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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의 글쓰기│여행과 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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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홈피지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8-12-15 12:00 조회16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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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소통


조정희





이번에 청년공자스쿨 덕분에 색다른 여행을 하게 되었다. 그동안 나의 여행은 보고 먹고 놀기 위한 목적의 행위였다. 그러니 그 지역에 여행 간 것이 아니라 아주 특정한 장소에 갔었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 로마를 간다고 하면 로마라는 지역에 가는 것이 아니라 바티칸 박물관의 천장화를 보러 가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런 내 여행에 불편한 게 있다면 내가 아는 것이 없어, 보이는 것 또한 없다는 거였다. 그 지역의 역사, 문화, 내 관심사의 의의 등을 어느 정도 공부하고 가서 실제로 보고 느끼는 것이 내가 지향하는 여행이었다. 물론 실제로는 해본 적도 없지만. 어쨌든 그런 여행은 지금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전혀 상관하지 않는 거였다.


하지만 이번 여행은 내가 하던 대로의, 하고 싶던 대로의 여행을 할 수 없었다. 여행 경비 예산이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과 소통하지 않고는 여행이 어려웠다. 그래서 여행 시작도 전에 많은 사람에게 연락하는 것이 준비 과정이었다. 하지만 그 과정이 나에게 불편했다. 스페인에 여행 가는 것도 하루 이틀 전 정해서 다음날 떠날 정도로 여행 준비를 안 하는 편이기도 하거니와, 낯선 사람과 연락을 하는 것도 불편했다. 그래서 나는 준비 과정에 거의 참여하지 않았다. 다른 조원들에게 일을 떠맡겼다는 것과 내 몫을 하지 않았다는 생각에 불편했다. 해야 한다는 생각이 올라와도 전혀 하고 싶지가 않았다. 그 이유를 몇 번 생각해 보아도 답하기 어려웠다. 이 질문을 좀 더 잡아보고 싶다고 생각이 연결되니 내 소통 태도도 관련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겸사겸사 이번 여행에서 그동안의 내 소통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가져 보면 좋겠다고 생각이 들어 이번 여행 목표를 ‘그 지역 사람과 소통하기’로 잡아보고자 했다.


그동안 나의 관계 맺는 방식은 수동적이었다. 항상 누군가 다가왔고, 그들 중 내가 마음에 드는 사람만 선택해서 친해졌다. 친해졌다 해도 사람마다 다 조금씩 다른 선을 그어 관계를 맺었다. 그러니 내가 원하는 소통과 실제 하는 소통은 차이가 있었다. 내가 원하는 소통은 타인과의 접속으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었다. 반면 실제 나의 소통은 타인과 선을 긋고 내 얘기를 하고 싶지도 않았다. 또 듣고 싶지 않은 얘기는 듣지도 않았다. 전자는 2박 3일 여행기간 동안 바꾸기 어려울 뿐더러 하고 싶지도 않아서 일단 후자인 듣기를 바꿔보기로 했다. 그래서 여행 목표를 ‘그 지역 사람과 얘기해보기’로 잡고, 얘기하기 위해 대화하는 사람의 모든 말을 집중해 듣기로 했다. 그래서 여행을 가서 많은 사람의 얘기를 듣고, 듣고, 또 들었다. 그 중 인상 깊던 두 사람과의 대화를 쓰고자 한다.






│호호장터 별자리 부스의 중년 남성분


여행 첫날 우리는 저녁에 ‘호호장’이라는 장터에 참여했다. 호호장은 제천 덕산면의 마실이라는 공동체에서 매달 여는 장터이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어 우리도 팔 만한 것들을 가져와 팔고 그 옆에서 사주와 별자리를 보기로 했다. 나는 사주가 거의 기억이 나지 않아 별자리만 네 분 정도 봤던 거 같은데, 그 중 한 중년 남성분 이야기를 하려 한다.


호호장터가 끝나기 얼마 전, 한 중년 남성분이 우리 별자리 부스에 오셨다. 내가 차트를 보기 위해 자리에 앉기도 전에 거부감이 일어났다. 차트를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다. 주지했듯이 나는 사람을 굉장히 가려서 친해진다. 친해졌다 하더라도 교훈이나 잔소리 식의 말은 듣지도 않는다. 내가 생각하기에 합리적이고 들을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면 모를까, 대부분의 그런 말들은 들을 가치가 없었다. 중년 남성의 경우 내 기준으로 가치 없는 교훈과 잔소리를 가장 많이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그들과 대화해야 할 때면 나는 거부감이 일어난다. 그런데 차트를 보게 되다니. 일단 열심히 듣기로 한 여행 목표를 상기하며 자리에 앉았다.


