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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의 글쓰기│까마귀는 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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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홈피지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9-01-12 14:05 조회14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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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는 검다!



이 호 정

화기(火氣)충만한 분별심


올여름을 나는 정말 후끈하게 보냈다. 일간이 신금(辛金)인 나에게 정사(丁巳)월과 무오(戊午)월은 안 그래도 화기(火氣)충만한 나의 사주팔자 밭에 불을 제대로 질렀다. 관성으로 뜨겁게 불타오르는 나의 여름은 내 속의 분별심을 더욱 자극했다. “쟤는 도대체 왜 저런 식으로 말하지?”, “야는 또 왜 이렇게 행동하는겨?”, “저 사람은 도대체 왜 저렇게 살지?”

공부를 하는 공동체에서 생활하고 있는 나에게 그와 같은 분별심은 독이나 마찬가지였다. 배운 것을 가지고 분별하는 데 쓰고, 나의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들에게 매 순간 분별을 일으켜야 했으니 말이다. 나는 화기빵빵한 나의 분별심이 원망스러웠다. 단순히 옳고 그름을 따지는 데에서 그치는 정도가 아니라, 그것에 대해 미움이나 분노와 같은 감정을 갖게 되는 것이 괴로웠다.


괴로움과 더위가 극에 달했을 즈음이다. 나의 생각은 하나의 수렴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더 이상 내가 배운 것들로 사람을 판단하는 데에 쓰고 싶지 않다, 내가 다른 사람을 이해하기 어려워하며 감정을 일으키는 꼴을 보고 싶지 않다.’ 분별심 강한 나의 특성은 공동체생활에 있어 최악의 조건인 것만 같았다. 나는 이 생활을 접고, 훨씬 더 이해할 수 없는 것들 속으로 뛰어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나 자신이 산산이 깨지면, 나와 다른 사람들과도 잘 지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하는 바람을 품으면서 말이다.





바람 빠진 자세


기미(己未)월을 거쳐 경신(庚申)월이 되면서, 놀랍게도 나의 화기는 바람 빠진 풍선마냥 사그라들었다. 전에는 그토록 이해할 수 없던 사람을 보고도 ‘그럴 수 있겠구나’하는 날이 많아졌다. 그런 나 자신에 놀라고 있을 쯤 청공 3학기가 시작되었고, 3조 조원들과 만나게 되었다. 처음에 나는 조원들과의 만남에서 최대한 힘을 빼려고 노력했다. 내가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은 개성 강한 인물들로 뭉친 조였기 때문에 특히 조심했던 것이다.


하지만 별다른 내적갈등 없이 8주의 세미나를 보냈고, 우리는 여행을 떠났다. 첫 집결지인 서울역으로 향하면서도 나는 조심스러웠다. 이번 여행에서 내가 또 누군가를 미워하게 되지는 않을까. 그런 까닭에 나는 여행길에 올라, 좋게 말하면 오버하지 않았고 나쁘게 말하면 소극적인 자세를 취했다. 내가 강하게 믿는 옳음이 부정당할 때 주로 감정이 상하기 때문에, 나는 무엇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의견을 내기보다 웬만하면 받아들이려고 했다.


하필 또 멀미가 심한 탓에, 시내버스만으로 달려가는 길 위에서 나는 자연스럽게 거의 취침모드 상태였다. 친구들이 옆자리에서 돈벌이나 감이당에 관해 끝장토론(?)을 벌이고 있을 때, 나는 멀미에 좋은 혈자리를 꾹꾹 누르며 눈을 반쯤 감은 상태였다. 또 다른 버스에서 의백이의 삶과 건강에 대한 사주분석들을 읊다가 “그렇게 살다가 아프면 되죠 뭐.”라는 결론을 내릴 때에도 나는 수면마취에서 약간 깨어난 정도의 상태로 졸고 있었다. 서로의 의견이 오가는 사이공간 위에서, 일부러 그것을 피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침묵을 지키게 되었다.







사건의 발발


시내버스 15시간을 타고 도착한 실상사에서 이틀을 보내며, 나는 이번 여행에 보다 집중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메모한 내용 중에는 ‘좀 더 적극적으로 임하고 싶다’라는 말이 들어있었다. 마침 그 때부터 낯선 기운도 조금씩 풀어져 친구들에게 말을 붙이기도 하고, 장난치며 놀 때 어색하지만 나름 열심히 끼어들어보기도 했다.


