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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홈피지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9-01-05 13:25 조회25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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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이대고 볼 일





김 석 영



농부의 삶을 기대하며


청년 공자 스쿨 3학기 조별여행, 우리 조의 목표는 ‘낯선 것과 잘 만나기’였다. 어떤 타자를 만나게 될지, 기대를 품고 우리는 첫 목적지인 완주로 떠났다. 완주에 도착하고 처음으로 한 활동은 ‘농사체험’이었다. 나는 초등학교 때 학교에서 단체로 농사 체험을 해 본 적은 있지만 그 이후로는 농사일을 접해볼 기회가 없었다. 평소에 하지 못하는 일이니 기대가 됐다.


하지만 일상에서 농부에 관한 ‘이야기’는 자주 듣는다. 감이당+강학원에서 운영하는 유투브 채널인 <강감찬tv>에서는 청년 백수 친구들끼리 모여 절기에 대해 수다를 떠는 ‘절기뉴스’라는 프로그램을 만든다. 일종의 토크쇼(?)다. 절기가 바뀌는 2주 단위로 다음 절기에 관한 내용을 녹음 하는데, 녹음을 하기 전에 『절기서당』이라는 책을 각자 읽고 간다. 말할 거리를 만들기 위한 예습 같은 거다.


그 책은 절기에 대해 설명하면서, 각 절기마다 그 시기를 나기 위해 가지면 좋은 태도를 제시해 주는데, 거기에서 ‘농부의 삶’을 자주 예로 든다. 자연에 어떤 변화가 찾아와도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이며 사는 농부들의 이야기를. 그런 농부들의 삶을 직접 보고, 듣고 체험해볼 수 있다니! 농사체험은 나에게 여러모로 여행에서 가장 기대되는 부분이었다.







내가 만난 농부 이야기


우리가 농사체험을 위해 방문한 곳은 귀농 경력 6년의 부부 두 분이서 블루베리, 토마토, 무화과 등을 재배하는 농장이었다. 그곳에서 우리가 처음으로 한 일은 수확시기를 놓친 블루베리를 수확하는 것이었다. 아직 통통한 것들은 따서 잼을 만드는 데 쓰고, 말라버린 것들은 따서 버려주는 작업이다. 지금 남아있는 것들을 잘 따줘야 내년에도 그 자리에 열매가 연다고 한다.


농부 아주머니께서는 우리와 함께 그 작업을 하며 연신 “아깝다, 아깝다.”를 하신다. 그 블루베리들은 내가 봐도 아까웠다. 통통한 블루베리들도 있었지만 나무에 열린 블루베리의 80%이상이 바싹 말라 털어내서 버려 줘야 하는 상태였다. 먹음직스러운 열매들과 비교 되어 말라버린 열매들이 더 아깝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렇게 당연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걸 아까워하시는 아주머니의 모습이 나에게는 생소했다. 처음에 아주머니께서 “아깝다, 아까워...” 하실 때는 공감이 갔다. 하지만 그게 반복되자 조금 당황스러웠다. 책에서만 ‘농부의 삶’에 대해 접해본 나는 ‘농부들은 이런 일에 초연’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가진 농부라는 ‘이상’의 반대급부로 내 눈엔 순간적으로 아주머니가 ‘돈에 연연하는’ 사람으로 비춰지기도 했다. 그래서 ‘이런 사람과는 어떤 대화를 해야 하지?’, ‘대화가 잘 안될 거 같다’등의 생각을 했다. 어이없는 생각이란 건 알지만....... 그랬다. 마치 ‘고귀한 농부’라는 기대를 가졌다는 이유로, 내가 고귀한 사람이라도 되는 양.


조금 후, 아주머니께 왜 귀농을 하셨는지, 또 귀농의 삶이 잘 맞으시는를 여쭤보았다. 이번에도 ‘농사라는 고귀한 일을 택한 데에는 어떤 삶의 철학이 들어있을까?’라는 기대 하에.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 “밖에 있으면 몸은 편하긴 한데, 사람을 만나야 되잖아~ 그게 제일 힘들잖아~ 농사는 몸은 힘들어도 사람을 안 만나니 마음이 편해~” 앗. 나는 또 주춤했다. 농사란 자고로 천지자연과, 만물과 소통하는 일이 아니던가! 그런데 사람 만나기가 힘들어서, 그걸 피하려고 귀농을 하셨다니....... 물론 ‘사람 만나기가 힘들다’는 말이야, 누구나 공감할만한 얘기다.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었다면 어떤 이야기든 고개가 끄덕여졌을 것이다. 하지만 당황한 나는, 거기서 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겉으로는 마치 ‘사는 게 다 그렇다’는 듯 하하하 웃었지만, 속으로는 대화의 장에서 스르르 한 발 빠져나가고 있었다.


