까?’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 찝찝한 감정은 풀리지 않고 나를 계속 답답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 답답함은 여행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게 했다. 혹시 친구들은 이런 나를 이해하고 공감해주지 않을까 내 감정을 살짝 꺼내보았다. 그러나 돌아온 건 냉소뿐. 친구들은 다들 여행을 즐겁게 즐겼다고 한다. 에휴. 나도 잘 모르는 나의 감정을 어떻게 다른 사람이 이해해주리. 나는 이렇게 불편한 마음을 보는 것도, 친구들과 그것을 나누는 것도 쉽게 포기한다.


그런데 이 감정은 여행이 끝나고도 계속되었다. 그래서 나는 아직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게 엄청 강렬했던 감정은 아니다. 그것은 조용하고, 느리며, 잔잔하게 나를 불편하게 했다. 어쩌면 이것은 아주 사소하고, 시시한 일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찾기 힘든 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불편함이 어떤 건지 찾아보려고 한다.


 


 



아무 때나 가~


생각해보면 여행 내내 불편한 감정에 휩싸여 있던 건 아니다. 여행 전날 밤 9시가 넘어서 버스티켓을 예매하는 무모한 상황도, 주먹밥을 다급하게 준비하던 상황도, 처음 해보는 블루베리 농사일도, 로컬푸드마켓 체험도 웃기고 즐거웠다. 그런데 여행 이틀 날 밤 우리 여행을 도와주신 조율 선생님 집을 방문하고 나서부터 불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때부터 왜 불만이 생겨났던 걸까?


사실 여행 일정으로는 우리가 조율 선생님 집에 들르는 것이 마지막이었다. 그다음은 계획 아닌 계획뿐! 그것은 고속버스터미널에 아무 때나 가서 그 시간과 가장 가까운 시간대의 버스를 타고 그 지역에서 어떻게든 놀아보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조율 선생님 집에서 쉬다가 ‘아무 때’나 버스터미널로 가면 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 ‘아무 때’나 간다는 말은 언제 출발할지 모른다는 말과 같다. 여기서부터 내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언제 출발하는 거지?’ ‘버스를 일찍 타야 어떻게든 그 지역에서 숙소를 구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애들은 왜 이렇게 태평한 거지?’ 그래서 나는 친구들에게 물어봤다. 언제 출발할 거냐고. 돌아오는 대답은 “한...7시? 8시쯤? 몰라!” 1시간이 지나고 2시간이 지나고 시간이 점점 지날수록 불안해졌다. ‘얘네들 가기 싫은 거 아니야?’라는 마음이 올라오면서. 반면에 친구들은 집에 있는 게 즐겁나 보다. 조율 선생님과 밥 먹고 웃고 떠들고 있다. 나만 왜 이래!


 

그림 끝나고 가~


조율 선생님 집뿐만 아니라 유정 누나의 친구 집에서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저녁 9시쯤 우리는 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우리는 가장 가까운 시간으로 대전이 걸렸다. 마침 유정 누나 절친이 대전에 살고 있어 우리는 그곳에서 신세 질 수 있었다. 숙소는 생각보다 쉽게 해결됐고, 이제 이곳에서 뭘 할 건지가 우리의 고민이었다. 우리는 잠을 자기 직전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들 대전에 있는 관광지를 여행하고 다니는 건 재미없을 거 같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유정 누나의 친구에게 그림을 배우기로 했다. 그분은 그림을 그리는 예술가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그림을 배우기만 하려던 건 아니었다. 점심에 돌아다니기에는 날씨가 너무 더우니 그 시간에 그림을 배우고, 오후 늦게 밖을 구경하자고 계획을 세웠다.


예술가 선생님의 집에서 점심을 먹고 우리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것은 함께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한 명이 40분 동안 그리고 그것을 이어받아 다른 한 명이 또 그림을 그리는 구조였다. - 대부분 시간을 초과해서 썼다. - 허걱! 나는 간단하게 그림을 그리고 떠날 줄 알았는데 시간을 너무 잡아먹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곤 또 기약 없는 기다림이 이어졌다. 몇 시에 어디로 나가자는 말도 없이 우리는 그저 그림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이런 대책 없는! 그동안 나는 지루해하고, 따분해하고, 몸을 베베 꼬기 시작했다. 반면 옆에 있던 친구들은 평온해 보였다. 내가 잠깐 산책하고 오자는 말에도 끄떡없다! ‘뭐지? 얘들은 답답하지도 않나?’ 포기하지 않고 나는 옥근이와 유정 누나를 들들 볶아서 산책을 했다. 그런데 날이 더워도 너무 더웠다! 결국 우리는 그림 그리기가 끝나도 아무 곳도 안 갔다고 한다….

  






함께 있는 시간에 대한 부정


두 사건을 살펴보면서 내가 정해져 있지 않고, 모호한 시간 안에 들어가 있는 것을 불편해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시간이 나에게 주어지면 불안해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일상에서도 똑같은 일을 겪는 건 아니다. 규칙적이고 꾸준히 해오던 일이 끝나 버렸을 때, 누군가와 약속을 잡았는데 그 약속이 깨졌을 때 이런 비어있는 시간이 생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러한 시간이 혼자 있을 때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 시간을 나 스스로 쉽게 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함께 하는 여행에서 유독 부정적인 감정이 올라오는 이유는 뭘까?


