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강학원

본문 바로가기
남산강학원을 즐겨찾기에 추가
사이트 내 전체검색

말과 글

청년의 글쓰기│어떻게 살 것인가

게시물 정보

작성자 홈피지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8-12-22 11:31 조회128회 댓글0건

본문



어떻게 살 것인가

김민지


요새 잠자고 밥 먹는 시간 빼고는 시나리오를 쓴다. 90만 원짜리 강의를 듣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실 기회와 맞바꾼 비용이다. 이름 없는 지망생이 자신의 작품을, 업계에서 승승장구하는 작가에게 검토 받을 수 있는 기회 말이다. 각 수강생은 15주 동안 단 한 시간, 공식적인 자리에서 피드백을 들을 수 있다. 천금 같은 시간을 날리지 않도록 나 역시 온 힘을 다해 이야기를 쓰고 있다. 그래서 떠나기 전까지 갈등했다. 작업이 한참 남았는데 친구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혼자 빠질까? 하지만 홀로 서울에 남는다면, 34일간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을 보내고 돌아올 친구들이 야릇한 미소를 주고받으며 허물없이 대화하는 모습을 두고 볼 수만은 없을 듯했다. 그래서 달밤에 짐을 챙겼다. 그리고 친구들과 새벽 버스를 탔다.

버스에서: 3년 후에 뭐할 거야?

시내버스만 타고 목적지 가기’. 어쩌다 이렇게 희한한 목표를 정했는지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그 제안이 나온 순간, 여섯 명 모두 알 수 없는 마력에 사로잡혔다는 것이다. 그런 여행이라면 곳곳에서 돌발 상황이 난무할 거라는 직감이 들었다. 사전에 조사해둔 경로대로 가다가 어느 지점의 버스시간표가 바뀌어있을 수도 있고, 한낮에 막차가 끊기는 시골에서 차를 놓쳐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될 수도 있다. 비박을 할 수도 있고 히치하이킹을 할 수도 있고 하루쯤 잠 안자고 별을 세며 걸을 수도 있다. 버스 안에서 보낼 긴긴 시간은 어떻게 보내야 할까? 아무 것도 확신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하기로 했다.

새벽녘 술 취한 필동 주민들을 지나, 서울역 바닥에 웅크린 노숙자들을 지나고, 천안 호두과자 가게를 지나, 조치원 정류장에 앉아있는 노인들 속 오타처럼 섞인 백인남자들을 지나, 아파트 전시 모형을 그대로 확대해놓은 듯한 세종시를 지나칠 때쯤이었을까. 창밖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다영이 물었다. “모두들 2, 3년 후에 뭐하고 싶어요?” 밥벌이에 대한 질문이었다. 나는 시나리오로 입봉해서, 천 만 원 단위를 벌어보고 싶다 했다. 그 말을 들은 친구들이 흠칫 놀랐다. 나 역시 대답하고 나서야 요즈음 무엇을 향해 달리고 있었는지 새삼 깨달았다. 멀리 푸르른 논밭이 보였다. 그 속으로 뛰어들 듯 창문을 열어젖혔다.

실상사에서: 가치 있는 일, 필요한 일을 하는 건 어때?

오전 5시에 출발했던 우리는 컴컴한 밤길을 걸어 남원 실상사에 도착했다. 하동 악양으로 가는 여정의 중간 지점이었다. 그곳에서 잠을 자고 밥을 얻어먹는 대신 청소와 밭일을 하기로 했다. 이튿날 새벽, 여명이 밝아오자 절의 풍경이 서서히 시야에 들어왔다. 지리산이 중중첩첩 감싸 안은 곳에 1200년 된 실상사가 있었다. 신라시대에 쌓아올린 탑 두 개가 다른 시간을 달리는 듯 서있었다. 그 사이로 새벽예불을 마친 스님 한분이 자갈돌을 밟으며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았다. 고즈넉한 공기가 마음속에 잦아들었다. 어느 부자가 이런 풍경을 살 수 있을까? 많은 돈을 주고도 얻지 못하리란 생각이 들었다. 가진 사람이 아니라,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난 스님들이 바로 그곳에 살고 있었다.