블루베리를 웬만큼 다 따주고 나서, 우리는 하우스(?)로 돌아왔다. 잠깐 쉬며 목을 축이고 있는데, 다른 데에 가셨던 아저씨께서도 농장으로 돌아오셨다. 우리는 인사를 드리고, 이야기를 나눴다. 아저씨께서는 이런 이야기를 하셨다. ‘농사는 자연과의 싸움이다. 자연이 80%고 인간이 어떻게 해볼 수 있는 건 20%밖에 안 된다. 작물이 잘 날 때도 있고, 안 날 때도 있지만 어쩔 수 없다.’


이때다! 내심 이런 얘기, 그러니까 ‘자연의 이치를 아는 농부의 삶’ 이야기가 듣고 싶었던 나는 반가운 마음에 물었다. “잘 안 될 때도 그걸 잘 견뎌내야겠네요.”


‘결과가 어찌되든 그것을 받아들이는 고귀한 농부의 삶과 지혜!’를 떠올리며 한 말이다. 그러자 아저씨께서 대답하셨다. “그렇지. 그러니 우리도 잘 돼서 좀 돈을 많이 벌면 기분이 좋고~ 돈을 많이 못 벌면~ 별로고~.” 이럴 수가!


하하하, 하하하! 나는 또 웃었다. 하지만....... “하지만 정말 그게 다예요?!” 물론 실제로 묻진 못했다. ‘농부의 삶’, 아니 ‘이상적인 삶’에 대한 내 기대와 환상을 이 분들께 강요할 순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열심히 일하시는 그분들 앞에서 그런 생각들을 했던 게, 농부라는 이름으로 사람에게 허무맹랑한 기대와 잣대를 들이대고 있던 것이 부끄러웠던 거 같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그냥 웃었다. 마음은 복잡했지만. 하하하.







깨든, 깨지든


농사체험을 하면서 아저씨 아주머니와도 많은 대화를 나누고 싶었지만 내가 기대했던 것과 다른 것을 만날 때 마다, 내 마음은 그 장에서 조금씩 떨어져 나왔다. ‘어떤 사람들을 만났다’라고 얘기할 만큼 제대로 만나지 못한 느낌이다. 찰나라도 말이다. 새로운 것들을 만나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고 해놓고, 기대한 것과 다른 것을 만나자 뒷걸음질 치는 꼴이라니.


돌이켜보니 내가 농사일에 가졌던 관심은 호기심이 아니었다. 나는 단지 내가 책에서 본 내용이 내 앞에 재연되길 기대했다. ‘낯선 것-타자’를 만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여행에서도 내가 아는 세계를 반복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니 예상 밖의 이야기들 앞에서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런 기대는, 나의 일상생활에도 존재한다. 아저씨 아주머니께 ‘농부’라는 이름을 붙이듯, 일상에서 역시 나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친구라는, 연인이라는, 선생님이라는, 가족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그리고 거기에 따른 기대를 한다. 친구는, 가족은, 선생님은 이런 거야. 나를 사랑한다면 이렇게 행동하겠지, 등등. 내 주변 사람들이 좋은 친구, 좋은 선생님, 좋은 가족, 좋은 연인이라 믿는 내 마음에는 내 기대를 그들에게 듬뿍 지워주고 싶은 욕망이 있다.


그리고 그것과 현실이 어긋날 때마다 조금씩 그 관계에서 발을 뺄 준비를 한다. 차라리 부딪히지도 않고. 겉으론 웃으면서, 애매한 관계가 유지된다. 나는 관계가 이런 식으로 흐지부지 멀어지는 것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이상이 깨지는 게 더 싫은가 보다.


글을 쓰며 나는 나의 이런 태도에 대해 위기감을 느꼈다. 기대가 무너질까 이런 식으로 발을 빼다 보면 나는 아무리 먼 길을 떠나도,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제대로 만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만나는 사람들과 겉도는 것은, 말 그대로 ‘세상에 접속하지 못하는’ 것이다. 강도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삶. 그게 싫다면, 일단 들이대고 볼 일이다. 과한 기대를 품는 내 이상을 깨든, 서로의 기준에 맞지 않아 관계가 깨지든. 깨지는 그 순간이 내가 타자를 만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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