함께 여행을 한다는 건 시간을 함께 쓴다는 말과 같다. 각자 자기가 쓰고 싶은 대로 시간을 쓰고 혼자 있을 때처럼 자기 하고 싶은 것만 한다면 함께 여행가는 게 아닐 것이다. 현실적으로 각자 다른 욕망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시간을 쓰려고 하면 의견이 잘 모이지도 않고, 입장을 조율하는 것도 힘이 든다. 그래서 구체적인 결정을 내리지 못할 때면 비는 시간이 생기기 마련이다. 이런 시간을 나는 여행 내내 무의미하고, 가치 없고, 불필요한 것으로만 생각했다. 결국 함께 시간을 써야 한다는 것과 그 상황을 긍정하지 못하고 있던 나 사이에서 부정적인 감정이 생겨난 것이다.



주어진 상황에 대한 태도


그런데 놀라운 것은 내가 부정했던 시간을 다른 친구들은 유용하게 쓰고 있었다는 점이다. 내가 늘어지고 힘들어했던 조율 선생님 집에서 친구들은 모두 호기심에 꽉 차 보였다. 조율 선생님이 어떻게 서울에서 완주로 이사하게 됐는지 궁금해하고, 다양한 일로 밥벌이를 하시는 선생님의 생활력에 놀라워했다. 그리고 친구들은 선생님의 집 구조, 냉장고 안에 있는 음식, 신기한 가구들을 바라보며 좋아했다. 뿐만 아니라 예술가 선생님의 집에서도 다윤이는 선생님의 책장에 있던 『혈자리 서당』 책을 꺼내 자신의 몸 이곳저곳을 찔러보고, 석영 누나는 예술가의 공간, 예술가의 삶에 푹 빠져 행복해했다. 유정 누나는 오랜 친구를 만나 추억에 빠졌고 근아 누나는 편안하게 휴식을 취했다. 이 시간은 나뿐만 아니라 친구들에게도 무언가 해야 하는 것이 정해져 있지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다르게 행동할 수 있었던 걸까?


여행에서는 우리가 계획한 대로, 생각한 대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즉흥적으로 여행 일정이 바뀌기도 하고,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지기도 하고, 기대에 못 미치는 일도 많기 때문이다. 이처럼 여행을 한다는 건 어쩌면 끊임없이 변화하는 상황과 조건을 체험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행을 하다보면 우리의 의지 상관없이 ‘주어지는 상황’이 생기기 마련이다.


조율 선생님과 예술가 선생님 집에 가게 된 것은 사실 우리가 계획한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주어진 것’이었다. 전자는 여행 중간에 즉흥적으로 생각해낸 것이고, 후자는 우연적인 만남이었다. 이러한 ‘주어진 상황’ 속에서 친구들은 놀랍게도 자신이 즐길 수 있는 것들을 찾았다. 그 상황에 집중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다. 하지만 나는 주어진 조건 속에 푹! 들어가지 못한 채 계속 다른 걸 원했다. 집을 떠나고 싶어 했고, 다른 여행지를 둘러보고 싶어 했다. 몸은 집 안에 있지만 마음은 계속 집 밖에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불일치가 나를 불편하게 했다.

  


바뀌지 않을 상황


내가 함께 있는 시간을 부정하고, 주어진 상황에 집중하지 못할 때, 누군가는 그 불편한 마음을 친구들에게 그 자리에서 바로 말했어야 한다고 나에게 조언해 줄 수 있겠다. 맞는 말이다. 내 불편한 마음을 꺼내 놓고 다른 사람과 소통했다면 자연스레 풀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말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 당시 나는 혼자서 4명의 서로 다른 사람을 설득할 자신이 없었다. 다들 즐거워하는 분위기였고 내가 말하면 거기에 찬물을 끼얹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 스스로 이 상황은 ‘바뀌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바뀌지 않으니’ 이 마음에 대해 고민할 필요도, 생각할 필요도, 말할 필요도 없었다.


여행이 끝나고 연구실에서 우연히 나는 내가 재미없어했다는 걸 친구들에게 털어놓게 됐다. 그리고 돌아온 이야기는 “왜 그땐 말 안 했어?”였다. 그래서 나는 솔직하고 당당하게 “그 상황에서 변화될 건 없었잖아.”라고 말했다. 나는 이런 내 생각이 정당하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근아 누나가 “바꿀 수 있고, 없고는 부차적인 것이고 일단 불편한 점을 말해야 하는 거 아니야?”라는 말을 날렸고 공고했던 내 믿음엔 금이 가기 시작했다.


정말 바뀌지 않는다고 말할 필요가 없었을까? 돌이켜 생각해보니 ‘바뀌지 않는다’는 내 생각은 ‘말하지 못하는 나’를 합리화하기 위한 좋은 수단이었다. 내가 말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상황 때문에 말하지 않는 거라고. 나는 아무 문제 없고 바로 이 상황이 문제라고! 이렇게 생각하면 할수록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상황이 저절로 변화되기만 바랄 뿐. 결국 ‘바뀌지 않으니 말할 필요가 없다’라는 생각이 나를 점점 수동적이고 소극적으로 만든 것이다.


여행이 재미없어지고, 늘어지고, 무기력해지는 것은 어쩌면 나의 불편한 마음으로부터 비롯된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여행 당시에 나는 친구들을 탓하느라, 이 상황을 탓하느라 내 마음을 제대로 보지 않았다. 그렇게 묵혀뒀던 어두운 마음이 여행 내내 나를 괴롭혔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앞으로 여행이 아닌 또 다른 상황에서 그런 불편한 마음이 생겨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실 미래는 알 수 없다. 바뀔 수 있을지, 없을지에 대한 판단은 내 망상이다. 내가 즐겁고, 능동적이고, 신나기 위해서라도 이러한 망상을 걷어내고 내 마음을 자세히 관찰하고 표현하는 게 필요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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