앉자마자 더 불편해졌다. 차트를 뽑기 위해 이름, 생년월시, 고향을 물으니 답하기 싫은 투가 역력했다. 아내분이 별자리를 보시고 난 후 남편도 보라고 혼자 보내신 상황이었다. 생년월시는 겨우 듣고 끝내 이름은 답하지 않으셨다. 이름 없이 차트를 뽑는 과정에서 계속 핸드폰을 보고 있으니 오로지 인터넷을 통해서만 정보를 얻는 건 줄 아셨던 것 같다. 그런 거 미신이라는 투의 말투와 분위기를 아낌없이 드러내셨다. 차트 뽑는 시간이 참으로 길게 느껴졌다. 차트를 뽑고 태양 별자리 특징을 몇 가지 얘기했더니 갑자기 태도가 바뀌셨다. “와, 나 사실 다 부정하려 했는데 진짜 맞네?” 하시면서. 어느 정도 술을 마시고 오셔서 그런지 내가 조금 읽으면 그에 관해 생각나는 얘기 10-15분 말씀하시고, 또 조금 읽으면 또 10-15분 말씀하시기를 반복했다. 들으면서 이따금 집중력을 잃을 뻔했으나 그때마다 다시 여행 목표를 상기하며 듣고자 노력했다.


그분의 주된 말씀은 걱정에 관한 속담과 얼마 전에 하신 사업얘기였다. 동쪽 별자리가 처녀자리라서 그런지 걱정이 많으셨던 것 같다. 그러다가 이 속담에 꽂힌 상태이신 것 같았다. 그 속담은,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라는 티베트 속담이었다. 알고 있던 것이기도 하고 예전에 좋아했던 속담이었다. 하지만 요즘 나는 걱정할 틈도 없이 내 코가 석 자인 지라 와 닿지 않았다. 다른 얘기는 플루토가 첫 번째 하우스에 있길래 처녀자리 방식인 조직에 헌신하거나 완벽함을 추구하거나 타인을 비판하는 태도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신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 존재감을 드러내는 상황에 힘든 적이 있었을 것 같다고 말하자 바로 이런 얘기가 나왔다. 얼마 전에 정부에서 지원받아 제천 덕산면을 리모델링하는 일의 총감독자이셨다고 했다. 그 일로 덕산면에 잔디밭이 있는 넓은 축구장을 만들고, 현재 마실 공동체가 사용하는 건물을 매입해서 전체 리모델링할 수 있는 등의 변화가 가능했다고 하셨다. 그 일 때문에 너무 힘들었고 본인은 많은 것이 변했다고 하셨다.


걱정 얘기는 그 분의 태양 별자리 얘기하다가 갑자기 청년들한테 하고 싶은 말이라고 하셔서 넘어갔으며 사업 얘기는 구체적으로 말씀하시지 않으셔서 플루토와 사업 얘기의 연관성은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처음부터 보고 싶은 차트도 아니었고 하시는 말씀에 큰 흥미가 있던 것도 아니었으며 이야기를 듣고 싶은 상대도 아니었다. 그래서 별자리 보다가 호호장터가 끝나서 대화를 끊게 된 것에 안도와 감사함을 느낄 정도였다. 그런데 그 분이 가시면서 본인을 되돌아볼 계기가 되었다며 고맙다고 하셨다. 갑자기 내 마음이 불편해졌다. 최대한 듣고자 했으나 중간 중간에 내 집중력이 흐트러졌다는 걸 알고 있으며 차트가 보고 싶지 않으니 보이지도 않아서 가장 기본적인 것들만 말씀드렸다. 그런데 고맙다고 하시니 갑자기 내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았음이 느껴지며 매우 불편해졌다.


나는 특정한 것이나 학문을 거부하고 싶거나 싫은 감정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먼저 그에 대해 어느 정도 안 후에야 비판하고 그런 감정이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 분야에서는 아무것도 배울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내 자의식에 갇혀 세상을 보고 싶은 대로만 보는 우매한 행동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중년 남성에게는 내 선입견대로 그들을 보고 거부하는 태도로 대하고 있었다. 이 생각이 들자 하나의 가정을 세우고 생각해봤다. 만약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걱정 속담이나 말씀하신 것과 비슷한 얘기를 했다면 내가 지금과 같은 반응과 생각을 했을까, 라는. 그리고 그렇지 않았을 거라는 대답이 떠오르자 그 분에게 더 죄송스러워졌다. 듣는다는 행위 전에 내가 사람을 가리는 행위를 경계해야 했다. 그래야 그 사람의 말을 조금은 더 온전히 들을 수 있다는 생각이 이제야 들었다.