예불을 드리고, 잡초를 정리하고, 게스트하우스 창고를 정리하고, 고추를 따는 일정 가운데 도법스님과 작은 차담회를 가졌다. 우리는 각자 준비한 질문을 돌아가며 여쭈었다. 누군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해 말하자 도법스님이 답하셨다. “다들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고 해. 근데 꼭 그래야만 해? 세상에 가치 있는 일, 필요한 일을 하는 건 어때.” 담박한 말씀이 잔잔한 파동을 일으켰다. ‘그러게. 왜 그 생각을 못했더라?’ 당연히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행복하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다. 반대로, 해야 하는 일을 하면 고될 거라는 믿음 또한 있었다. 그러나 하고 싶은 일을 한다고 해서 마냥 행복한 것은 아니다. 한편 세상에 필요한 일을 하다보면 자연히 자긍심과 열정이 샘솟을 수밖에 없다. 스스로 가치 있다고 판단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마음으로 일을 하면 오히려 즐거움을 느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기준을 바꿔 생각해보았다. ‘내가 필요하다고 여기는 일에는 어떤 게 있지?’ 시골에서 농사짓는 것, 인간중심으로 짜인 시스템에서 동물들의 권리를 위해 일하는 것, 통일을 위해 구체적인 일을 하는 것 등이 떠올랐다. 막연하게나마 여러 갈래의 길을 눈앞에 그려보았다.


농부의 집에서: 좋아서 이렇게 살아

떠나는 날 아침까지 고구마줄기를 따다가 실상사에서 나왔다. 시내버스를 연이어 탄 끝에 목적지인 하동 악양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우리는 다영이 아버님의 지인을 만나 저녁을 얻어먹었다. 그대로 헤어질 줄 알았는데 지인이 당신의 친구집에 들러 차를 마시고 가자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별 생각 없이 지인의 지인을 만나러 가게 되었다. 멀리 새파란 지붕이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컨테이너 재질로 만든 집이었다. 하얗고 매끄러운 벽이 위태로워 보였다. 그런데 집안에 들어가자마자 말을 잊었다. 창을 통해 방안 가득 들어오는 햇살과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그림자, 손님을 맞이하려고 준비한 찻잔과 다기, 작은 유리병에 꽂아놓은 들꽃, 동그란 나무쟁반에 말려놓은 씨앗들, 깨끗하고 낮은 침대, 한쪽 구석에 서있는 책장과 그곳에 꽂혀있는 책들. 이곳에 사는 사람이 어떤 생활을 하는지 느껴졌다. 소박하지만 정갈하고, 고요하면서 충만한 흔적이었다.

집주인은 서추주, 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어릴 때부터 여행을 좋아해서 휴일이 긴 직업을 택했다고 했다. 그래서 4년 동안 학교 선생님으로 일하다가 주어진 방학마저 짧게 느껴져 그만뒀다고 했다. 지금은 작은 텃밭을 가꾸며 자급자족을 하고, 현금을 최소한 적게 쓰며 살고, 토종씨앗을 얻어 싹을 틔운 후 거기서 받은 씨앗을 주변사람들에게 나눠주고, 하타 요가와 비파사나 명상, 팔굽혀펴기 등을 하며 몸을 단련하고 있다고 했다. 한편으론 불안함을 느끼지만, 농사와 책과 여행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비구니 아닌 민머리가 처음엔 낯설었는데, 대화를 나누다 보니 오히려 그 사람의 눈빛과 미소가 분명하게 드러나는 걸 보았다. 점차 묘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바로 앞에 앉아있었다. ‘그렇다면 왜 즉시 저렇게 살지 않지?’ 민머리의 경우를 상상해보았다. 삭발한 나를 본 부모님의 반응은 우리 민지가 정말 이상한 길에 들어섰구나! 어쩌면 좋아일 것이다.