그런 결심을 한 지 하루쯤 되었을까. 실상사를 떠나 소담이 이모님 댁으로 향하는 시내버스 안에서, 마침내 내가 장난의 중심이 된 때가 있었다. 여행을 떠나면서 우리는 마니또를 뽑았는데, 3일이 지나 이제 누가 누구의 마니또였는지를 밝히는 자리였다. 오랜만에 해보는 거라 두근두근 나의 마니또를 기대하며 친구들의 지목을 살피고 있었는데 웬걸, 그 누구도 나를 가리키는 이는 없었다. 그 순간 웃음이 터졌고, 3일 내내 나의 마니또는 없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웃음과 논란이 유발된 자리에서 다큐영상을 찍기 위한 카메라는 처음으로 나의 앞에 오래 머물렀고, 나는 몹시 어색했지만 오랜만에 찾아온 재밌는 상황이므로 온힘을 다해 말장난에 참여했다. 그러던 그 때, 내 귀를 혹하게 한 한마디가 들려왔다. “그럼 호정언니는 후기라도 면제해주자!” 오~ 나는 ‘이거다!’ 싶었다. 억울한 캐릭터를 어떻게 살릴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이거라면 억울함도 잘 살고 나의 이득 또한 챙길 수 있었다.


그 때부터 나는 목소리를 살짝 변조하는 등 약간의 오버를 떨며 열심히 나의 캐릭터를 표현했다. 카메라 앞에 대고 말하는 건 특히 너무 울렁(?)거렸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했다. 이렇게 열심히 했으니 이제 나는 당연히 후기 쓰는 걸 면제해주고 훈훈하게 마무리 될 것이라 기대했다. 나의 소명은 다했다고 생각하는 찰나, 의백이 ‘마니또의 형평성’을 문제 삼기 시작했다.


형평성이란 논제가 던져지자 친구들은 다시 즐겁게 장난을 시작했다. 나의 캐릭터는 ‘억울해도 어쩔 수 없어서 웃긴’ 캐릭터가 되어가고 있었다. 결국 마니또가 없는 건 없는 거고, 후기 면제 또한 없던 일로 결론이 났다. 아..! 그 순간 어찌나 억울함이 밀려오던지..!


나의 억울함은 순식간에 대상에 대한 미움으로 변했다. 대상1은 가장 신나게 나를 놀렸던 의백이었고, 대상2는 그냥 원래 계획대로 역할 분담 중 ‘왕’을 가장 많이 한 사람이 후기를 쓰자고 적극 주장했던 윤하였다. 그런데 두 사람에 대한 나의 마음이 달랐다. 의백은 순간적으로 미운 정도였지만, 윤하는 얼굴을 보고 싶지 않을 정도로 미웠다. 마치 이인이 꼴 보기 싫을 때와 비슷했다.








까마귀론


윤하는 나의 마니또였다. 나는 평상시에도 유독 윤하를 챙겨주는 걸 좋아했는데, 마니또까지 되었으니 이참에 더 챙겨줄 수 있어 기뻤다. 그래서 재밌게 열심히 임했는데, 그런 윤하가 나를 옹호해주지는 않고 도리어 곤궁에 빠트리는 발언을 적극적으로 하자 감정이 퍽 상한 것이다. 나는 이미 ‘왕’에 한 번 걸린 상태였고, 한 번만 더 걸리면 후기 당첨의 상황에 놓여있었다. 내가 보기에는 윤하가 그런 나의 상황을 알고서 나를 놀리려고 그 말을 꺼낸 것처럼 들렸던 것이다.


본 것이 적은 자는 해오라기를 기준으로 까마귀를 비웃고 오리를 기준으로 학을 위태롭다고 여긴다. 그 사물들 각각은 아무 문제가 없는데도 자기 혼자 화를 낸다. 한 가지 일이라도 자기 생각과 같지 않으면 만물을 모조리 모함하려 드는 습성 때문이다.