│축구장 오른쪽 하얀 집의 아주머니


여행 이튿날 오전 우리는 두 팀으로 나누어 마을 주민분들의 일손을 도왔다. 내가 속한 팀은 축구장 오른쪽에 위치한 하얀 집으로 갔다. 오전에 약 세 시간 정도 일하고 점심을 얻어먹은 후, 그 집 아주머니와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밥 먹고 대화가 끝나기까지 약 두 시간 반을 소요했다. 또 내 짧은 집중력이 발휘되어 중간중간 딴생각이 올라왔다. 그래도 끝까지 집중해서 들으려 노력했다. 아주머니가 아이를 대안학교에 보내게 된 이야기, 젊은 시절 사회 운동한 이야기, 보고 겪은 1980년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는 이야기, 박정희 전 대통령 피살 사건 때의 이야기, 딸과 대화할 때 자신이 유신 교육 하에 길들 여진 사람이라는 걸 인지하고 대화하려고 노력한다는 등의 이야기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 중 인상 깊던 이야기는 박정희 전 대통령 피살 사건 때의 이야기였다. 나에게 그 사건은 교과서나 책에서만 읽은 사건이었다. 하지만 이 분에게는 생생한 기억이었다. 같은 내용의 것을 안다고 해도 받아들인 정도는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이 갑자기 느껴졌다.


나 또한 내가 겪은 박근혜 탄핵 사건과 2017년 이후 태어난 사람이 이후 이 사건을 책으로, 또는 사람에게 전해 들어 느끼는 것은 굉장히 다를 것이다. 그러자 그동안 대화할 때 내가 아는 내용을 듣게 되면 흥미를 잃고 집중력이 현저히 떨어지던 내 모습이 생각났다. 내가 아는 내용과 타인이 말하고 있는 내용이 같다고 할지라도 그 맥락이 굉장히 다르다는 걸 조금은 느꼈다. 중요한 건 내용이 아니라 그 내용을 받아들인 개개인의 서사였다.


여행 전 나는 내 소통 방식인 선 긋고 내 얘기 하지 않기와 듣기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전자는 건드리지 않고 듣기만 이번 여행에서 잡아보고자 하였다. 그러나 듣기 전에 선 긋는 것이 연결되어 있을 뿐 아니라 명확히 선 긋는 것을 그만해야 듣기가 가능했다. 또한 내 얘기 하지 않기는 그만큼 타인의 말을 듣지 않겠다는 의사표시였다. 결국 내가 생각한 소통의 분류법은 분류되지 않는 것을 분류한 것이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을 보기 전 편견을 갖지 않고 개인의 서사를 이해하는 것이었다.


여행이 끝난 후 내가 여행 전 연락하는 게 왜 꺼려졌을까의 답을 다시 찾고자 했다. 그 이유는 그 과정이 남에게 다가가야 한다는 생각에 부담스러웠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맺은 수동적 관계 맺기와 달리 내가 먼저 얘기해야 한다는 것이 싫었다. 즉 낯선 행동을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여행을 할 때 이런 태도에서 벗어나야 했다. 또한 내가 지향하던 여행과 사람과 소통하는 것이 관련 있었다. 내 생각보다 소통, 관계라는 것은 큰 부분을 차지했다. 그래서 소통과 관련해서 내가 지향했던 여행을 다시 생각해봤다. 그 지역을 이해하고 간다는 것은 그 역사와 문화를 지금 사는 사람들이 어떻게 대하는가도 연결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태도가 내 관심사의 의의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여행과 공부는 낯선 것에 나를 던진다는 점에서 같다는 말을 이번 여행에서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동안 나의 여행은, 몸은 낯선 곳에 갔지만 내 의식은 낯선 곳에 가지 않았다. 이번에는 다른 시공간에서 다른 태도를 취해보는 첫 여행이었다. 먹고 놀거나 직접 보고 느끼고자 가는 여행도 좋지만, 여행을 가서 돈이라는 매개체 없이 사람과 소통하며 그 지역에 접속해보는 여행을 앞으로도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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