우스운 상황이긴 하지만 더는 부모님께 염려를 끼치기 싫다. 그래서 나는 앙 편의 욕망 모두 들여다보게 되었다. 이렇게 살고 싶은데, 동시에 그렇게 살지 않게 붙드는 욕망들의 기 싸움. 그래서일까, ‘좋아서 이렇게 산다는 말이 새삼스러웠다. 희한하게, 이상하게, 안타깝게 쳐다보는 사람들을 향해 그냥, 좋아서 이렇게 산다고 나는 아직 말하지 못한다는 걸 알았다.


다시 버스에서: 어느 길목을 지나고 있는지

일정을 마치고 돌아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창밖 풍경이 달라졌다. 지금 내가 인생의 어느 길목을 지나고 있는지 되돌아보았다. 자연스레 여행 첫날 친구들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내 목표는 시나리오로 입봉해서 몇 천 만원 단위를 벌어보는 것이라고. 어쩌다 그런 다짐을 하게 되었더라?

지난 10년간, 알바만 해도 입에 풀칠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유유자적 살았다. 하고 싶은 일 하다 시들해지면 관두고, 다른 일 하다 또 관두고, 그렇게 뷔페처럼 맛보며 살았다. 그런데 20대 후반으로 접어드니 그런 이력에 대해 떳떳하지 않았다. 부모님한테 꼬박꼬박 집세도 내면서 신세 안 벌리고 살아왔는데 말이다. 문제는 미성숙한 태도였다. 어느 것 하나 힘든 걸 감내하면서 꾸준히 파고든 경험이 없다. 즐기면서 산다는 명목 아래 즐거운 일만 골라했던 나는, 남들에게 명함을 건넬 수 있는 기술이나 능력이 없다. 그것은 사회 속에서 내 몫을 찾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때 필수적인 기반인데 말이다. 그래서 올해 자존감이 바닥을 쳤다. 하여 마음을 먹었다. ‘아무거나(?) 직업으로 삼을 만한 일을 하나 잡자, 그걸 꾸준히 하자.’

공교롭게도 시나리오 공부를 시작한 참이었다. 흥미롭고 재밌었다. 그래서 이 일로 쭉 가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그러면 왜 몇 백 만원도 아니고 몇 천 만원이냐고? 작가지망생들이 공모전에 당선되면 몇 백 만원을 받는다. 그것은 자질이 있다는 걸 확인한 정도지, 지망생이라는 이름표를 뗄 순 없다. 영화사에 작품을 팔 때에야 작가 축에 들었다고 할 수 있다(사실, 자기가 판 글이 진짜로 영화관에 걸리기 전까지는 입봉했다고도 할 수 없다). 그때 계약금이 몇 천 만원 단위다. 그래서 나는 지망생을 넘어 그 일을 밥벌이 삼고 싶다는 걸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물론 공모전에 당선되어 몇 백 만원이라도 받으면 하늘을 향해 감사기도를 올릴 테지만.


어떻게 살 것인가
서울로 돌아왔다. 다시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책상에 앉는다. 일주일 후면 과제를 낸다. 집중하기 위해 자세를 가다듬는다. 여행을 떠나기 전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다. 그러나 지난 사흘간 품었던 크고 작은 질문이 머릿속에 떠다닌다. 그 조각들은 합쳐져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물음으로 남는다. 시내버스를 타고 어디로 어떻게 흘러들지 알 수 없었던 것처럼, 인생 역시 그러한가 보다. 같은 질문을 던지고 던져도 날마다 새롭게 헤쳐 나가야 하는 걸 보면. 시나리오 과제를 제출하고 나면 방바닥에 대자로 누워 돌이켜보고 싶다.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그들이 살고 있는 모습, 그들이 힌트처럼 흘린 말들과, 거기에서 뻗어 나가는 다양한 갈림길들을.




게시글을 twitter로 보내기 게시글을 facebook으로 보내기 게시글을 Me2Day로 보내기 게시글을 요즘으로 보내기 게시글을 구글로 북마크 하기 게시글을 네이버로 북마크 하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