(박지원, 『연암집』, 「능양시집서」)


내가 보기에 윤하는 검은 까마귀였다. 나의 옳음에 걸맞은 해오라기와 같은 이쁜 새가 되려면, 윤하는 나에게 잘해줬어야 했다. 내가 본 것만으로 윤하의 색깔은 검은 까마귀색이 되었고, 나는 그 색이 옳지 않다고 화를 냈으며, 그 색을 모함했다.


이 상황은 내가 여행 전부터 우려했던 바로 그 상황이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나는 이 상황이 살짝 반가웠다. 도대체 내가 어떤 기준으로 사람을 그렇게 분별하는지, 왜 분별하는지에 대해 평소 답답해했던 부분을 이 친구들 속에서라면 제대로 알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겨나고 있었다.


한참 후에 나의 마음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자리를 가졌고, 그 자리에서 나는 까마귀론을 토해냈다. “윤하 너, 후기를 다른 사람에게 미루려는 그런 태도 좋지 않아!” 그 당시에는 내가 굉장히 합리적인 발언을 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날 저녁 치킨집에서 포장치킨을 기다리며 단둘이 앉아있던 때에, 다영이의 전갈침이 날라왔다. “언니 아까 그렇게 말한 거, 쫌 이상했던 거 같아요.”


전갈요정과 얘기하다보니, 낮에 내가 쏟아냈던 말이 실제로 이상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어째서 그렇게 말했을까? 사실 내가 마음 상한 이유는 ‘나는 윤하한테 잘해줬는데, 윤하는 그런 나에게 잘해주지 않았다’는 것에 있었는데 말이다.


그런 말하기 방식은 아주 습관적인 선택이었다. 관계에 있어 나의 마음에 솔직해지는 것은 생각보다 아주 어렵다. 내게 일어난 감정적인 타격을 이야기하는 것보다, 객관적으로 그럴싸해 보이는 원인을 말하는 편이 훨씬 더 ‘안전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나는 그 정도의 상황에서 서운함을 느끼는 나 자신의 찌질함을 숨기고 싶었다. 여기에는 특정 감정에 대한 시비판단이 들어있다. 그러니까 나는 내가 ‘그르다’고 생각하는 나의 모습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윤하의 ‘옳지 않은’ 태도를 만들어내고 문제 삼았다. ‘윤하가 후기를 쓰고 싶지 않아서 나를 곤경에 빠트렸다’는 건 내가 순간적으로 만들어낸 ‘그럴싸한 억측’이었던 것이다.


사람에 대한 분별심을 갖는 나 자신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던 때에, 이 까마귀론 사건은 고민의 지점을 조금 다르게 볼 수 있는 시각을 주었다. 어쩌면 내가 자꾸 다른 사람의 태도를 문제 삼는 이유는, 그 사람과 만나는 나 자신의 어떤 모습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사람 사이에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


윤하의 말을 들었다. 윤하는 평상시에도 내가 자신의 태도를 부정적이게 판단하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활동을 일 처리하듯이 대하는 면’은 작년부터 윤하가 가진 화두였다. 나는 처음엔 “그래?”하는 정도였지만, 옆에서 지켜보면서 윤하의 그런 점을 조금씩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매번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과, 자신의 그런 점을 알고 있는 윤하가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 또한 느끼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하가 나를 서운하게 하자, 바로 윤하를 까마귀 보듯이 했다.


윤하는 자기를 그렇게만 보지는 말아달라고 말했다. 충분히 그렇게 보일 것 같고, 그렇게 볼 수도 있는데, 그렇게만 보지는 말아달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생각할수록 너무 미안했다. 계속 마음에 걸려 한참이 지난 후 윤하에게 내가 너를 그렇게만 봐서 미안했다고 말하자, 윤하는 ‘사람 사이에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며 웃었다. 그 순간 공작새로 보이는 이윤하. 그 말을 들으니 묘하게도 마음이 아주 편해졌다. 내가 아무리 분별심이 강하더라도 다영이처럼 나에게 침을 쏠 수 있고, 윤하처럼 자기의 마음을 솔직하게 꺼내줄 수 있는 친구가 있다면, 이런 나 자신에게 갇힐 걱정은 좀 덜어도 되지 않을까? 그런 이유로 굳이 연구실을 떠날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을 얻게 된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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